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40&교통신문40=<20>1983년 3월 기아 전 사원 확판 궐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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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40&교통신문40=<20>1983년 3월 기아 전 사원 확판 궐기대회
  • 박종욱 Pjw2cj@gyotongn.com
  • 승인 2006.0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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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고 신화' 창출한 확판 운동

아침인사도 "봉고를 팝시다"로
김선홍사장, '봉고코치' 재성공
전 기아인 한마음으로 구사활동

1982년 3월17일 기아자동차 판매 확산을 위한 전 사원 궐기대회가 있은 후 다음날인 18일 또다시 전 사원 결의다짐이 있었다.
이 날의 결의는 종업원 궐기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1982년 급여인상분과 상여금 전액 반납, 근무시간 연장 등을 자발적으로 결의하고 이를 김선홍 사장에게 정식문서로 제출했다.
기아사(起亞史)에 기록된 결의문의 내용을 보면, "우리는 기아인의 한사람으로서 이미 전종업원의 이름으로 결의한 사항에 대하여 전폭적으로 공감, 지지하여 서명한 바 있으며, 그 결의사항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데 일조가 되고자 아래와 같은 전사원의 의견을 집약해 결의한다.
① 우리는 기아 재건 및 명예 회복을 위하여 전 사원이 일치단결 경영정상화를 이룩할 수 있도록 총력을 경주한다.
② 우리는 내 직장과 내 회사의 재건에 보탬이 되기 위해 1982년도 급여 인상분에 대해 전액 반납한다.
③ 우리는 1982년도 상여금을 전액 반납한다.
④ "우리는 일련의 사태에 대하여 추호의 동요됨이 없이 정상근무에 임할 것은 물론, 회사재건의 가속화를 위하여 근무 시간을 연장한다"는 비장한 각오가 담겨져 있다.
이러한 모기업의 구사운동은 삽시간에 계열회사에 파급돼 아세아자동차공업, 기아기공, 기아써비스, 동우정기 등 그룹전체 8300명의 종업원들이 일치단결된 모습으로 회사재건운동에 나섰다.
또 3월19일에는 노조측이 노사협의회에서 임금 12% 인상안을 철회하는 한편, 회사측이 제시한 9% 인상안에서 오히려 2%를 반납하여 7%로 양보하는 애사심을 발휘, 노사일체의 참모습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노조측은 상여금의 전액반납, 특근수당적립으로 올림픽지원기금조성, 적극적인 근검절약으로 원가절감달성, 작업능률의 극대화로 생산성 향상, 모범적인 노사협조로 회사재건에 앞장설 것 등을 다짐했다.
이같은 기아들의 결의와 다짐이 있자 당시 김상문 전 회장은 자신의 전 재산을 한국기계공업의 발전과 종업원 복지향상을 위해 희사할 것을 결심, "나는 기아산업을 아끼는 기아인의 한사람으로서 기업은 죽어도 기업인은 산다는 수치스러운 선례는 결코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희사한 재산에 관한 일체의 권한을 당시의 민경중 회장과 김선홍 사장에게 일임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전회장의 이 같은 전 재산 희사는 경제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신문들은 빅뉴스로 대서특필했다.
기아인들은 2년 동안에 걸친 누적적자 503억원을 해소하고 빈사상태에 빠진 회사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수익증대를 통한 흑자전환이 가장 시급한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창안된 것이 'RCD-22작전'(Reasonable Cost Down220,000)과'봉고확판운동'이었다. RCD란 합리적인 원가절감방법이다. 판매량 증대와 제품가격 인상에만 의존해 수익증대를 꾀하던 종전의 경영방식에서 탈피, 자재·생산·관리 등 모든 부문에서 합리적으로 원가를 낮춰 이익을 창출하는 새로운 경영기업이었다.
생산제품 대당 22만원의 원가를 절감해 연간 5만대 생산기준 110억원의 이익을 창조하자는 QCD-22작전계획은 VE·VA 교육에서부터 시작됐다. 선진국에서 이미 활성화돼있는 새로운 원가절감기법인 VE(Value Engineering·價値工學)와 VA(Value Analysis·價値分析)을 도입, 현장분임조를 중심으로 전 사원에게 지속적으로 교육을 실시해 나갔다.
그리고 'RCD-22작전 뉴스'를 매월 발간, 적극적으로 계도활동을 전개했다. 김선홍 사장은 이 작전의 성패에 기아의 앞날이 달려있다고 강조하고 전 기아인의 분발을 촉구했다. 1982년 5월25일자 'RCD-22작전 뉴스'창간호에 실린 김사장의 창간사를 살펴보자.
"기아가족 여러분! 최근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긴 고난의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는 주위환경, 불투명한 경기전망, 원가고의 압박 등은 82년도 우리의 목표인 흑자경영 전환마저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늪에서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끊임없는 원가의 개선과 이익 확보에 있음을 통찰하고 금번 RCD-22작전을 전개하게 되었습니다.(중략)
전 사원 여러분! 이번 RCD-22작전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우리 기아인의 의지와 전력을 다시 한 번 발휘해 1982년도 흑자전환 목표달성은 물론, 40년의 찬란한 역사와 전통을 계승할 수 있도록 사원 여러분은 총력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기아가족 여러분! 나는 여러분의 자부심과 슬기로운 지혜를 믿고 금번 RCD-22작전이 반드시 성공하여 82년도가 역사적인 전환점이 되어 길이 빛날 것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중략)"
처음에는 일부 사원들의 이해부족으로 마찰도 없지 않았으나 원가의식이 점차 확산돼 가면서 RCD-22작전은 마침내 본 궤도에 진입한다.
제 1차 연도인 1982년의 목표를 110억원으로 설정한 기아의 RCD-22작전은 실시 첫 달부터 각 부문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타났으며, 5월 말에는 공장부문에서 16억7300만원, 본사부문에서 2억8400만원 등 모두 19억5700만원으로 목표의 20%에 육박하는 승전보가 기록됐다.
이어 6월말에는 공장부문에서 25억8600만원, 본사 부문에서 6억100만 원 등 도합 31억8700만원을 달성, 목표의 30% 선에 이르렀고 7월 말에는 공장 부문 35억9800만원, 본사 부문 7억9700만원을 달성, 도합 43억 9500만원으로 목표의 40%에 육박하는 실적을 보였다.
이러한 추세는 계속 이어져 1982년도 종합실적은 110억원의 목표를 20억원이나 초과한 130억4700만원을 달성했다.
1983년도의 2차 RCD운동은 목표 110억2000만원, 실적 104억3000만원, 경상 이익 321억원을 올렸으며 1984년도 제 3차에는 목표 200억원, 실적 143억5900만원, 경상이익 390억원을 기록했다.
따라서 기아는 1982년부터 1984년까지 3년 동안 RCD 운동 전개로 무려 78억8700만원의 원가를 절감, 적자에서 허덕이던 회사를 흑자의 반석 위에 올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경영 구조를 혁신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다음은 봉고 확판 운동이다. 이 운동은 RCD-22 작전과 더불어 침몰 직전의 기아를 흑자 기업으로 건져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봉고의 신화'를 창출한 이 확판 운동은 RCD 운동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1982년 2월부터 추진됐다.
이보다 앞서 1981년 11월 전 사원들이 영업 파트에서 추진하던 '두 달에 1대 팔기' 운동에 자진 참여, 전 사원 판매 운동이 전개됐으나 의욕에 비해 실적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경영진은 그 대책을 강구하던 끝에 '자동차 기업이란 한 차종만 히트시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전 사원의 판매력을 한 차종에 집중시켜 결정을 벌이기로 하고 선정한 차종이 바로 '봉고코치'(E-2200)였다.
김선홍 사장은 봉고 확판 운동에 앞서 우선 전 사원에게 '봉고이즘'을 심어주기 위해 근무복 명찰 위에 봉고의 상표를 붙이고 아침 인사도 "봉고를 팝시다"로 대신하도록 했으며 또 그 동안 팔린 봉고가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가를 조사,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봉고의 용도를 설명토록 했다. 이때부터 봉고 코치는 두각을 나타내면서 인기상품으로 변모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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