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안전 기술수준의 급속한 발전과 법제화
상태바
교통안전 기술수준의 급속한 발전과 법제화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17.02.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동수 박사의 교통안전노트]

교통안전은 교통공학과 심리학·행정학·법학 등이 융합된 학문이라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교통공학을 제외한 인문사회과학 측면에서의 역할은 미미하다. 특히 교통안전에 관한 법제 연구는 시도조차 많지 않다. 정부가 교통안전 법령정비를 위해 관계 공공기관이나 전문 연구기관에 연구를 의뢰하기도 하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의 법제연구라고 보기 어렵다. 이들 공공기관이나 연구기관에서 제도개선 의견을 낸다고 하더라도 실제 입법으로 완결된 사례는 거의 없다. 외국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우리 법체계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한다거나 개선의견이라도 해도 그 내용이 막연하면 정부나 입법자는 이를 아예 무시하거나 참고만 할 뿐이다. 기술개발이나 제도연구 결과물로 연구자는 으레 법령 제·개정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법령 제·개정은 별도의 작업이나 연구과정을 수반한다. 이처럼 제도개선 연구업무와 구체적인 법제도 정비업무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도도입의 필요성이 인정되어도 제때 입법이 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교통전문가가 법제연구를 함에 있어 맞닥뜨리는 문제 중 하나는 연구자가 헌법적 이해나 행정법적 기초지식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연구자는 위임입법이나 위헌성 등 공법상의 여러 원칙에 반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또한 입법을 함에 있어 법률, 대통령령, 부령, 행정규칙 등의 법령 구조에서 어디에 규정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법률 개정사항 내용에 행정규칙에 규정해도 되는 세부 기술적인 사항을 포함하거나 반드시 법률에 규정해야 하는 것들을 누락하여 연구결과물을 제시하는 경우이다. 법제심사 등의 과정에서 걸러질 수도 있지만, 자칫 연구가 무의미하게 될 수 있다. 교통에 전문지식이 없는 행정공무원이나 입법자가 그 결과물을 토대로 입법 작업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간혹 한국법제연구원과 형사정책연구원 등의 연구자나 법학자가 자체과제 또는 용역과제로 교통관련 법제연구를 수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법제연구자나 법학자가 교통전문가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법제연구를 수행하거나 입법에 참여하는 경우에도 한계는 있다. 교통 전반을 아우르기 어렵고 기술·공학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해 기술기준의 범위와 내용을 제대로 다루기 어렵다. 또한 제도화 되었을 때 결과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교통안전 법제연구가 제대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법학자는 교통안전을 이해해야 하고, 교통전문가는 법학의 기본지식과 절차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법학자와 교통전문가가 상대방의 전문적 지식을 공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개의 경우 그러한 여건조차 조성되어 있지 않다. 법학자나 교통전문가 모두 상대방의 전문적인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자문 구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교통안전 관련법령은 대개 기술법이기 때문에 기술공학의 발전을 예측해야 한다. 기술이 시장에 적용돼 정착하는 단계에서 법제연구를 시작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입법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기술수준을 입법으로 구체화하기까지 길게는 4∼5년, 짧게는 1∼2년이 소요된다. ‘교통안전법’상 설치 의무화가 되어 있는 디지털 운행기록장치는 이제 실시간으로 데이터가 전송될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개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손을 대야하고, 600억원 이상의 정부보조금이 투입된 장비를 교체해야 할지도 모른다.

입법이 완료돼 시행단계에 들어가면 해당 기술과 관련된 규정은 현실과 맞지 않게 되는 경우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 법령정비나 제도화에 소요되는 기간보다 기술수준은 점점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내용을 계속해 바꾸는 것은 법적 안정성과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지만, 이제는 미래 기술발전을 가늠하며 법령 정비를 서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첨단교통안전기술이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적 소양을 갖춘 교통전문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능동형 교통안전’(Active Safety)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멀지 않은 장래에 자율자동차가 도로를 운행하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제4차 산업혁명과 함께 등장하는 교통안전기술의 미래를 예측하면서, 이를 입법기술적으로 제도화 할 수 있어야 한다.

<객원논설위원-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연구개발원장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