여성파워 소냐 홍
상태바
여성파워 소냐 홍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03.11.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4년 관광·항공업계 외길인생 여성전문CEO

브래니프항공 입사로 관광업계와 인연

88년 외국항공화물 한국지점장 발령, 인생역전

외국관광청 한국사무소·스콜클럽 회장 겸임

뛰어난 승부욕과 성실성, 배우는 CEO로 정평

ITN 소냐 홍 사장

“가보지 못한 해외관광지에 대한 기사를 접하면 아직도 가보고 싶은 충동에 마음일 설래요”
외국에 대한 동경심이 어려서부터 남달리 강했던 소냐 홍 ITN사장은“선경초등학교 시절부터 영어를 배웠고, 외국인 선생님들과 접했던 일이 많았던 것이 외국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던 것 같아요”라며 첫 마디를 연다.
중학교 입학시험이 없어지고 추첨을 시작하는 시기에 홍사장 어머니는 학업성적이 우수했던 홍사장을 데리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중,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에 졸업한 홍사장은 버글리대학에 입학 정치·경제학을 전공하며 2학년 시절 뛰어난 미모로 인해 팬암항공사 스튜어디스에 응시해 합격하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입사를 포기했다.
대학시절에도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이 꿈이었던 홍사장은 1979년 졸업과 동시에 아시아 지역에 취항하던 텍사스 캐리어 계열의 브래니프항공사에 입사하며 항공업계와 인연을 맺고 예약센터 및 영업파트에서 에어라인 비즈니스를 1년 간 배우게 된다.
“이 당시 항공사에는 팩스도 없던 시절로 텔리프로 전문을 보내고 예약을 확인 받는 등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입사하기 힘든 첫 직장에서 1년 간 항공사 업무를 배우며 해외출장도 다니고 신이 났지만 어느 날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뉴욕에서 브래니프항공이 문을 닫는다는 뉴스를 접하며 펑펑 울었던 시절이 기억난다”는 홍사장은 2번째 직장으로 JTB 뉴욕지사에서 근무하며 관광업계와 인연을 맺게 되고 이곳에서 동남아 등 패키지 프로그램 만들고 세일즈를 병행하며 여행사 업무를 배운다.
여행사 업무로 인해 항공사들과 인연을 맺고 3번째 직장으로 캐세이퍼시픽 뉴욕지점에 입사해 86년까지 일하며 항공전문가로 변신한다.
“이 당시 캐세이퍼시픽 뉴욕지점은 오프라인 항공사로 영업을 했지만 밀리언 세일즈을 하던 곳으로 유명했으며 저를 비롯해 5명의 영업팀이 예약과 티켓팅 업무를 비롯해 페닌슐라호텔, 마카폴로호텔 세일즈까지 병행하며 다양한 업무를 진행했었다”고 회상하는 홍사장은 “이곳에서 인터라인클럽 메니저를 담당해 미국 전역을 비롯해 캐세이가 취항하고 있는 국가를 방문할 수 있어 개인적인 역량을 발전시키는 기회가 됐었다”고 말한다.
인터라인클럽 메니저들에게는 뉴욕지점을 비롯해 미국 전역에서 온·오프라인 항공사 클럽메니저들이 한 달에 한번씩 함께 점심을 하며 세일즈 미팅을 했으며, 출장 시에도 비즈니스클라스와 특급호텔을 제공해 주었고, 20불만 추가하면 퍼스트클라스로 업그레이드 해주는 중요한 위치로 평가받던 자리다.
“매니저 발탁은 세일즈 역량에 따라 선정되며 마일리지프로그램의 적용과 항공요금의 책정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 영업실적 증대의 책임을 맞는 매니저에게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만남을 비롯해 항공업무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며 여러국가를 여행하면서 내 직업에 대한 만족과 외국문물을 접하며 자만심을 잠재우기도 했어요”
어려서부터 새로운 곳을 가게 되면 흥분을 가라 않치지 못했다는 홍사장은“주어진 여건 하에서 자신의 선택한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공부,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자세로 자신에게 충실해 왔으며 선후배간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려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며“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의 능력배양 보다는 편안한 직장과 업무를 선호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던 홍사장은 86년 샌프란시스코로 자리를 옮겨 팬암항공에서 1년 간 근무하며 한국인 비즈니스 고객들을 위한 한국파트장을 맡게 된다.
샌프란시스코 터줏대감인 유나이티드항공(UA)으로 인해 팬암항공은 일주일에도 3회 정도 결항할 때가 많아 공항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홍사장은 이 당시 외국캐리어들의 직원들은 인간 대 인간이 아니고 기계처럼 일하는 분위기를 느껴 인간미가 없는 것에 실증을 느끼고 87년 대한항공의 샌프란시스코 취항을 계기로 대한항공으로 자리를 옮긴다.
한국기업의 미국수출 물량 증대와 아시안게임, 올림픽 특수로 인해 대한한공은 미주지역에 전세기를 띄우며 승승장구 태극마크를 휘날렸다.
“미국 영주권자였지만 대한항공에서 일하며 국적항공사가 미국으로 취항할 당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던 홍사장에게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
대한항공 샌프란시스코 카고 담당이던 김영호차장(현재 태화항공(주) 대표이사)은“대한항공에서 여성이 지점장으로 승진은 어렵고 한국의 항공화물 수출물량이 급증하고 있으니 항공화물 전문 외국캐리어로 자리를 옮겨 역량을 과시해 봐라”라며 외국캐리어 카고회사를 소개해 주게 된다.
“ 항공사 흑인부사장과 인터뷰가 한번에 끝나지를 않더라고요, 정식인터뷰에 점심, 저녁식사를 같이하며 이 회사에 입사하면 포부가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국제적 메너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상세한 인터뷰에 이어 입사하면 향후 2년 간 애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조건을 수락하고 난 후에야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됐지요”
이 회사에 스카웃 된 홍사장은 부사장과 함께 본격적인 밀리언 세일즈의 노하우를 배우게 된다.
이 항공화물회사는 한국취항을 준비하며 홍사장은 부사장과 함께 한국출장을 다니며 바쁜 나날을 보낸다.
“한국출장 시 퍼스트클라스로 서울 숙박 시 신라호텔에 묵으며 한국에 자주 다닌 시절이 너무나 그리워요, 제 인생에 있어 이 부사장은 세일즈맨의 자세와 태도, 모든 것을 제게 전수해 주었으니까요”
그러나 또 한가지 홍사장이 평생 잊지 못하는 기억이 또 하나 있다.
“부사장과 주요한 미팅 스캐쥴일 잡혀 저 나름대로 옷을 예쁘게 차려입고 사무실에 나갔는데 망신을 당했지 뭐예요, 부사장은 앞으로 한국에서 책임을 맡아야 할 사람이 복장이 그게 뭐냐고 꾸짖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는 당황하며 반문하자 세일즈우먼의 복장이 그저 평범한 치마에다 니트를 걸치고 나와 함께 미팅을 나간다면 자네를 네 비서로만 취급하지 세일즈우먼이라고 생각하겠냐, 그냥 사무실에서 업무나 보도록 해라”라며 혼자 가버린 일이었죠.
이일 이후 홍사장은 부사장 지적대로 니트면 전체가 니트세트로, 정장이면 전체가 정장스타일로 복장을 정비하고 세일즈를 배웠다고 한다.
87년 입사해 세일즈 교육과 한국출장으로 8개월 지내고 나니 부사장이 부르더군요.
“소냐 홍을 88년 3월 1일자로 한국지사장으로 임명합니다”라며“그동안 받았던 교육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그 역량을 과시해 보세요”
제 인생에 첫 번째 온 인생역전의 기회였지요.
한국지사장으로 발령 받자 42평의 신동아아파트, 기사가 딸린 고급승용차와 카폰, 한국지사장실, 자녀에 대한 파격적인 보조가 뒤따르며 88년 3월 한국에 입성한다.
“대한항공 시절 김차장의 조언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지금도 제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 김사장에게 감사하고 있답니다”라는 홍사장은 “30대 초반의 여성이 외국항공화물회사 한국지사장으로 파격적인 조건으로 부임하자 당시 항공화물업계에서는 다소 놀라기도 했지요. 하지만 당시 조인트 벤쳐 회사인 에어웨이엑스프레스 사장님도 제 보스에게서 교육을 받은 인물이라면 인정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밝힌다.
88년은 한국의 하드드라이버를 비롯해, 컴퓨터 조립품, 피혁제품 등 수출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던 시기로 대한항공의 화물 컨테이너가 모자랄 정도로 항공화물시장이 최대 호황기를 누렸고 홍사장 회사도 4년 간 엄청난 항공화물을 핸드링하며 승승장구를 했다.
“한국지사장으로 일하던 동안 버겁고 힘든 일도 많았어요.”
한국을 어린 시절 떠나 연고가 없고 학창시절 친구들도 없었고 남성들도 힘들다는 카고 회사에 여성이 한국지사장으로 있으니 주변에서 말도 많고 제 편을 드는 사람이 적었고, 미국의 보스는 사생활까지 컨트롤 할 정도로 타이트하게 업무를 진행시켰고 회사에서 공장까지, 공항까지 불철주야 뛰어다니며 일에만 전념하고 있었던 홍사장은 92년 보스에게서 귀사명령을 받는다.
“지난 4년 간 연고가 없던 한국에서 외국인 기업 한국대표들과의 미팅, 새로운 친구들과의 친분 등 쉽게 져 버리고 가기가 너무나 아깝더군요”
보스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한국에서 홍사장은 92년 1월 홍콩 폴라에어가 부산에서 홍콩으로 취항하던 시기에 에어홍콩, 폴라에어 한국총대리점을 차리게 됐지만 캐세이퍼시픽이 에어홍콩을 인수하자 아쉽게 대리점을 접게 된다.
동년 에스틱로더 한국지점장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과정에서 대한항공이 뉴질랜드 취항이 확저되자 뉴질랜드관광청은 헤드헌터를 통해 지사장을 모집했고 그 당시 일본지역 책임자 던 토니와 3명의 뉴질랜드관광청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하게 된다.
그 당시 뉴질랜드관광청 한국지사장 봉급은 에스틱로더의 50% 수준, 그러나 40대를 비즈니스를 생각해 보니 제가 모르는 분야에서 경쟁심리가 높은 한국기업, 백화점 등과 겨뤄야 하는 세일즈 보다는 한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고, 지금도 그 판단이 맞았다고 생각한다는 홍사장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질랜드관광청장의 한국지사장 OK 전화를 받고 93년 8월에 뉴질랜드 관광청 한국지사장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다.
뉴질랜드관광청 한국지사장을 맞은 홍사장은 93년부터 여행사 공동광고를 관광청 최초로 시작하는 등 97년까지 다양한 프로모션과 마케팅 전략으로 승승장구했으나 IMF로 인해 98년에 뉴질랜드관광청 한국사무소가 문을 닫을 위기에 봉착한다.
그러나 홍사장은 뉴질랜드로 건너가 관광청장을 만나 한국이 IMF라고 해서 뉴질랜드관광청이 한국을 철수한다면 IMF를 벗어난 후 재 상륙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최소한의 경비로 한국지사를 운영하며 IMF 극복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청장을 설득, 본인의 월급을 포기하고 2명의 스텝에 대한 지원을 얻어내며 기회를 기다렸다.
“이 당시 참으로 답답했어요, 하지만 나 혼자 살수 있다고 함께 고생해온 스텝들을 져버린 다면 오너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뉴질랜드관광청 한국사무소 운영을 지속하며 이때 새로운 사업확장을 위해 국제홍보대행사인 ITN을 설립하고 강원엑스포 국제홍보를 시작으로 국내 지자체 행사의 해외홍보 업무를 시작했다”고 설명하는 홍사장은 다시 원점에서 사업아이템을 찾게 위해 미국에서 라스베이거스관광청 국제마케팅메니저 제인을 만나, 한국시장진출에 대비해 마케팅 계획을 설명하고 기회를 기다렸다.
“ITN 설립 후 일년이 지나니 통장에 돈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연말까지 새로운 비즈니스 성사가 안되면 스텝들은 서로의 길을 가자고 약속했지요, 그러던 12월에 라스베이거스관광청으로부터 한국지사를 열겠다는 연락을 받고 샴페인을 터트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라며 홍사장은 옛 추억을 더듬는다.
라스베이거스관광청 한국지사 설립 후 홍사장은 관광업계 최초로 스타마케팅을 동원해 인기연예인들의 해외 신혼여행, 특집방송 지원 등으로 라스베이거스와 뉴질랜드를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관광지로 부상시켰다.
해외 비즈니스 등으로 생활의 반을 해외에서 지내는 홍사장은 지난 6월 지인섭부장을 뉴질랜드관광청 한국지사장으로 승진시키고 또 다른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다.
뉴질랜드관광청 한국사무소 창립 10주년을 기념한 파티가 지난달 16일 워커힐호텔 에스톤하우스에서 개최됐다.
이날 파티에는 한국여행업계를 좌지우지하는 여행사대표단과 관광언론사 사장단이 하나도 빠짐없이 참석해 주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날 국내 1호 간판여행사 홍기정 모두투어부사장은 “소냐 홍의 성실성과 파워에 다시 한번 놀랐다”며 참석자 대부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외국관광청 업무라는 것이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긴 하지만 장기적인 승부를 걸만한 비즈니스는 아닙니다”라는 홍사장은“10년 전이나 오늘의 여행업계 차이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업계의 수익구조라는 것이 너무나 열악하고 여행사 간 덤핑경쟁으로 인해 고객들이 만족할 만한 여행상품을 접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죠, 한국여행업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FIT, 인센티브 시장 개척에 눈을 돌리고 차별화 된 특화전략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하고“최근 들어 여행업계 CEO들이 관광경영학을 수학하는 등 변화하고 있는 모습에서 한국관광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관광선진국의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과 업계에 지원하는 충분한 예산 등이 우리정부가 배워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는 홍사장은 미래지향적 관광산업은 환경산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차기 사업을 위해 관광을 접목한 환경산업 사업분야 진출을 준비하며 제 3의 인생설계를 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