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의 기본은 보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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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의 기본은 보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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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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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논설위원-홍창의 관동대학교 교통공학과 교수>

교통수단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보행이다.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하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보행이 기본이 되지 않고서는 통행이 완성될 수 없기 때문에 보행은 매우 필수불가결한 교통수단이다.
예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된 교통수단은 보행이었다. 역대 왕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가마도 있고 말과 마차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장거리용이고 궁궐 내에서는 되도록 많이 걷게 했다. 그것이 왕의 심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임을 신하들이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궁궐의 경내 단지계획도 건물과 건물사이를 편안히 걸을 수 있게 하고 곳곳에 연못과 정자를 만든 것도 왕들이 쾌적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한 지혜였다.
옛날 사진을 보면 살찐 백성이 별로 없다. 먹을 게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많이 걸어서 살찔 틈이 없었던 게 아닌지. 요즘은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다이어트 관련 책이라고 한다.
보행환경이 줄어들어 비만만 늘어가는 게 아닌지. 자동차 중심의 사회, 깊이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차도도 잘 만들어져야 하겠지만, 걷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나라처럼 걷기 힘든 나라도 드물 것이다. 보도가 없는 곳에서 걷자니 자동차들의 압박을 받으며 걸어야 한다. 인도가 있는 곳도 보도블록이 평평하지도 않고 깨진 곳도 있으며 흔들거려 밟으면 흙탕물이 튀는 곳도 많다.
운전자들도 보행자를 무시한다. 외국에서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 첫발을 먼저 디딘 보행자를 본 순간 자동차가 무조건 정지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무신호 횡단보도를 진입하기 위해서는 자동차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보행자가 기다려야 한다. 보행자 녹색 신호등에 조차 횡단보도를 점유하고 있는 차량들이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앞으로는 ‘횡단보도 이격거리’ 개념이 없어져서 횡단보도가 지금보다 훨씬 많아지고 넓어져야 한다. 그리고 나무그늘과 예술적 조형물이 어우러지고 동행한 사람과 편한 걸음을 걸으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보행교통수단 특유의 장점을 최대한 보장해 줄 수 있는 넉넉한 인도가 필요하다.
선진국의 경우, 보도에 유모차를 밀며 한가롭게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힘없는 노인일지라도 유모차와 함께 시내를 이동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유모차 바퀴가 굴러갈 수 있도록 보도의 시설이 잘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계단이 있는 곳에도 유모차를 미는 사람을 위해 가운데 계단이 있고 유모차 바퀴가 닿는 양쪽은 완만한 경사면을 이루고 미끄럼방지 처리를 해 오르고 내려가는 데 위험이 없도록 시공되어 있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유모차를 끌고 시내를 산책한다면 우선 보도블록 사이로 유모차 바퀴가 자꾸 빠질 것이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 턱이 높아 앞쪽을 들었다 내려놨다 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유모차가 건설공사가 진행되는 지역까지 통과하여야 한다면, 보도가 끊겨서 갈 길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지방에서도 보도문제의 심각성은 서울보다 덜하지 않다. 옛날 동네와 동네사이를 걸어 다니던 풍습은 온데간데 없다. 지방도이든 국도이든 사람이 도로변에 걸어 다닐 공간이 없다. 골목길이 있어 읍내와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차도만이 있을 뿐이다. 늘어난 승용차와 난폭하게 달리는 대형트럭들은 도로를 보행자와 공유하기를 거부한다.
버스운행횟수가 적고 소득도 없는 시골노인의 경우, 걸어서 옆 마을로 이동할 도로가 마땅치 않다. 보행자가 차도로부터 쫓겨난 상황에서 지방도로 상의 보행은 자살행위로 인식된 지 이미 오래다.
다음 세대에는 차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다시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동차의 노예로 살기보다는 조용히 생각하면서 걷고 내 주관대로 이동할 수 있는 인도와 차도가 균형을 이루는 도로를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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