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교통산업도 세계화의 첨병 <택시미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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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교통산업도 세계화의 첨병 <택시미터기>
  • 곽재옥 기자 jokwak@gyotongn.com
  • 승인 201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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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와 고락 같이한 택시역사의 산물, 개발도상국 택시시장 이끄는 지원군

1926년 첫등장…1980년대 전자식 전환

‘노사분쟁·과로사고 막는 수단’ 인식돼

에콰도르 첫 수출…현재 남미·동남아로

중앙산전·광신GPS통신·금호미터기 수출경쟁

‘크기·화질·기능’ 앞서가는 한국산 ‘인기’

“능동적으로 영업 뛰기엔 마진 안 남아”

해외에 수출되고 있는 교통 분야 품목 가운데는 시스템 운영·관리 등 기술적 이전 이외에도 여객운송사업에 없어서는 안 될 전자기기가 포함된다. 특히 주행거리에 따라 요금을 계산해 주는 ‘택시미터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외시장에 물고를 터 ‘한국산’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에 창간특집을 맞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택시미터기의 역사와 수출 현황을 들여다본다.

▲‘대절택시’를 ‘영업택시’로 바꾼 장본인=택시미터기의 등장은 일제강점하 식민통치 시기도 거슬러 올라간다. 일부 기록상에는 1924년에 첫 택시미터기가 등장한 것으로 돼 있으나 구체적인 기록은 1926년 9월 경성역 건너편에 있던 아사히택시회사에서 시작한다. 당시 이 회사는 일본에서 요금계산기를 처음 들여와 가시끼리(대절)차 전체에 설치했다. 당시의 요금계산기(택시미터기)는 2마일(3.2km) 기본거리 요금이 2월이었고, 추가요금은 매 0.5마일(800m)당 50전씩 가산하는 미국식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투명한 계산방식이 수입을 올려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정작 승객들은 ‘찰칵’ 하고 돈 올라가는 소리에 놀라 도중하차하거나 요금을 떼먹고 줄행랑치는 일이 빈번했고, 결국 아사히택시는 이 새로운 운임방식을 4개월 만에 접어야 했다. 그러나 이때 미터기의 등장은 그동안의 ‘대절택시’ 개념을 ‘영업택시’의 개념으로 전환하게 한 매개체라 할 수 있다.

이후 택시미터기가 정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에 들어서다. 서울시는 당시 골머리를 앓던 요금시비, 바가지요금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2년 5월을 기해 이미 부착된 300대 택시차량 이외에 남은 350대에도 일제히 미터기를 부착토록 했다. 이어 1969년 6월부터는 시가 직접 택시미터기를 정기검사해 주행검사합격증을 발급하고 승객이 볼 수 있도록 전면에 부착토록 해 위반 시 운행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현재와 같이 ‘시간·거리 병산제’가 택시미터기에 적용된 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당시는 자가용의 증가로 시내 중심가에 교통량이 집중하는 상황임에도 택시미터기는 거리를 기준으로 요금을 계산하기 때문에 5분 거리를 20~30분 걸려 도착해도 같은 요금을 받아야 했다. 이에 교통부는 1985년 전국 택시에 대한 병산제 정식 시행과 함께 공정한 계산을 위해 미터기 검사도 정기화했다.

▲‘수입금관리 역할’ 전자미터기의 등장=그동안 사용돼 왔던 기계식 택시미터기는 1980년대 들어 전자식으로 바뀐다. 1982년 첫선을 보인 ‘전자미터기’는 일본의 타코미터기를 본뜬 것으로 각종 택시요금을 자동으로 계산할 수 있는 유용한 기기였다. 아울러 이때 선보인 ‘타코미터기’는 현재의 운행기록계로 주행거리 시간, 영업거리 시간, 휴식 시간까지 모두 기록할 수 있었다.

“택시의 할증요금과 시간거리 병산요금 및 현재의 시간 등을 한꺼번에 나타낼 수 있는 전자미터기가 등장해 편리하게 됐다. 국내 미터 메이커에 의해 제작돼 시판에 들어간 이 전자미터기는 요금이 표시되는 전광판 아래 ‘빈차’, ‘주행’, ‘할증’, ‘대기’ 단추가 붙어 있어 필요한 단추를 누르기만 하면 각종 요금이 전광판에 나타난다” - 경향신문, 1982년 11일13일자

이러한 타코미터기는 혁신적 수입금관리 개선을 통해 당시 사납금을 둘러싼 영업용 택시의 노사 간 시비를 해결하고(전액관리제 도입), 과로로 인한 교통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서울시는 1983년 모든 회사택시(법인택시)와 한시택시(1979~1987년 운영)에 연내 부착토록 했고, 정부는 1985년 전국 택시의 시간·거리 병산제 실시를 위해 1984년 상반기까지 이들 기기 설치를 완료토록 했다.

이후 세월이 지나 타코미터기는 디지털운행기록계(DTG)로 승화해 지난해부터 전 사업용자동차에 전자미터기와 DTG를 합친 ‘통합형 운행기록계’ 장착이 의무화됐다. 또 신용사회로의 변모를 위한 카드결제기 장착이 보편화되면서 현재는 이 세 가지 기능을 합친 일체형 기기(전자미터기+DTG+카드결제기)까지 선보이고 있다. 오늘날의 미터기는 부당요금 펴취 등으로 그동안 잡음이 많았던 택시요금과 미터기를 둘러싼 불법 개조·조작 논란을 원천 봉쇄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미터기 제조·판매 산업의 성장=기계식 미터기가 전자식 미터기로 대체되던 1983년, 시장이 크게 넓어짐에 따라 세력 확보를 위해 치열한 판매전을 벌인 것은 미터기 제조업체들이었다. 당시 전국의 법인택시, 개인택시, 한시택시, 콜택시 등 7만여대가 운행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전자식 미터기 보급률은 25% 수준인 1만7000여대로 판매전은 더욱 가열됐다.

“전자식 미터기의 선발메이커인 광전산업사의 경우 월생산능력 2500대의 시설을 풀가동, 철야작업을 하면서도 미처 택시업계의 주문에 응하지 못해 일부부품의 수입량을 늘리면서 생산라인을 확충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지난해부터 신규 참여한 서울미터산업과 금호계기 등도 생산시설을 늘려 쇄도하는 주문에 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 매일경제, 1983년 5월23일자

이렇듯 전자미터기의 경우 서독·일본에 이어 세계 3번째로 전자식택시미터기 개발에 성공한 광전과 이후 서울미터산업, 금호계기 등에 의해 국내 제작이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도입된 타코미터기는 국산 제품이 없어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 시기 국내에는 서독의 ‘킨젤레사’, 일본의 ‘야사끼사’, ‘오사까사’, ‘니혼덴소사’ 제품 등 5종류의 타코미터기가 대리점을 통해 나와 있었다. 판매가격은 서독 ‘킨젤레사’ 제품이 14만9000원, 일본 ‘야사끼’ 제품이 9만8800원, ‘오사까사’와 ‘니혼덴소사’ 제품이 9만8875원 정도였다.

이후 광전전자는 개발 착수 3년만인 1984년 11월에 비로소 타코미터기를 시판하기 시작했는데, 수익금전액관리를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퍼스널컴퓨터로 판독하는 기억장치를 적용했으며 가격은 8만8000원이었다. 서울미터산업은 1987년에 이르러 타코미터기 개발에 뛰어든다.

▲택시미터기 수출 현황=국산 택시미터기가 해외에 수출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일간지들은 ‘택시미터기 수출’ 관련 기사를 다음과 같이 내보냈다.

“국산택시미터기가 남미의 에콰도르에 처녀수출케 되었다. 2일 공업진흥청에 따르면 이번 택시미터기 수출은 지난 5월28일 서울공사(택시미터기 메이커)가 에콰도르 정부와 24만달러(3천대분) 수출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며 금년 안에 1백만 달러의 수출은 무난할 것이라 한다.” - 매일경제, 1973년 7월2일자

1980년대 중·후반 택시 전성시대를 지나면서 국내 수요감소와 공급과잉으로 인한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한 한 방편이 해외시장 모색이었다. 택시시장 자체가 영세해 과당경쟁 구조인 데다 보통 10년 수명인 미터기를 한 번 장착 이후에는 애프터서비스와 교체수요를 소화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주)광전실업은 1980년 칠레에 2000여대 수출을 시작으로 1986년부터는 남미·동남아 등으로 판로를 넓혀 나갔다. 대우실업도 1981년 칠레에 50만 달러 규모 수출을 성사시키고, 서울미터산업도 1년6개월간의 연구를 거쳐 1985년 4월 일본과 이집트 등에 수출길을 열었다. 또 컴퓨터전문업체인 해동시스템의 경우 미터기와 컴퓨터와 연결해 운행거리, 요금, 운행횟수, 과속상태 등의 정보를 수록하고 데이터를 산출하는 미터기접속기를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때 수출 붐을 기대했던 해외 택시미터기 시장은 중남미 등 수출대상국들의 외채 사정으로 수출이 끊기는 등 전망이 밝지만은 않았다. 이후 택시미터기 제조업체들은 과속 시 경보음이 울리고 계기판 램프의 조명을 조절·변화하는 미터기(1988년, 서울미터산업), 액정미터기의 국산화(1991년, 서울미터산업), GPS 탑재 미터기(1997년, 신화·광전정보통신 공동) 등 신제품 개발에 열을 올렸으나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다.

중앙산전

▲국산 택시미터기 ‘기술력 인정’=오늘날까지 택시미터기를 수출하고 있는 미터기제조·판매업체는 중앙산전, 광신GPS통신(주), 금호미터기 세 곳이다. 1991년 설립된 중앙산전은 동남아 등 10개국, 1991년 설립돼 광전산업사의 뒤를 잇고 있는 광신GPS통신은 남미·동남아 7개국, 금호미터기는 일본·중동·동남아 3개국에 전자미터기를 수출하고 있다.

광신GPS통신

이들 나라에 수출되고 있는 전자미터기는 주로 카드결제기·운행기록계 기능이 빠진 일부 영수증 출력기능만을 갖춘 타코미터기 수준의 제품들이다. 수출국들이 대부분 개발도상국이다 보니 택시정책이나 사업환경 자체가 운행기록이나 카드결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 데다 해당 기능들이 추가될 경우 제품단가가 높아지기 때문에 수요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다.

금호미터기

광신GPS통신 서한열 전무는 “미터기에 운행기록기능을 포함할 경우 우선 GPS를 탑재하게 되는데, 그 경우 원가가 2만원 상당이 뛰어 해당국에서는 상당히 큰 폭의 가격상승을 불러 오기 때문에 많은 나라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금호미터기 이은기 이사는 “동남아의 경우는 최근 영수증 출력과 운행기록계에 급격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우리나라 미터기산업이 1980에서 2000년으로 넘어오기까지 5단계를 거쳤다면 그들은 2~3단계를 한꺼번에 뛰어넘을 듯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들 업체들은 각자의 수출국 정보를 공공연하게 공유하면서도 일정 선에서는 철저한 비밀을 유지하고 있다. 해당 수출국에 타 국가 경쟁업체가 덤핑으로 접근하면 곧바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미터기 수출은 제작·승인 이후 대리점(현지 중간업자)과의 계약 과정에서 판매망을 구축 및 독점권을 부여받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러한 와중에도 ‘한국산 미터기’는 해당 수출국 택시기사들이 선호하는 제품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일단 이탈리아 등 경쟁국 제품 대비 3분의 1 정도로 크기가 작고, 과거형인 VDF가 아닌 컬러 LCD를 채택한 것이 강점이다. 간혹 경쟁국 제품 중에는 카드단말기 또는 유럽형 통신방식과의 호환성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우리의 경우 기술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나 원가를 고려해 상대국 요구사양에 맞춰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택시미터기는 중고 택시차량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기술력을 무기로 세계시장을 향하고 있는 택시 분야 수출품목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시장을 확대하거나 수출물량을 늘리는 일은 순조롭지 못한 형편이다.

이 이사는 “현재 수출이 진행 중인 나라들은 국내와 접촉을 시도하는 그 나라 바이어 규모 자체가 크거나 교포가 현지에서 중개를 하는 경우에 의존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샘플제품을 만들거나 기술이전을 하더라도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10%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에 해외 판로를 확장할 특별한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서 전무 역시 “바이어를 발굴하는 루트는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현실적인 방법은 현지 바이어와 연이 닿아 요청이 들어올 경우 샘플을 만들어 주고 돈이 들어오면 물건을 보내주는 방식이 대부분”이라며 “현지에 직접 뛰어들어 영업을 펼칠 만큼 미터기 수출이 마진이 크진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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