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종사자 ‘교통사고 자부담처리’ 근절방안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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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종사자 ‘교통사고 자부담처리’ 근절방안 없나
  • 정규호 기자 jkh@gyotongn.com
  • 승인 201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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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업체, 노사․정부 공동으로 자부담 금지 분위기 조성해야
 

자부담으로 해결한 기사들 잇따라 해고 판결

‘현장에서 비밀리 합의’ 상시 감시 불가능

노조위원장들, “노조 내 분위기가 가장 중요”

교통사고 처리비용을 자부담금으로 해결한 운수종사자가 해고되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운송종사자들의 교통사고 자부담 처리 행위는 교통업계의 오랜 관행이다. 때에 따라서는 눈물 겨운 사연으로 인해 동정 여론을 얻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기사들이 계산기 두드려보고 손해다 싶으면 자부담으로 처리한다는 인식으로 바뀌었다. 운수단체와 정부는 기사들의 자부담 처리를 원척적으로 근절하는 정책과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교통사고 후 각종 처리금액을 자부담으로 처리한 버스기사의 해고는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반정우 부장판사)는 A버스회사가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기사 김모씨는 지난해 5월 승객 김모씨가 버스에서 내리던 중 문을 닫아 발목을 문에 부딪히게 하는 사고를 냈다.

김씨는 승객 김씨와 개인적으로 현금 100만원을 주고 합의했다.

김씨는 같은해 8월, 정류장에서 하차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고모(81)씨를 넘어지게 하는 사고도 일으켜 현금 55만원을 주고 합의했다.

재판부는 "교통사고를 임의로 처리한 경우를 뺑소니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교통사고 임의처리가 행정청이나 사용자에게 교통사고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사용돼 승객의 안전이 침해될 뿐만 아니라 운송사업의 공공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4일에는 해고당할까 두려워 버스 교통사고를 자신의 승용차 사고로 속여 보험 접수한 버스 운전기사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버스 운전기사 신모(36)씨와 승용차 운전자 김모(26)씨를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지난달 24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 5월16일 오후 10시께 노원구 상계동 당고개역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발생한 신씨의 마을버스와 김씨 승용차의 접촉 사고를 승용차 간 사고로 속여 버스 보험사가 아닌 신씨가 개인적으로 가입한 보험사로부터 승용차 수리비 등 385만원 상당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신씨는 마을버스 회사에 취직한 지 7일 정도밖에 되지 않아 사고 사실을 회사에 알리면 해고를 당할까 두려워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초에는 서울의 한 시내버스회사가 보험비율을 낮추기 위해 자부담금을 기사에게 전가했다는 제보가 있었다.

서울시내버스의 경우 준공영제도이기 때문에 보험료를 낮출 수록 사측의 이득이다.

예를 들어 보험비가 100만원일 경우 사고를 줄여 보험비가 90만원으로 할인될 경우 10만원은 사측의 이익으로 귀속된다. 반면, 110만원이 나오면 사측이 10만원을 부담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100만원을 넘지 않기 위해 사고 시 보험처리를 하지 않고 기사들에게 자부담 처리를 종용한다는 했다는 내용이다.

서울의 한 버스회사는 자부담 처리를 눈감아줬다가 소송을 당한 사례도 있었다. 자부담 처리를 한 기사가 눈감아준 회사를 퇴직하고 나서 자부담 처리를 종용했다고 소송을 낸 것이다.

또, 한 법인택시기사는 개인택시를 할 수 있는 조건인 ‘무사고 3년’을 3일 앞두고 한 승용차와 접촉사고를 냈는데, 합의금으로 800만원을 내준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교통업계에서 기사가 자부담 처리를 한다는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유독 버스기사들 사이에서 자부담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데, 그 원인으로 ‘높은 연봉’, ‘인기 직종’ 때문이라고 종사자들은 말한다.

버스기사의 한 달 월급은 400만원 정도(만근 시). 만근이 깨지면 보통 100여만원을 받는다. 300만원이 중간에 사라지게 되는데, 이 때 사고 시 300만원 선에서 합의를 해보면 어떨까라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사측도 보험료 증가 요인이 상쇄되므로 나쁠 게 없다.

반대로 택시 등 다른 채용 수요가 낮은 업계에서는 자부담 행위가 버스업계보다 적다고 한다. 사고를 내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이유다.

노조위원장들은 자부담 처리 근절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노조의 분위기’을 꼽는다.

A고속버스 노조위원장은 “노조 집행부의 분위기에 따라 기사들의 자부담 행위가 달라진다. 어떤 집행부는 30만원 이하 정도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는 반면, 어떤 노조는 작은 금액이라도 징계 받고 휴가라고 생각하고 쉬라고 한다”며 “어떤 좋은 시스템과 정책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B시내버스 노조위원장은 “불과 4~5년전만 하더라도 100~200만원 수준의 자부담 처리는 기사들의 공공연한 의무였다. 그러나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노조간의 경쟁에서 자부담 문제를 해결하자는 여론이 공론화 되면서 자부담을 하면 안된다는 현재의 분위기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K사 안전팀 관계자는 “사측에서 자부담 처리를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루에 수십 수백건에 달하는 운행을 모두 감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합리적인 취업규칙이 운영되고 있다는 노사간 분위기와 교육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운수단체과 정부도 자부담 근절을 위해 각종 정책,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서울시내버스노사는 지난 2015년7월1일부터 노사상생기금을 마련했다. 운행대수 1대당 월 1만8000원을 적립해 노사가 관리하는데, 이 기금을 통해 기사들이 자부담 처리를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2015년도 단체협약을 통해 ‘운전직 종업원(조합원)이 승무 중 고의가 아닌 부주의 또는 불가항력적으로 사고가 야기되었을 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규정(제30조: 구상권 제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부담금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서울시는 자부담 행위가 적발될 경우 시내버스 평가에서 최대 150점 범위에서 1건당 10점을 감점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택시는 택시발전법 12조에 따라 교통사고 등의 운송비용을 기사에게 전가하지 않도록 금지시키고 처분 수위도 정해놨다.

적발 시 과태료 500만원(1차), 과태료 1,000만원‧사업일부정지 90일(2차), 과태료 1000만원‧감차명령(3차) 처분을 받는다.

유류비, 교통사고 처리비의 경우 과태료 1000만원‧사업일부정지 120일(2차), 과태료 1000만원‧면허취소(3차)를 부과토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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