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운전자의 우울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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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운전자의 우울한 선택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15.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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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 박사의 교통안전노트

우리나라 출산율은 1.19명으로 OECD 국가의 평균인 1.7명보다 훨씬 낮고 일본의 1.3명보다 낮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심각한 저출산과 맞물려 고령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2014년 말 기준으로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12.7%를 차지하여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26년에는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20%에 이를 전망이다. 고령화는 우리 국민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소비수요를 위축 시키고 노동공급을 줄여 경제성장률 저하와 일자리 감소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의료기술의 발달과 건강·복지 수준이 향상되면서 65세 이상의 경제활동 참여를 희망하는 고령자도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 노후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버택배나 공공근로사업 등에 고령인구가 집중하고 있지만 실질소득이 월 2~30만 원에 그치고 있다. 사실상 고령자를 위한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은 무척 어려운 현실이다. 반면에 택시나 버스 등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고령자는 훨씬 사정이 낫다. 개인택시 사업면허를 갖고 있으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80세를 넘겨서도 운전할 수 있다. 운수업계가 아무리 어려워도 노후생활을 어느 정도 편하게 누릴 정도의 소득이 생기기 때문에 고령층이 선호하는 편이다. 또 운전을 오랫동안 해 왔으니 경험도 많고 안정감 있게 운전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고령의 사업용 운전자들은 3~40년 동안 현장 경험이 축적된 운전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대부분의 고령운전자들은 운전에 관한 한 굉장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미국의 풍자작가인 게리슨 케일러(Garrison Keillor)는 라디오 드라마를 배경으로 ‘워비곤 호수’(Lake Wobegon)라는 가상마을을 만들어 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이 마을 여자들은 스스로 힘이 세고 남자들은 다 잘 생겼으며 아이들도 자신이 평균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의 유명세 때문에 과신효과 또는 우월감 효과를 가리켜 ‘워비곤호수 효과’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미국인 대상으로 실시한 어떤 조사결과에 따르면 “자신의 운전능력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90% 이상이 “나는 평균 이상으로 운전을 잘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거의 모든 운전자들이 자신이 평균보다 운전을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택시나 버스, 화물자동차를 운전하는 고령운전자에게 이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그런데 최근 10년간 전체 교통사고는 10.3% 감소한 반면 고령운전자 사고는 3.9배나 증가했다. 인구대비 교통사고 사망자수를 비교하여도 고령자의 사고율이 비고령자보다 3배 높게 나타났다. 또한 고령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22.3명으로 OECD 28개국 평균의 2.5배나 되어 우리나라가 맨 꼴찌에 해당한다. 상당수 고령운전자가 비고령자보다 운전능력이 떨어지지만 운전자 대부분이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시력과 인지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는 것도 모르고 심야시간대에 대형 교통사고를 야기하기도 한다. “나는 충분히 더 일할 수 있다”, “나는 누구보다 운전을 자신한다”고 해도 노화가 진행될수록 사고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제7차 국가교통안전기본계획(2012~2016년) 수립 시 외국의 사례를 토대로 사업용 자동차에 대한 고령운전자의 운전을 제한하는 추진과제를 제안했다가 노인단체의 반대로 철회했다. 외국은 고령운전자의 면허갱신기간을 단축하거나 의학적 진단서 제출을 의무화 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도로주행시험을 실시하여 운전능력이 저하되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운전범위를 제한하거나 아예 운전면허를 말소하기도 한다. 지난해 6월 고령운전자에 대한 정기 적성검사 시 교통안전교육을 의무화하고 적성검사에 인지기능검사를 추가하는 「도로교통법」 개정 법률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되었지만 노인단체의 반발로 입법이 무산되었다. 지난해 말에는 국토교통부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을 개정하여 2016년부터 65세 이상 사업용 운전자에게 자격유지 검사 제도를 시행키로 했지만 고령운전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인택시 업계의 반발로 택시운전자에 대해서는 자격유지 검사제도 시행이 유보된 상태다.

지속가능한 노인 일자리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고령운전자라는 이유로 일률적으로 운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신체기능이나 인지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상태에서 운전하게 하여 무고한 인명을 죽게 하거나 다치게 할 수는 없다. 우울하지만 선택을 해야 한다. 운전대를 잡기에는 무리라고 판단되는 연령이라면 운전면허 적성검사 때 신체검사를 강화하고 검사주기를 단축하더라도 무조건 반대만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고령운전자의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객원논설위원․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연구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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