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첫 평양관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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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첫 평양관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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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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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와 같은 수줍음을 간직했던 평양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평양은 예로부터 ‘공원도시’로 불릴만큼 녹지대가 많다. 더구나 평양 중심부의 주요 거리마다 다른 종류의 가로수를 계획적으로 심어놔 눈이 심심치 않다. 따라서 평양의 가을은 한편의 명화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아름다운 것으로 소문이 나있다. 그래서 북한내 다른 지역의 주민들은 물론 이웃 중국 동북 3성이나 이나 일본, 대만 등지에서 제법 많은 이들이 가을에 평양이나 묘향산을 찾는다.
기자가 평양 땅을 밟았았던 9월 중순은 이제 막 단풍의 불길이 당겨질 즈음이었다. 그래서인지 평양과 그 주변 관광지에는 북녘 동포들로 넘쳐났다. 북한이 바야흐로 본격 관광철로 접어들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서해 직항로를 경유해 불과 1시간도 안돼 닿은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시내로 접어들면서 느끼는 첫 인상은 의외로 ‘여유로움’이다. 우선 어디로 가나 교통 체증이 없어 좋고, 소음이 안들려 편안하다. 북한 주민들의 남루한 옷차림이나 색깔이 바랜 우중충한 회색빛 건물들을 빼면 평화롭기 그지없어 보인다. 양 옆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각양각색의 코스모스,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을 바라보노라면 절로 마음이 흡족해진다.
북쪽 관광 안내원의 걸쭉한 농담 섞인 소개가 이어지면 과연 우리가 정말 50년 이상을 갈라져 철천지 원수처럼 살아온 민족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남북관계가 이렇게 관광을 매개로 강물처럼 흘러간다면 정말 통일은 멀지않을 것 같았다.
“통일이 별건가. 이런 관광을 지속하다보면 통일이 되는 거지.” 53년만에 정주 고향을 찾아간다는 한 실향민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긴 여운을 남겼다. 평양 관광의 특징은 다른 외국 관광과는 달리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감동이 곳곳에 배여있다는 점이다.
“금강산 맑은 물은 동해로 흐르고, 설악산 맑은 물은 동해 가는데,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가,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평양과 정주를 오가는 길에 중년의 한 북한 안내원은 자청해 남쪽 관광객들의 지루함을 없애준다며 서유석의 ‘홀로 아리랑’을 다소 처연하면서도 멋들어지게 불렀다. 더러는 박수를 치며 즐거워 했지만 53년만에 고향 땅을 밟는 실향민들의 표정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우수가 가득해 보였다.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실향민도 여럿 눈에 띄었다. 사실 북한 안내원은 그냥 무심코 노래를 부른 게 아니었다. 조총련 인사들을 비롯해 일본인 관광객들만 20년 넘게 안내한 경험을 갖고 있으면서 비교적 바깥 사정을 잘아는, 그래서 남과 북의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열린 마음을 갖고 있던 그는 홀로 아리랑 노래를 통해 반세기 만에 처음 열린 민간인 평양관광의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것이다.
그랬다. 그는 평양 관광이 갖는 의미와 앞으로 남북관계에 미칠 더디지만 강렬한 파장을 미리 암시하는 듯 했다. 많은 나라를 여행해 봤지만 이번 평양관광만큼 긴 후유증을 낳은 경우는 없었다.
지난 9월15일부터 닷새간 다녀온 첫 민간인 평양관광길은 그야말로 지난 수년간 조용히 진행되어온 북한내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들이 농축된 용광로에 빠졌다 나온 느낌이다. 더구나 필자에게 이번 평양방문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지난 수년간 여러차례 북한의 여기저기를 다녀봤지만 이번처럼 다소 놀라우면서도 생동감넘치는, 그러면서도 감동을 주는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그만큼 북한은 달라져 있었다.
이는 무엇보다 북한 스스로가 베일을 벗고,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보여주려는 열린 자세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그들이 관광길을 열었더라도 마음을 닫고, 제한된 장소만 건성으로 보여주려 했다면 입 맛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남쪽 관광객이 금새 싫증을 느꼈을 것이다.
북한 당국의 진정한 의도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북쪽 관광 실무자들은 열악한 도로사정 등으로 인해 관광객들에게 불편함을 끼친 데 대해 미안해하면서도 관광을 통해 실리도 얻고, 남쪽 사람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서고,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들에겐 이제 더는 남쪽 사람들이 경계의 대상이 아니었다. 남쪽 주민들이 자신들보다 잘 산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대구 유니버시아드 경기에서 자신들보다 월등한 성적을 거둔 것도 빤히 알고 있었다. 국가 이기주의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국제정세 속에서 그래도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형제의 피를 나눈 남쪽 동포가 그 누구보다 미더울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핵 문제가 심각하기는 하나 남한이 반대하는 한 전쟁이 일어나겠느냐며 자위하기도 했다. 남북한 주민간의 마음 거리가 한층 가까워져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들은 대놓고 이렇게 말한다. “정치는 정치이고, 관광은 관광이다.” 핵 문제가 여전히 북한 체제의 앞날에 불안감을 드리우고 있고, 이로 인해 남북 당국 간에도 미묘한 갈등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들도 잘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관광에 적지않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무엇보다 관광은 큰 투자없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관광문제와 관한한 이들은 남쪽 관광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고객의 편에 서서 북쪽에 오신 손님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즐겁고도 안전하게 여행을 마치도록 만드는 게 자신들의 소임”이라고 자신감을 비친다. 불쑥 튀어나온 ‘고객’이란 표현 자체가 놀랍다. 이렇게 나오면 오히려 당황스런 쪽은 남쪽 관광객이다. 북쪽 당국에서 일방적으로 미리 정해놓은 코스만 따라 묵묵히 관광하다 돌아올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던 대부분의 남쪽 사람들에게 이들의 달라진 태도들은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평양-안주-정주-향산-남포 등 4박5일 안에 제대로 돌아보기에는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가는 곳마다 다양한 북녘 동포들과의 접촉과 교류가 어울려 진 덕분에 관광은 물흐르듯 진행됐다. 중국에서 갓 사왔다는 새 버스가 고장을 내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이동에 불편함을 겪은 적도 있지만 다들 싱글벙글이다. 적어도 관광분야에서만은 남북 통일은 성큼 다가온 듯 했다.
북한은 분명 경제적으로 크게 낙후되어 있었지만 나름대로 볼거리가 많은 여느 다른 나라의 관광지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한 유명 관광지에 갈 때 마다 교통체증과 각종 공해에 진저리를 쳐온 남쪽 사람들에게 어딜가나 깨끗하고, 인심 넉넉한 북한의 주요 관광지는 오히려 부럽기까지 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긴장이 풀리자 다양한 직업과 나이, 성향을 지닌 남쪽 관광객들의 주문은 끝이 없다. 하지만 북쪽 안내원들은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가급적 남쪽 관광객의 요구를 들어주려 한다. 밤에 택시를 타고 평양의 야경을 감상하기도 하고, 아침에는 서울에서 입던 조깅복 차림으로 숙소와는 멀리 떨어진 곳까지 달려갔다 온다. 북쪽은 기독교 신자들을 배려해 애초 예정에 없던 봉수교회 참관까지 허용해 주기도 했다.
더러는 보통강 낚시꾼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남녀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 먼저 말문이 막히는 쪽은 남쪽 관광객들이다. 하나같이 말을 둘러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흡족하기만 하다. 이들의 말속에 남쪽에서 접하기 흔치 않는 솔직함과 순수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번 평양관광의 백미는 북녘 땅 동포를 있는 그대로 골고루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전의 북한 방문이 일반 주민들과 가급적 거리를 두고 움직였다면, 이제는 그야말로 북한 주민들 한가운데서 북한을 온몸으로 느끼는 게 다르다. 평양 지하철에서의 수많은 북한 주민들과의 자연스런 조우는 물론이고 관광길 어디에서나 마주치며 눈인사를 나누고 손을 잡는다. 그리고 돌아설 때는 “또 오시라”고 말한다. 이전 “통일된 뒤 만나자”라는 자못 비장한 작별인사와는 차이가 크다. 이들의 말 속에는 이미 남쪽 관광객의 평양방문이 중단없이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 수준을 뛰어넘는 확신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묘향산 만폭동 등산길에서 만난 신의주에서 왔다는 한 북한 아가씨는 집주소까지 적어주며 자신이 찍힌 사진을 꼭 보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행여 엉터리로 받아 적었나싶어 한번 더 주소를 불러 줄 정도다. 김책공대에서 단체로 놀러왔다는 남녀 대학생들은 남쪽 관광객을 향해 '반갑습니다', '우리는 하나' 등의 익숙한 노래를 남쪽 관광객들과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를 하며 함께 불렀다. 누군가 북한 주민들의 이런 행동들을 두고 사전에 기획된 ‘쇼’라고 응수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태도가 가식이라고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이들이 원하는 건 간단 명묘해 보였다. “통일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해달라”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북한 주민들은 분명히 자의든 타의든 그간 남쪽 주민들에게 닫아놓았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고 있었다. 물론 이번 여행길에서 아직도 남쪽 관광객들과 눈을 마주치기를 거부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적지않은 북한 주민들도 접할 수 있었다. 이는 적대감에서가 아닌 어색함에 가까워 보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의 마음을 연 것 일까.
북쪽 사람들의 말을 모아보면 역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남쪽에 대한 일반 주민의 적대감을 크게 누그러뜨린 것같다. 지난 해 7.1 경제관리개선 조처 이후 경제적 실리를 중시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한 몫을 한 듯 했다. 따라서 대다수 관광객들이 평양 순안비행장에 내리면서 예상했던 핵위기에 따른 팽팽한 긴장을 감지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화사해진 옷차림과 더불어 주민들의 표정이 밝아 보였으며 관광실무자들의 걸쭉한 농담 속에서도 여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전문가는 이런 역설적 현상은 북한 당국이 유연한 상징조작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라고도 풀이하나, 정확한 사정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주민들이나 관광관련 실무자들이 핵 문제를 소상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핵위기는 일부 핵심 정책결정자들만이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어쨌든 북한은 바야흐로 자본주의 초입단계에 들어간 것은 분명해 보였다. 관광 중에 쇼핑센터를 두 번씩이나 안내하고, 남쪽 관광객이 닿는 어디에나 물건 파는 상점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열한 물건 가짓수가 늘어났고, 포장이 몰라보게 세련되어졌다.
가령 정주에서는 참새구이와 장뇌산삼, 그리고 꿀을 탄 호박에다 미꾸라지 등을 넣어 건강보양식품으로 내놓고 파는 점, 물건 깍아달라는 남쪽 관광객의 너스레에 손님 말고도 살 사람이 많다며 거절하는 모습 등은 영락없는 장사꾼의 모습이다.
따라서 물건 값 흥정은 이제 북한에서도 전혀 새삼스러울 게 없는 현상이다. 심지어 ‘떨이’까지 등장하고 있다. 팔다 남은 물건을 다 떨어서 싸게 파는 떨이는 손님을 사지 않고는 못배기는 상술로 알려져 있다. 하나라도 물건을 더 팔려는 이들의 노력에서 크게 달라진 북한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이들은 이제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냉장고, 컬러텔레비전을 살 수 있다는 데 크게 고무되어 있었다. 세련된 옷도 사 입을 수 있고, 맛나는 음식을 자식들에게 먹일 수 있는 현실을 반기는 듯 했다. 남쪽의 여느 가정처럼 부모와 노인을 공경하고, 가정의 화목을 중요시하며, 자식들을 끔직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이제 사상과 이념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북한이 사회주의를 이미 포기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설득력이 없다. 아직도 이들은 골고루 잘 먹고, 잘 사는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믿음을 갖고 있었다. 다만 가장 취약한 경제적 측면에서 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유연한 통제경제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듯 했다. 북한식 사회주의가 군사, 정치, 사상 측면에서 강국으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이제는 경제분야에서만 성과를 거두면 북한은 남부럽지 않은 나라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진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개인적인 고뇌의 표정은 서려 있었다. 과연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면서 더는 다른 나라에 도움의 손길을 뻗치지 않아도 되는 그 날이 올까. 온다면 그날이 언제쯤일까. 특히 북한이 살 길은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개혁?개방의 길 밖에 없다는 주장을 남쪽 관광객들이 강변할 때면 이들의 얼굴 표정에는 금방 어두운 그림자가 서린다.
북한 사람들은 이제 굳이 현실을 외면하고, 감정을 숨기려 들지 않는다. 못사는 모습을 감추려 하지도 않고, 그 이유를 물으면 솔직하게 대답한다. 머뭇거리지 않고 도와달라고 손을 벌리기도 하고, 감사의 인사를 빠뜨리지 않는다. 감사를 표시하는 팁도 이제 거부하지 않는다.
요즘 북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남측 관광객을 비롯한 외국인을 접하는 호텔이나 여행업 종사원들이 최고 인기있는 직업이다. 적지않은 외국인들을 접하다보면 이런저런 선진 정보를 귀동냥할 수 있고, 열심히 일하다보면 적지않은 부수입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이제 뇌물에 눈뜨기 시작한 게 아닌가라는 세속적인 판단을 하기에는 일러 보인다. 남측 관광객들로부터 받은 팁들은 개인 주머니에 들어가기 않는다. 이들은 팁들을 한 곳에 모아 소속 회사에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평양관광길은 20∼30대 젊은이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평양관광을 주관하고 있는 금강산관광총회사의 안내원들이나 호텔에서 만났던 많은 종업원들은 대개 20대 중?후반, 30대 초반의 북한내에서 촉망받는 젊은이들이었다. 김일성 종합대와 평양외국어대 등을 나온 재원들이 전면에 배치된 것이다. 이는 중국, 베트남 등 이웃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방 초기에 답습했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평양관광은 북한바로알기의 휼륭한 창구이기도 했다. 첫 관광길에 올랐던 적지않은 실향민들(이들은 자신을 극보수파라고 밝히기도 했다)은 북한이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부 모습이 착잡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들 정말 오길 잘 왔다고 말한다. 북한에 대한 많은 편견들을 털어버릴 수 있어 좋았고, 지하철 안이나 거리에서 눈치 보지 않고 책을 읽고 다니는 학생들, 멀리서나마 엿본 북한 주민들의 진솔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에서 희망들을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고 얘기한다.
물론 더러는 북한이 곧 무너지는 게 아닌가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남쪽 관광객을 수백에서 수천명씩 받아들이면서 남쪽 사람들에 대한 경계를 풀어 놓는 게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그래서 끊임없는 질문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기도 한다. “계속 이렇게 사람들을 불러들이면 북한 체제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북한이 불과 몇 개월만에 이렇게 변했다는데 앞으로 몇 개월 뒤면 얼마나 변해있을까?” “대규모 평양관광 추진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북한 핵과 관광은 언제까지 병행될 수 있는 것일까?” 등등 물음표는 끝이 없다.
평양관광은 향후 북한의 대변화를 예고하는 좋은 근거를 제공하기도 한다. 관광을 통해 들여다본 북한 사회는 더는 얼어붙은 땅이 아니었다.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변신도 마다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특히 관광산업의 매력에 눈뜨기 시작한 북한 당국은 벌써부터 새로운 관광코스와 문화재 등 볼거리, 먹거리, 팔거리 등의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유명 명소를 연결하는 도로를 닦고, 포장하는 일 등 인프라 개선이 시급해 보였다. 보다 많은 남쪽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앞으로 경비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해보겠다는 유연한 자세다. 바야흐로 평양관광은 북한 도약의 디딤돌로, 나아가 남북한 주민간 이질성을 좁히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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