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보행자사고, 잡을 수 있을까?
상태바
노인 보행자사고, 잡을 수 있을까?
  • 곽재옥 기자 jokwak@gyotongn.com
  • 승인 2015.03.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인보호구역 ‘2배 처벌’…피해자는 이득 없어

주변시설물 설치·관리 제각각…책임전가 용이

 

고령자 교통사고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다양한 대책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정작 그 실효성을 두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3년 만65세 이상 노인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3만283건으로 해마다 큰 폭씩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자 수 역시 1833명으로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5092명) 중 35.9%에 해당해 연령대별 교통사고 사망자 수 중 가장 높았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올해 노인보호구역 10~20개소 시범운영을 거쳐 내년부터 지방자치단체에 안전시설 확충을 위한 예산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경우 노인사고가 많은 전통시장이나 공원 등에 무단횡단 금지시설·무단횡단 경고음시설 등을 시범운영하고, 이들 지점을 노인보호구역 지정 요건에 포함하도록 중앙정부에 건의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노인보호구역 확대를 골자로 하는 주승용 의원의 도로교통법 개정안 자료에 따르면, 현재 노인보호구역은 전국 626개소로 어린이보호구역 1만5444개소의 4%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가 내놓은 노인보호구역 확대 계획도 어린이보호구역 확대를 통해 이끌어낸 어린이사고 감소효과를 재연하고자 하는 의도가 배경에 있다.

그러나 단순히 노인보호구역이나 관련 시설을 확대 지정하는 것 자체로 노인사고 감소효과를 불러오기는 어렵다는 게 다수 시민들 의견이다. 현재 설치돼 있는 노인보호구역 안에서도 교통법규를 지키는 운전자가 많지 않고, 이로 인해 보행자들 역시 안전보행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서초구 소재 한 노인종합복지관을 이용하는 A씨(남자, 70세)는 “복지관 앞이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지 꽤 됐지만 보도와 차도가 구분돼 있지 않는 데다 짐차들이 무단으로 주·정차하는 경우가 많아 차와 사람이 같이 이동할 때 늘 불편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또 B씨(여자, 66세) 역시 “노인보호구역이라고 해서 차량들이 일반도로에 비해 속도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동차전용도로로 착각하는 것 같다”며 “순발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을 고려한다면 시속 30킬로미터 속도제한을 대폭 낮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다음 달부터 노인·장애인보호구역 내 과속, 신호, 주·정차 위반 등 법규위반 시 어린이 보호구역과 동일하게 일반도로에 비해 2배 가중처벌토록 도로교통법이 개정됐지만 노인보호구역 안에서 사고 발생 시 잘잘못을 가리는 일은 여전히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늦가을 서울 소재 한 노인보호구역 안에서 보행 중 달려오는 개인소유 소형화물차와 C씨(여자, 68세) 여성이 부딪친 사고가 났지만 해당 차량이 규정속도를 지켰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 형사처벌 없이 합의에 그쳤다.

당시 사고 관련 상담을 진행한 장옥희 한국교통장애인협회 상담실장은 “당시 주변에 CCTV가 있었으나 과속 측정용 CCTV가 아니었던 데다 차량 자체에 속도를 확인할 수 있는 기기도 설치돼 있지 않아 운전자는 과속이 아닌 안전운전불이행에 따른 범칙금을 내는 데 그쳤다”면서 “노인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여러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사고를 규명할 수 있도록 주변 시설물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더 시급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어린이·노인 및 장애인 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을 보면 보호구역의 도로가 보도와 차도로 구분되지 않은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보도와 차도를 구분해 설치토록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좁은 도로가 많아 이면도로로 운영되는 곳이 많다. 해당 구역 안에서 실제 차량 속도를 확인할 수 있는 과속단속용 CCTV도 서울의 경우 단 1곳에 설치돼 있는 게 전부다.

한편 현행법은 보호구역을 지정·관리하는 곳은 지자체에 맡기고 있지만 이를 신청하는 것은 노인복지시설의 설립·운영자로 정하고 있어 실질적 안전확보를 위한 보후구역 설치의 의무소지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게다가 주변 시설물과 관련해서도 ▲신호기·안전표지 등 교통안전시설은 지방경찰청장이나 경찰서장에 ▲보도를 비롯한 도로표지, 도로반사경, 과속방지시설, 미끄럼방지시설, 방호울타리 등 도로부속물은 시장 등에 ▲노상주차장 설치 금지는 특별시장·광역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 등에 설치 주체가 분산돼 있어 사고 발생 시 책임전가하기 용이한 구조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