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유적의 보고----강화도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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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화유적의 보고----강화도를 가다
  • 박종욱 Pjw2cj@gyotongn.com
  • 승인 2004.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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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데서 귀기울이며 물소리를 가늠하던 아침도 이젠 추억이던가. 아득히 떠나버린 바다를 포기하지 못하고 남루한 뱃전 갯내음으로 맞는 섬의 아침이여.
강화의 갯벌은 바다보다 먼저, 바다보다 더 깊은 침묵으로 세월을 인내한다.
갯벌 어딘가에 남아있을 정박의 추억을 더 이상 그리워하는 강화 사람은 없으리라. 이 섬에 사람이 들어와 산 흔적이 남아 있는 무렵 그 이전부터 갯벌은 존재했을 것. 다만 사람들은 이 지루하고 따분한 뻘무덤이 귀찮게만 여겨졌을 것이므로 무관심의 대상이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때로, 한가로이 채반에 올릴 손톱같은 고둥이나 게, 운수좋은 날 낙지라도 빼내오면 그만이었을 무욕의 대지. 바다도 아니요 뭍도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진창으로 그 위에 세월만 쌓아갔으니 무심의 땅이요 무상의 바다였음을.

다색(多色)의 새벽 하늘
두고 갈 것은 없다, 선창에 불빛 흘리는 낯익은 배의 구도(構圖)
밧줄을 푸는 늙은 뱃군의 실루에트
출렁이며 끊기는 새벽 하늘
뱃고동이 운다
선짓국집 밖은 새벽 취기
누가 소리죽여 웃는다…
<황동규의 ‘기항지2’>

허나 한반도에 강화만큼 깊은 역사적 내력을 품고 있는 지역도 없다.
이 작은 섬에서 활동한 인간의 역사 이전의 시대를 증거할 위대한 유적이 지구상에 가장 많이, 가장 뚜렷이 남아 있는 곳이 또한 강화다. 강화의 지석묘 군(群)은 이미 유네스코가 인류가 보전해야 할 역사문화유적으로 지정해 놓은 바 있다. 이 섬의 무엇이 그렇게 집단화된 인류의 흔적을 만들게 했을까.
상상의 나래는 시간을 거슬러 BC 2283년, 제위에 오른지 51년째 되던 단군왕검은 한반도를 섭렵하면서 땅과 바다를 아우르며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장소를 정하게 되는데 그때 정해진 장소가 강화의 마니산 정상의 참성단이다.
이후 참성단은 이 지역을 번갈아 지배하던 신라, 백제, 고구려의 여러 왕들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장소로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지금도 이곳에서 채집된 태양빛으로 만들어진 불이 이 땅의 젊은이들이 뛰고 구르며 육체를 불태우는 성스런 의식을 밝히는 성화로 사용되고 있으니 이 섬은 갈수록 알 수 없는 신비감을 던져준다.

바다에 섬이 있다
섬 안에 또 하나의 바다가 있고
그 바다로 나가면 다시 새로운 섬
섬 안의 섬 그 안의 더 많은 바다 그리고 더 많은 섬들
그 중심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
잠들면서 꿈을 꾸었고
꿈 속에서 다시 잠이 들었다 또 꿈꾸었다
꿈 속의 꿈 그리고 그 안의 더 많은 잠 더 많은
꿈들
<류시화의 ‘섬’전문>

섬은 그러나 고통의 역사를 가슴에 새겨놓고 있다. 한반도 중심에서 서해바다로의 진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정학적 입지 때문이었을까. 기나긴 세월을 여러 지배자들이 이 섬을 탐했으며 통일왕조를 구가하던 신라 이후에는 외세의 침략으로 혼곤했다.
하지만 섬은 풍부한 먹거리의 보고였으니 ‘강화로 들어가 굶어죽는 이 없다’는 풍설이 바람으로 전해지곤 했다. 바다에서 솟구치는 섬의 특성상 드넓은 농경지를 갖춘 섬은 드물지만 강화는 예외라 해도 좋다. 기름진 논에 비옥한 산야가 섬 구석구석 공간을 거짓말 같이 채워놓고 있어 식량 걱정은 해본 적이 없다.
여기에 철마다 종류를 달리하는 생선 떼가 줄지어 찾아들어 곤궁기를 예비하였음에 섬은 참으로 풍요했을 것이다.
북에서 발달한 몽고 세력이 한반도로 남하, 왕조를 침탈하려 했을 때도 고려가 39년이란 세월동안 이 섬을 도읍으로 정하고 버팅길 수 있었던 것도 섬의 풍부한 식량 자원과 무관치 않았을 것임을 어렵사리 짐작할 수 있다.
강화는 작물의 보고다. 강화 쌀로 조선조 임금님의 수라를 도왔고 순무로는 깍두기를 만들어 먹으며 인삼과 약쑥으로 심신을 달랬을 터.
바다도 제 역할을 했다. 염전은 천일염을 만들어 어부의 가계를 도왔고 갯벌에선 언제나 조개가 올라왔다.
봄이면 밴댕이에 송어가 뛰노는 바다가 여름 한철 우럭, 놀래미의 비늘이 얕은 수면을 까맣게 채운다. 가을에는 조기·꽃게가, 겨울에는 복어와 도다리가 찾아드니 강화에서 4계절이 그저 행복하다는 식도락이 나올만 하지 않을까.

강화도는 이미 세계적 명소로 부각돼 있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가장 강화도다운 이유는 역시 갯벌과 고인돌이다.
인류의 마지막 생존의 터전인 바다를 끼고 앉아 무한대의 생명력의 원천을 제공한다는 갯벌. 아무래도 강화도는 갯벌에 섬의 미래, 존재의 이유를 물어야 할 것 같다.
<강화도에서=박종욱기자>




□강화도

411㎢의 면적으로 국내에서 제주도 거제도 진도 다음으로 4번째로 크다.
인구 6만5천여명에 2만3천4백여 가구에 1개 읍, 12개 면으로 구성돼 있으며 서울과는 강화대교와 초지대교 2개의 다리로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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