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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는 공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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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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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수 박사의 교통안전노트>

영문 관용구에 ‘침실 안 코끼리’(Elephant in the bedroom) 또는 ‘침대가 불탄다’(Bed is burning)라는 비유적 표현이 있다. 문제점을 쉽게 해결할 수 있거나 다 알고 있지만 당장의 편리함을 위해 무시하거나 모르는 체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자동차를 끌고서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교통체증에 교통사고의 위험, 주차문제와 대기오염, 소음 등과 직면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앞으로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게 우선은 편리하기 때문에 내 눈앞에 당면한 문제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문제라고 모르는 체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편리함이 후손에게 멍에가 될 수도 있다. 무책임하게 누리는 자유가 사회를 망치고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소비는 경제를 붕괴시킨다. 대가 없는 정부지원이 얼마나 시장가격을 왜곡시키고 재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방해하는가는 구 소련 붕괴 당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지적한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소련정부의 재정으로 지원하던 빵의 가격이 실제로 빵을 만드는데 소요되는 비용보다 훨씬 낮아 학생들이 빵으로 축구를 하거나 농부들이 돼지에게 사료대신 빵을 먹이기도 했다.

도로 이용에는 직접 지불하지 않는 많은 비용이 숨어 있다. 도로의 유지·보수나 신호운영, 교통경찰 서비스 등은 정부나 지자체가 도로이용자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내는 통행료는 실제 차량이 이동하면서 도로를 파손하는 비용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추가로 소요되는 복구 비용은 정부가 부담한다. 자동차를 끌고 나가는 순간부터 비용이 발생하지만 대부분은 공짜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불법주차에 대해 무척 관대하다. 불법주차를 하는 순간부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함에도 운전자는 그에 대한 비용을 거의 지불하지 않는다. 비용으로 생각했다면 불법주차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애초에 주차가 힘들었다면 자동차를 끌고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 도로교통법은 교차로, 횡단보도, 건널목이나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의 보도, 교차로 가장자리나 도로의 모퉁이로부터 5m 이내, 횡단보도나 버스 정류장 또는 안전지대 등으로부터 전·후방 10m 이내에 주차와 정차를 금지하고 있다. 차량의 원활하고 안전한 운행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우회전 차로에 불법주차를 하는 바람에 차량 소통을 막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보도 위의 주차, 차도와 보도에 걸친 속칭 ‘개구리 주차’, 자전거 전용도로를 점거한 주차 등 불법 주·정차의 행태도 다양하다.

특히 생활도로의 차도 양쪽으로 길게 늘어진 불법 주·정차는 보행자들에게 심각한 불편을 초래하고,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화재가 났을 때 긴급자동차의 현장 접근을 어렵게 해 인명과 재산피해를 확대시킬 뿐만 아니라 보행자가 횡단하려고 할 때 시야확보가 어려워 교통사고를 당하기 십상이다. 보행사고의 상당수가 생활도로에서 이러한 유형으로 발생하고 있다. 대형 화물차의 야간 불법주차로 인한 문제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도로변에 장기간 주차하는 노숙화물차는 때때로 대형 교통사고를 유발시킨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도로가 여러 가지 행태의 불법주차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점점 악화되고 있고 개선될 여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 게 우리의 교통 현실이자 문제점이다.

싱가포르와 북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는 도로사용료를 별도로 징수하고 있다. 국토가 좁은 나라에서는 주차문제 해결을 위해 거의 예외 없이 거주자 차고지 증명제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도 1993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차고지 증명제 도입을 추진했지만 국민 반발 때문에 활성화 되지 못했다. 교통체증이나 불법주차 문제는 도로 건설이나 확장, 혼잡비용의 징수, 지능형 교통체계의 구축, 다인승차량 전용도로 운영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자동차 운전자에게 원인자 부담원칙이 적용되도록 실제 도로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과 도로파손 비용 등을 도로사용료로 징수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자가용 이용에 따르는 적정한 비용의 징수에 반하는 교통정책은 자가용과 경쟁하고 있는 대중교통의 활성화를 저해하는 원인만 제공할 뿐이다. 자가용 이용자에게 도로사용료를 부과하지 않고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면 교통수단의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게 된다. 도로에 대한 수요가 너무 많은 반면 대중교통에 대한 수요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대부분 이와 같이 잘못된 교통정책에 기인한다.

불법주차가 만연하게 된 데에는 공영주차장 등 합법적인 주·정차 공간을 제공하지 못한 정부나 지자체의 책임도 크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주·정차 장소를 확대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당장에는 반발이 크겠지만 불법주차는 반드시 처벌이 된다는 보편적 인식이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 운전자 스스로 준법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만 강제성을 부과하더라도 다수의 불편을 줄여 나가야 한다. 불법주차 차량을 견인할 수 없다면 족쇄라도 채워야 한다. 불법주차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OECD 최하위 수준의 보행사고도 줄일 수 없고, 교통문화 수준도 높일 수 없다.

자동차 운전자에게 도로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된다면 도로수요가 줄어들고 교통 혼잡도가 개선되면서 쾌적하고 안전한 교통환경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더 나아가 도로 이용시간을 그만큼 단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활성화 하고 물류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

<객원논설위원-교통안전공단 미래교통전략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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