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 왕국 일본을 가다(中)
상태바
경차 왕국 일본을 가다(中)
  • 이승한 기자 nyus449@gyotongn.com
  • 승인 2015.08.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선 선택이지만 일본 車시장 경직시켜”
 

“최선 선택이지만 일본 車시장 경직시켜”

세금 인상 불구하고 경차 인기 식지 않아

자국 업체 경쟁력은 물론 수익성 떨어뜨려

[오사카=이승한 기자]지난해(2014년) 전년 대비 7.6% 증가한 227만2790대가 팔리며 역대 최고 실적을 올린 일본 경차 시장은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전년 동기 보다 15.7% 판매가 하락했다.

한 해 실적은 아니지만, 전년 대비 11.9% 하락한 지난 2011년 전체 하락세를 뛰어 넘었고, 사상 가장 큰 하락폭을 보였던 1975년(-17.9%)에도 근접했다. 많은 업계 관계자는 올해 일본 경차 시장이 13%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차 판매가 감소한 것은 지난해 4월 일본 정부가 경차 세금을 31년 만에 인상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새로 경차를 구입하면 1년 자동차세를 기존(7200엔)보다 50% 오른 1만800엔 내야 한다.

경차 세금을 올린 것은 세금 격차를 줄여 소형자동차 판매를 늘리기 위해서다. 이는 일본 시장에서 경차를 제외한 차급 판매 실적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경차 판매 비중은 높아진 반면, 다른 차종 판매는 매년 줄어들었다.

경차 세금이 올라가자 주요 고객인 젊은 층 부담이 커졌다. 올해 2월 경차를 구입했던 마에다 카즈야(前田和也∙27)씨는 “물론 자동차세 1만 엔(한화 10만원 정도)이 아주 큰돈은 아니지만 환율 탓에 기름 값이 꾸준히 올랐고, 각종 유지비까지 올라가고 있어 걱정”이라며 “주변에 꼭 필요하지 않으면 차를 사지 않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세금 인상으로 소비자 부담이 늘었고 판매도 뚜렷한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경차 위상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우선 고객층이 매우 두텁다. 여성은 물론 도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수요가 꾸준한데다, 농민과 영세자영업자 상당수가 경차를 선호한다. 이에 더해 경차 생산 업체도 연비를 ℓ당 25~30km까지 크게 강화시킨 신차를 내놓는 등 시장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업계는 경차 판매 비중이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3월까지 일본 내 전체 자동차 등록대수(7708만842대) 가운데 승용∙화물을 합한 경차는 모두 2980만7746대에 이르렀다. 비중은 38.7%. 지난 해 연말 기준 세대 당 경차 대수는 0.54대로, 두 집 건너 경차가 한 대 있는 셈이다.

취재가 이뤄진 오사카의 경우 경차 비중이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차량 등록대수(349만4057대) 중 경차(111만9108대) 비중이 32.0%로 전체 47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42위 수준에 머물렀고, 세대 당 경차 대수(0.28대)도 45위에 그쳤다.

 

일본인이 경차를 선호하는 것은 다른 차급 차량보다 혜택이 많아서다. 우선 신차 구입 가격이 2000cc 소형차(일본 기준) 대비 42% 수준에 불과하다. 소비세∙취득세 부담도 소형차의 34% 정도다.

자동차보험사 직원인 오타 토모미(太田友美∙36)씨는 “평균 연료 소비가 대략 가솔린 소형차 대비 60% 정도로 평균연비가 ℓ당 26.2%로 알려져 있고, 자동차중량세와 경자동차세금 또한 소형차의 20%에 불과하다”며 “이밖에 차를 9년 동안 탔을 때 자동차손해배상책임보험과 임의보험료도 60% 수준이라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세금 혜택만이 경차를 구입하는 이유는 아니다. 차량 최소 회전 반경이 4.5미터로 소형차(5.4미터) 83% 수준이라 도시는 물론 협소한 산길이나 농촌 길을 달릴 때 유리하다. 차량 평균 바닥 면적도 5.032㎡ 밖에 안 돼 주차하기 편리하다.

 

오사카경자동차협회 관계자는 “지난 2012년 조사에 따르면 일본 도로 84.7%가 평균 폭 3.8미터 이내라 차량이 오갈 때 폭 1.48미터 이내 경차가 유리한 실정”이라며 “차체 길이가 짧고 폭이 좁아 도로 가장자리 일렬 주차가 쉬워 여성이나 노약자에게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일본 경차 규격은 지난 1949년 첫 제정된 이래 모두 13차례 개정됐다. 현재 규격은 지난 1990년 제정된 것으로, 차체 길이 3.4미터에 폭 1.48미터, 높이 2미터 이내여야 하고, 엔진 배기량은 660cc 이하면 된다.

관련해 지난 2013년 일본자동차공업회가 실시한 ‘경자동차사용실태설문조사’에 따르면, 경제성 측면에서 경차 선택 이유를 묻는 질문(복수응답 가능)에 응답자 84%가 저렴한 세금 때문에 경차를 구입했다고 답했고, 연비(62%)와 가격(47%)도 큰 고려 대상이 됐다.

이용 측면에서는 응답자 62%가 ‘쉬운 운전 때문’이라고 답했고, 협소한 도로에서 운전하기 좋다(47%)는 점과 주차하기 편하다(40%)는 점에 후한 점수를 줬다.

 

경차에 대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 많은 업계 관계자와 자동차 전문가들은 경차 치중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일본 완성차 업체 생산∙판매 구조를 경차 위주로 경직시켜 자체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다. 타 차급 보다 대당 마진이 적어 업체 수익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경차 대부분이 내수용이라 해외 진출이 어려운 것도 단점이다.

이밖에 적지 않은 업계 관계자는 해외 업체가 일본 시장만을 위해 경차를 만들 수 없어 진출이 어려운 점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은 5% 안팎에 불과하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고토 마나부(後藤学∙47)씨는 “경차 구입을 장려한 것은 일본 내 도로 인프라 사정을 감안해 가장 손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방법으로, 수십 년간 지나치게 고립된 정책이 지속되다보니 소비자 선택권은 경차 한 차종 내에서만 보장받게 됐고 업체 또한 최신 차량 기술 추세를 시판 차에 반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됐다”며 “일본 업체 스스로 당장 잘 팔리는 경차에만 집중함으로써 일본 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조차 최근 몇 년간 중∙대형차 차급에서 경쟁업체에 밀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