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 엔진 환경 규제 강화로 소비자 부담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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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 엔진 환경 규제 강화로 소비자 부담 가중”
  • 이승한 기자 nyus449@gyotongn.com
  • 승인 201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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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가격 인상으로 시장 위축 가능성 제기
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널

차량 가격 인상으로 시장 위축 가능성 제기

“준비 위해 적용 시점 유예돼야” 주장 나와

광명 사는 개별화물업자 안모(63)씨 소유 화물차는 올해로 만 11년째 운행된 낡은 차다. 요샌 조금만 짐을 실어도 고속도로에서 속도 내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얼마 전 큰마음 먹고 수십만 원 하는 공구함을 새로 구입했지만, 근본적으로 차를 바꿔야 하는 실정이다.

안씨는 “수입이 일정치 않아 노후 차를 선뜻 교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간 주로 박스나 전선∙원단∙기계장비∙부품∙음향장비∙플라스틱용품 등을 실어 날랐다. 업체를 통해 일감을 찾으면 중간업자가 몇 만원씩 수수료를 챙겨간다.

근데 요새 하도 경기가 안 좋아 일감이 없다고 한다. 간신히 짐을 싣고 충북지역까지 내려갔다가도 다시 돌아올 때 빈차로 올라오는 일이 다반사라 했다. 그마저도 날씨가 나쁜 날은 공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나이 예순을 넘기고부터 짐을 싣고 내릴 때 힘에 부칠 때가 많아졌다. 안씨는 “아이들이 다 각자 삶을 살아 부부가 생활할 정도만 벌면 되는데, 보험료에 세금내고 나면 매달 생활이 빠듯하다”고 말했다.

내년에 화물차 가격이 제법 많이 오를 거란 소식을 듣고부터 안씨 시름이 깊어졌다. 차가 살림 밑천인데, 가격이 오르면 그마저도 중고차 시장에서 좋은 차 잡기 어렵겠다 싶어 엄두가 나지 않는단다.

내년 1월 1일부로 국내 모든 디젤 중∙대형 트럭과 버스에 대한 배기가스 배출규제가 기존 유로5에서 유로6로 강화된다. 포터나 봉고, 스타렉스와 같은 소형 차량은 2016년 9월부터 적용된다.

유로6 기준이 적용되면 관련 기술 개발 및 부품 제작 등으로 인해 중∙대형 화물차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업계는 10~20% 내외에서 가격이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금액으로는 1000~1500만원 선이 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화물차 소유주들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화물차 가격은 2000년대 이후 환율 등 영향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인상됐다. 지난 10년 전과 비교해 가격이 평균 30~40% 정도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도 부담되는 차 가격이 유로6 기준 적용으로 추가 인상될 경우 하루 벌어먹고 사는 화물차 종사자에게 큰 고통을 안길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설상가상 화물차에 부과되는 지방세(자동차세)도 대폭 인상된다. 우선 2015년 올해 대비 50% 오르고, 2016년(75%)을 거쳐 2017년에 100%까지 인상된다. 정부 개편안에 따르면, 오는 2017년부터 2톤 이하 화물차(1만9200원), 5톤 이하 화물차(4만5000원), 10톤 이하 화물차(9만원)별로 영업용 차량 1대당 인상된 연간 자동차세가 매겨진다.

차량 가격이 오르면 안씨처럼 영세한 차주는 되도록 소유 화물차를 오래 쓰려 할 수 있다. 낡은 차를 어떻게든 고쳐 타면 환경이나 안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아무래도 차가 낡다보니 도로 위를 달릴 때 신차보다 매연 등이 더 나올 수 있다. “환경 개선하겠다고 규제 강화하다 오히려 환경은 물론 화물업계 발목 다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 이를 근거로 나왔다.

일부 전문가들도 유로6 환경규제로 화물차 차령이 계속 올라가면 환경은 물론 안전까지 장담할 수 없는 차가 도로 위에 넘쳐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럭이 ‘도로 위 흉기’가 될 것”이라며 좀 더 과격하게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다.

화물차는 지난 1998년 경기부양과 규제완화를 이유로 사용연한(차령)이 폐지됐다. 기존에는 트럭 13년, 1톤 미만 용달차 10년으로 규제를 받았다. 차령 폐지로 국내 화물차 노후화가 더욱 심해졌다는 게 일부 업계 관계자 주장.

실제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등록된 전체 화물차 333만8492대 가운데 10년 이상 운행된 차는 155만2881대에 이른다. 비율로는 46.5% 수준이다.

특히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자가용 화물차는 노후화가 더욱 심각하다. 전체 293만9919대 중 48.3%에 이르는 142만2대가 차령 10년을 넘겼다. 이중 1994년에 제작된 차도 18만5108대나 된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 지입 차량 비중이 높은 대형 화물차 시장 특성상 구매자 대부분이 개인이라 가격에 따라 수요가 큰 영향을 받는다. 완성차 업계는 “가격 인상으로 차를 사려는 사람이 없어 수요가 줄면 당장 수익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환경 관련 엔진 기술에서 국내 업체가 유럽 업체보다 다소간 뒤쳐져 있는 점도 걸림돌이다. 국내 업체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비용은 물론 시간 투자가 많이 필요하다. 국내 시장 규모를 고려해 업체 스스로 기술 개발이 불리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유럽산 부품을 들여와 엔진에 장착하는 쪽이 업체 입장에서 더 나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차량 가격은 더 많이 오르게 된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유로6 기준에 맞추려면 차량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데, 이를 소비자에게 납득시키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업체 한 관계자는 “경쟁 업체가 많다보니 차량 가격 인상 폭을 최대한 줄여서라도 시장에서 수요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며 “강화된 환경기준을 충족시키려면 차 가격이 어쩔 수 없이 오르게 되는데, 자칫 소비자에게 추가 비용을 모두 떠안긴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화물∙완성차 업계는 물론 개별 소비자 상당수가 “현행 유로5도 큰 문제가 없는 환경기준인데 국내 업계 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질소산화물(80%)이나 미세먼지(50%) 모두 기존 보다 많이 줄이게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당분간은 유로5 기준을 적용해도 환경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유로6이 이미 도입돼 있는 유럽으로 수출 길을 열기 위해 규제 강화가 시급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중∙대형 이상 화물차는 유럽에서 수입은 되고 있어도 국산차가 수출되지는 않고 있다.

이를 근거로 업계는 “중∙대형 화물차에 대한 규제가 오히려 국내 소비자에게만 피해를 안기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로6이 모든 국가가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국제 표준 규제가 아니라는 점도 이런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현재 미국은 자체 규정을 따로 두고 있고, 중국은 유로4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같은 유럽권인데도 러시아는 유로5다.

국내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환경을 더욱 깨끗이 하는 게 목적이라면 전기와 같은 청정 클린 엔진을 단 고성능∙고출력 화물차가 나오지 않는 이상 언젠가 유로6이 아닌 유로7 또는 유로8로 규제가 강화될 게 당연하다”며 “유럽 업체야 차근차근 대응해 기술을 선도할 수 있어도 한국 같은 후발주자는 벅찬 경쟁에 나서야 하는데도 정부가 갑옷도 입히지 않고 전쟁터로 내모는 격”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론 관련 업계 많은 사람들이 유로6 기준이 법제화돼 있는 상황에서 화물차 구입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주는 정책 도입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현재 하이브리드나 전기 승용차를 구입할 때 정부가 보조금을 준다. 소상공업자가 많이 구입하는 소형 화물차와 CNG(천연압축가스) 버스에도 보조금 혜택이 있다.

지난 10월 16일 버스 및 화물차 운송사업 연합회 4개 단체가 공동으로 “유로6 적용을 2017년까지 2년 유예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건의서 제출에 참여한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관계자는 “규제 강화에 따른 운송업계 비용 부담을 정부가 재정 지원을 통해 덜어 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완성차 업체도 기술 개발을 통해 차량 가격 인상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갖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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