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용 금호아시아나 명예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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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 금호아시아나 명예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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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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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 글로벌 수송물류 기업 도약 터 닦아
평소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도 아끼지 않아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 장이 23일 오전 2시7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23일 타계한 고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은 1932년 2월 17일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명예회장의 5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재학 중이던 1956년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8년 귀국해 대통령 경제비서관, 경제기획원 장관 특보 등 공직생활을 거쳐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부친의 권유로 1972년 금호실업 부사장 취임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했으며 지난 1984년 고 박인천 회장 타계직후 그룹 총수에 올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제2창업을 주도했다.
고 박성용 명예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지금의 글로벌 수송물류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기초를 다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취임직후 계열사간 합병 및 비수익사업 정리 등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그룹의 재도약 기틀을 마련, 취임당시 6900억원이던 그룹 매출을 1995년 4조원 규모로 끌어올리는 등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그룹을 성장시켰다.
또 지난 1988년 아시아나항공을 설립해 항공운송사업에 새롭게 진출하는 한편 금호타이어를 세계10위권 타이어업체로 성장시키는 등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국제적 기업으로 키워냈다.
고인은 평소 문화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2002년 7월 타계한 동생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경영일선에서 은퇴한 뒤 문화 공연사업에 전념해 왔다.
고인은 경영에 관한 사안은 일절 간여하지 않으면서도 임직원들에게 좋은 공연이 있을 때는 반드시 관람하도록 압력을 행사해 왔다고 임직원들은 술회했다.
특히 고인은 한국메세나협의회장을 겸하면서 문화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최근에는 한 초등학교 교정에 '친근한 영웅들의 기념상'을 세워 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인은 또 한중우호협회를 올해 초까지 이끌면서 중국과의 교류를 주도해 왔다. 한중우호협회는 동생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맡고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마가렛 클라크 박 여사(74세)와 딸 미영씨(40세), 아들 재영(36세), 며느리 구문정(31세)씨, 손자 준명(5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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