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 왕국 일본을 가다(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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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차 왕국 일본을 가다(上)
  • 이승한 기자 nyus449@gyotongn.com
  • 승인 201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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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단에서 스포츠까지, 원하는 차종 다 있어
 

세단에서 스포츠까지, 원하는 차종 다 있어

한 해 팔리는 신차 10대 가운데 4대 경차

“경제성이나 운전 편의성 고려 수요 많아”

[오사카=이승한 기자]지난 8월 초 오사카에서 만난 마에다 카즈야(前田和也∙27)씨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입사한 사회 초년생이다. 회사를 다닌 지 6개월 정도 지난 올해 2월 마에다씨는 다이하츠 브랜드가 만든 경형승용차(이하 경차) ‘탄토’를 구입했다.

이것저것 필요한 옵션을 갖춘 이륜구동 차를 구입하는 데 들어간 금액은 우리 돈 1260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마에다씨가 살고 있는 집은 주차 공간이 있지만 협소해서 소형차조차 세우기 벅찬 상황이었다. 그런데 차체 길이와 폭이 각각 3.4미터와 1.5미터가 되지 않아 힘들이지 않고 차를 주차할 수 있었다.

마에다씨는 회사가 비교적 견실해 1년차인데도 교통비에 잔업수당 등을 더해 한 달 평균 21만엔(한화 208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오사카 물가를 고려하면 많은 금액이 아니다. 차를 몰아야 한다면 세금이나 각종 혜택이 많은 경차가 제격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에다씨는 “1~2주에 한 번씩 고베에 있는 부모님을 만나러 가거나, 개인용도로 긴요하게 차가 필요해지는 경우가 많아져 경차를 구입했는데 크게 만족하고 있다”며 “일본에서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여 돈을 벌기 시작한 사람이 웬만큼 여유가 있지 않고서는 중∙소형 승용차를 구입하는 게 너무나 힘들다”고 말했다.

요시다 히로유키(吉田博之∙54)씨는 3년 전 다니던 중견회사에서 나와 꽃집을 개업했다. 기존에 타고 다니던 미쓰비시 ‘파제로’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가 너무 좋았는데, 경제성이나 운전 편의성을 고려해 같은 브랜드에서 나온 ‘EK 왜건’을 우리 돈 1000만원 정도 주고 구입했다.

요시다씨가 운영하는 꽃집은 오사카 부도심인 난바역 인근에 있다. 워낙 상가나 학원이 밀집해 있는 곳이라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북적이고, 오래된 지역이라 도로도 비좁고 복잡해 열악하다. 그만큼 영업하는 데 경차가 절실해 보였다.

요시다씨는 “경차지만 나름 왜건이라 실용성도 뛰어나 꽃 같은 작은 물건을 실어 나르는 데 아주 적절한 것 같다”며 “실제 연비도 리터당 20km 중반 이후라 유지비가 파제로를 몰 때보다 적게 나와 좋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서 경차에 대한 취득세 면제 혜택 폐지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경차 왕국’으로 손꼽히고 있는 일본 내 경차 시장 동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중형차 이상을 선호하는 한국인 성향에 더해 경차에 대한 정부 정책까지 비우호적으로 바뀌어 가는 국내 여건과는 달리, 일본 현지에서 확인한 소비자와 정부∙업체의 경차에 대한 확신은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였다.

일본 자동차판매협회연합회 및 경자동차협회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일본에서 판매된 신차는 모두 310만1727대로 전년 동기(346만6069대) 대비 10.5% 감소했다. 이중 경차는 118만8310대가 판매됐는데, 전년 동기(140만9581대)와 비교해 15.7% 판매가 줄었다.

신차 판매가 감소한 것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경차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소비세가 인상되고 올해 들어 4월에 경차에 매겨지는 세금이 인상된 게 소비 위축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전체적으로 판매 실적이 감소했지만, 경차 비중은 좀처럼 하락하지 않는 모양새다. 전체 신차 판매 대수에서 경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1년(36.1%) 이래 2012년(36.9%)과 2013년(39.3%)을 거쳐 2014년(40.9%)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올해 들어선 지난 7월까지 38.3%로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라 볼 수 있다.

중고차 시장 역시 경차 판매 비중이 높다. 7월까지 전체 중고차 판매 대수(420만5675대) 가운데 경차 판매 대수(192만3881대) 비중은 45.8%에 이른다.

경차에 대한 인기가 높다보니 한 해 팔리는 수백 종 신차 가운데 베스트셀링 대부분이 경차로 채워지고 있다. 실제 7월까지 일본 내 판매 상위 10개 차종 중 7개가 경차다.

7월까지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경차는 혼다 ‘N-BOX’로 모두 11만8864대가 판매됐다. 뒤를 이어 다이하츠 ‘탄토’ 9만9305대, 닛산 ‘데이즈’ 9만8413대, 다이하츠 ‘무브’ 8만3385대, 스즈키 ‘알토’ 6만9821대, 스즈키 ‘왜건R’ 6만8998대, 스즈키 ‘허슬러’ 6만2526대, 혼다 ‘N-WGN’ 6만2295대, 다이하츠 ‘미라’ 5만9422대, 스즈키 ‘스파시아’ 5만2111대 순으로 상위 10위권을 형성했다.

 

일본 완성차 업체가 공격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경차 또한 만만치 않다. 현재 일본 내 8개 완성차 업체가 시판하고 있는 승용∙화물 경차는 68종. 중고차의 경우 리쿠르트社가 운영하는 주요 중고차 거래 인터넷 사이트 ‘카 센서’에 이름을 올린 차만 136종이나 된다.

수요가 많은 만큼 일본 경차 대부분이 다양한 디자인과 용도를 자랑한다. 세단은 물론 왜건과 밴에 레저차량(RV), 심지어 스포츠카나 오픈카까지 모든 차종을 선택할 수 있다. 용도에 맞춰 차급을 뛰어 넘는 실내 공간을 갖췄거나, 노인∙여성 등 운전자 취향에 따라 각종 사양을 장착한 차종도 많다.

오사카예술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경언(36)씨도 일본에 유학 온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자동차 구입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경차에 눈이 가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다이하츠 ‘미라 코코아’나 ‘코펜’ 구입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씨는 “처음 일본에 왔을 때 도로 위를 달리는 수많은 경차에 놀란 것은 물론, 천편일률적으로 세단에 치중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지붕을 열고 달리는 오픈카나 스포츠카가 달리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며 “배달용에 적합한 ‘탄토’나, 캠핑 옵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허슬러’처럼 그때그때 필요에 맞는 경차가 많아 부러웠다”고 말했다.

오사카경자동차협회 관계자는 “일본은 국토 대부분이 협소한 관계로 오래 전부터 작은 차를 보급하는 데 주력해왔다”며 “일본 국내 경기가 20년 넘게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소비를 주도하는 계층이 경제성을 가장 우선적으로 따지게 됐고, 자연스럽게 연비나 유지비가 다른 차급보다 저렴한 경차가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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