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규명 요원, 믿을 건 기록장치 뿐”
상태바
“급발진 규명 요원, 믿을 건 기록장치 뿐”
  • 김정규 기자 kjk74@gyotongn.com
  • 승인 2015.04.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운전자 54% “내게 급발진 일어날 가능성 있다”...제조사 불신 83%

블랙박스, ECU 의존도 높아...“구제 가능성 전무, 인식 변화 필요”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그 발생빈도에 비해 피해 정도가 크고 원인규명이 명확하지 않아 운전자의 우려와 무력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운전자들은 의지와 무관한 급발진이 여전히 존재하며 그 원인은 자동차의 결함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대부분의 운전자는 자신도 급발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급발진이 일어났을 때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어 블랙박스와 CCTV 같은 기록장치 의존도가 높게 조사됐다.

자동차전문 리서치회사인 마케팅인사이트가 2014년 연례 자동차기획조사에서 자동변속기 차량 운전자 1207명에게 급발진에 대해 물은 결과,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상황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는 운전자는 2%로 극소수였으며, ‘타인 운전 차량에서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는 6%로 집계됐다. ‘어떤 경험도 없다’가 92%로 소수만이 급발진으로 추정되거나 유사한 사건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운전자의 상당수는 자신에게도 급발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자신이 운전하던 중 ‘급발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고 보는지 물은 결과, 6명 중 1명(16%)은 ‘얼마든지 있다’고 했고, 5명 중 2명(38%)은 ‘확률은 낮지만 틀림없이 있다’로 답했다. 운전자의 과반수(54%)가 언제든지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반면 ‘전혀 없다’는 답은 5%에 불과했다.

운전자의 대부분은 급발진이 실제로 있고, 그 원인이 ‘자동차의 기계적․전자적 결함 때문’이지(85%), 운전자가 ‘자신의 실수를 감추려 떼를 쓰는 것’(8%)이라고 보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자동차 회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83%), 사고에 대한 판결이 모두 ‘운전자 과실’로 나는 이유는 ‘법이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기 때문’(90%)이라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압도적 다수가 급발진의 원인이 자동차에 있으나, 불리한 법 때문에 운전자 과실로 몰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만일 자신이 급발진 사고의 당사자가 되었을 경우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라는 질문에는 ‘차 안의 블랙박스’가 43%로 1위를 차지했으며, 그 다음은 ‘차 안의 전자기록 장치(ECU, EDR 등)’(22%), ‘주변에 있는 CCTV․목격자’(10%), ‘급발진 관련 민간단체’(7%), ‘소비자 보호단체’(5%)의 순이었다. 운전자의 75%가 가장 믿을 만한 것으로 사건 순간을 기록한 장치를 지목했으며, 그 다음은 12%가 민간 소비자단체를 꼽았다.

원인제공자로 간주되는 자동차제작사는 물론, 정부, 사법부, 경찰, 언론, 보험회사 모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소비자는 보고 있었다. 최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인터넷 동호회나 SNS도 도움과는 큰 거리가 있었다. 이 결과는 한국 운전자들이 급발진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해도 믿고 기댈 만한 기관도, 법과 제도도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됐다.

업계 전문가는 “운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급발진의 원인이 자동차임이 자명하다. 그러나 운전자 실수라는 오명을 쓰고, 억울함을 호소해도 그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실이 기록장치 의존도를 높였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블랙박스가 급발진 원인규명에 도움이 된 적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동차 관련 소비자단체는 “급발진 사고에 대해 제조사의 책임 있는 자세 변화가 필요할 정도로 소비자 인식이 변화됐다”며 “사고 원인규명에 대해 정부차원의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