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자의 설움…“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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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자의 설움…“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된다”
  • 이재인 기자 koderi@gyotongn.com
  • 승인 2015.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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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가 00물류(하청업체)과 계약을 했지, 당신(화물운전자)과 계약한 게 아니자나. 허니 밀린 대금은 당신 계약서에 적혀있는 00물류에 가서 정산하셔, 여기서 이러지 말고...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고...”

일명 ‘SK 맷값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한 영화 베테랑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는 5년 전 SK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화물연대 조합원(탱크로리 기사) 유모씨를 야구방망이 등으로 폭행한 뒤 맷값이라면서 2000만원을 준 혐의로 기소됐던 사건을 소재로 사회 부조리와 구조적 병폐를 재조명하고 있다.

이처럼 이유야 어떻든 힘의 논리에 의해 약자가 무릎을 꿇어야만 하는 약육강식 법칙은 오늘날 화물운송 물류시장에 일상이 됐다.

택배 배송업무와 관련된 패널티 적용 여부를 놓고 홍역을 치뤘던 CJ대한통운 택배기사의 배송거부 사태부터 현대판 노비문서로 입방아에 올랐던 매일유업 하청업체 화물운전자의 지입계약 문제까지 사건사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현실이다.

발생 원인을 분석해보면 화주와 계약한 대형 물류사가 지역별 중형급 운송사에게 계약물량을 위탁하고, 이를 받은 업체는 노선별 군소업체에게 업무를 위임하는 시장의 다단계 거래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청에 하청이 거듭될수록 실제 화물을 싣어 나르는 운전자의 몫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단계별로 내려오는 만큼 금전적 책임성 또한 약화되면서 임금체불 등과 같은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아랫단계로 내려갈수록 비일비재하다.

일당치기로 생계를 유지하는 소규모 개인사업자라는 점에서 이른바 ‘갑의 횡포’ 강도와 압박수위는 도를 넘어섰다.

비근한 예로 택배전용넘버(배 번호판)를 할당받은 택배기사에게는 “택배회사가 당신의 활동경력을 보증해줬기 때문에 영업용 넘버를 받게 된 것이니, 그에 대한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강압은 계속되고 있다.

또한 부당한 요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화물운전자에게는 “당신 말고도 일할 사람(자가용 화물차 포함)은 줄을 섰으니, 지시에 따르지 않을 거면 나가라”면서 “밥 먹게 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도 모른다”며 오히려 적반하장 하는 사례도 있다.

택배를 비롯한 화물운전자들 사이에서 최고봉으로 거론되는 우체국택배도 피장파장이다.

조직개편을 통해 1000여명을 감축한 바 있는 우체국택배가 토요일 배송을 재개키로 결정하면서 현장 근로자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주 60시간, 연 3000시간이 넘는 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집배원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우정사업본부가 적자부담을 집배원들에게만 전가시키려는 수순이라며, 주5일 근무제 폐지와 토요택배 재개가 일방적으로 추진된다면 파업까지 불사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바른 먹거리’ 캠페인으로 신뢰를 얻었던 풀무원에서도 최근 이같은 사단이 났다.

풀무원은 자회사인 엑소후레쉬물류(이하 엑소물류)를 운영 중인데, 이 회사와 도급계약을 맺은 운송업무대행 업체에 속한 개인 사업자이자 화물운전자들은 파업을 선언했다.

파업 50일째를 넘긴 화물연대 풀무원분회는 화물운송차량 도색 유지 등의 내용이 담긴 서약서 폐기와 풀무원 측이 불이행하고 있는 노사합의서를 즉각 이행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계약서상 독소조항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며, 조합원 2명이 여의도 국회 앞 30여m 높이 광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강행, 풀무원과의 직접 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화물운송 물류시장의 다단계 거래와, 그에 따른 억울한 사연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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