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보다 앞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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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 보다 앞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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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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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원논설위원·권용장 한국철도기술연구원 국가물류표준화연구단 단장>

화물연대 파업이 지난 6월 11일 전면파업으로 치달았다가 나흘만에 종료됐다. 지난 2003년 이후 거의 매년 주기적으로 반복되면서 물류분야의 연례행사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모양새다.
이렇게 계속되는 파업은 도대체 누구의 잘못이며, 누구의 책임인가?
파업의 명분만을 놓고 따지면 매년 조금씩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거의 비슷하다. 먹고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생존권의 요구이다. 이에 대한 정부의 조치도 매년 불법파업이므로 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한다는 똑같은 메뉴가 제시된다.
자칭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해 있다는 우리의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아이러니한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난 몇 년간의 이러한 싸움은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화물연대와 정부측 모두 이제는 연례행사로 착각하지 않는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논리적 타당성이 분명 존재한다고 할 수 있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모순이 항상 내포되어져 있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이번에도 그러하였듯이 양자가 타협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의사소통하는 것만이 해결책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자극하고, 자기의 주장만 내세우는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이번 화물연대 슬로건의 내용을 보자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말하고자 하는 문구가 너무나 섬뜩하고 자극적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대처방안은 어떠한가?  "명분도 실리도 없는 파업"이라고 규정한다.
과연 진정으로 화물연대의 파업이 명분도 실리도 없는 파업을 하고 있는가? 점점 악화일로의 길로 접어드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화물연대 입장에서 보면 그 원인이 어찌됐건, 결국은 먹고살기 힘들어서 나타나는 생존권 투쟁임에는 분명하다. 어찌 이들의 주장에 명분이 없는가? 삶에 대한 명분이다.
물류산업의 다단계식 구조로 인해 말단의 화물운송업자는 나날이 그 삶이 피곤해지고 있다. "풍년거지 더 서럽다"는 말이 있다. 타 산업에서는 매년 조금씩 수입이 증가하는 반면, 화물운송업자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전체적인 수익성이 더욱 더 악화 되어 가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정부입장은 어떤가?
파업으로 인해 물류가 멈추면 결국 수출을 주요핵심으로 삼고 있는 국가입장에서는 사회적 파장이 크게 확대되고, 이는 결국 사회전체적인 불안요인으로 발전될  수 있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국가 또한 그냥 방치만 할 수는 없다,  방치한다면 이 또한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참으로 어렵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 보다는 원칙이라는 잦대를 놓고 한 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옛날 속담에 "에해 다르고, 애해 다르다"라고 했다. "에"와 "애"는 음이 서로 비슷하지만 쓰임이 전혀 다른 것과 같이 언뜻 보기에는 같은 것 같지만 내용은 전혀 다를 수 있다.
매년 되풀이되는 화물연대 파업을 국가적 연례행사로 치룰 것인가 아니면 갈등을 사전에 방지할 것인가?
이 세상 어디에도 갈등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그렇다면 문제가 불거진 후 뒷북치는 사후수습이 아니라 앞 북을 쳐서 사전에 북소리가 이해당사자의 귀에 명확히 각인되고 이해될 수 있는 예방약을 제조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샤르트르가 말하길 "인생이란 B와 D사이에 놓인 C다"라고 했다. Birth(출생)와 Death(죽음) 사이에 놓인 Choice(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뒷북보다는 앞 북을 치는 선택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이다. 또한 이왕지사 치는 앞 북이라면 크게 치자. 큰 북에서 큰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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