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에 빠진 車산업계, ‘부진의 늪’ 깊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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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렁에 빠진 車산업계, ‘부진의 늪’ 깊어질까?
  • 이승한 기자 nyus449@gyotongn.com
  • 승인 2017.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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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과 ‘통상임금’에 업계 비판 목소리
 

[교통신문 이승한 기자] 지난 22일 쉐라톤서울팔래스강남호텔에서 열린 ‘자동차산업 진단과 대응을 위한 간담회’ 현장. 어두운 표정을 짓던 박한우 기아자동차 사장이 무거운 침묵을 깨고 말을 꺼냈다.

“자동차 위기 때문에 여기 모였는데, 2년 연속 차가 덜 팔린다는 것 자체가 위기의 시그널(신호)이라고 생각한다.”

기아차는 현재 노조가 제기한 ‘통상임금’ 관련 소송 판결을 앞두고 있다. 법원이 노조 손을 들어주면 최대 3조원에 이르는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아차 경영진으로썬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소송 결과는 자동차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업계 모두의 관심사다.

박 사장은 “판결을 존중해 소급 지급할 수 있지만, 중국·미국시장에서 판매가 저조하고 영업이익률이 낮은 상태라 소급 적용될 비용이 발목을 잡을 것”이라며 “수당이 50% 인상되면 앞으로 지급할 비용이 걱정인데, 기아차가 오르면 현대차(노조)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노동시장에 더 큰 분란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날 박 사장은 통상임금 관련 노동부 지침과 법이 달라서 이런 문제가 생기고 있는 만큼 정부가 하나로 정리해서 불확실성을 없애달라고 호소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다른 완성차 업체와 부품업체 또한 한국 자동차 산업이 고비용 저효율 생산 구조 늪에 빠졌다며 위기 극복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참석자들은 생산·내수·수출이 2년 연속 하락한 가운데 노조 파업 추세가 격화되고, 이에 더해 통상임금 소송까지 더해져 경쟁력 상실은 물론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졌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들은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결과 노조가 승소하면 업계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이라며 정부와 법원이 명확한 기준을 정하고, 신중하게 판단해 줄 것을 요구했다. 관련해 지난 10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국내 완성차 5개사를 대변해 통상임금 판결로 3조원의 추가 인건비 부담이 발생하면 기업은 국내 생산을 줄이고 해외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성명을 내 논란을 일으켰었다.

업계가 전례 없이 위기감을 보이고 있는 것은 국산차 글로벌 판매 부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KAMA가 이날 간담회에서 공개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글로벌 경쟁력 위기상황’ 자료에 따르면 국산 자동차 생산·내수·수출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였다. 올해 상반기 수출 물량은 지난 2009년 이래 8년 만에 최저치다. 특히 중국 시장 판매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갈등 여파로 1년 전보다 40% 이상 급감했다. 같은 기간 내수 판매도 4% 줄어 증가세가 3년 만에 꺾였다. 부품 수출도 완성차 업체 글로벌 판매부진에 따라 2014년 이래 감소 추세며, 올해 상반기 또한 전년 동기 대비 5.7% 줄어든 상태다.

공장가동률도 2014년 96.5%이었던 것이 올해 상반기 93.2%로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91.1%) 보다는 증가한 것이지만, 하반기에는 주요 업체 노조 파업이 심해져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차 위상도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생산은 2015년보다 7.2% 줄어 인도에 밀리면서 세계 6위로 떨어졌다. 독일·일본에 이어 10년 넘게 지켜온 수출 3위 자리도 올해 멕시코에 내줬다.

 

현 단계 국내 자동차 산업 경쟁력은 한계에 부딪혔다는 게 업계 진단이다. 중·저 가격대 소형차 위주 수출구조 속에서 선진국 경쟁 업체 대비 기술개발(R&D) 투자 능력이 부족한 것이 우선적으로 꼽혔다. 지난해 현대·기아차 연구·개발(R&D) 투자액은 4조원(34억 달러)으로 독일 폭스바겐(151억 달러)과 일본 토요타(95억 달러), 미국 GM(81억 달러)에 한창 모자란 수준에 그쳤다. 매출액 대비 비중도 2.7%로 폭스바겐(6.3%)·GM(4.9%)·토요타(3.8%)에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고급차와 미래형자동차 분야에서 선진 업체와 기술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여기에 미래형자동차에 대응할 국내 부품업체 수준도 열세다.

반면 고비용 저효율 구조는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 국내 완성차 5개 업체 연간 평균 임금은 지난해 기준 9213만원으로, 토요타(9104만 원)와 폭스바겐(8040만 원)보다 높다. 매출액 대비 평균 임금 비중도 12.2%로 폭스바겐(9.5%)과 토요타(7.8%/2012년)를 앞질렀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국내공장)의 경우 차량 1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이 26.8시간으로, 토요타(24.1시간)·포드(21.3시간)·GM(23.4시간) 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경직성 때문에 생산 유연성이 부족한 점도 거론됐다. KAMA는 “우리나라 노조는 생산현장 통제권을 갖고 있어 전환배치나 해고가 어렵고, 사용단위기간이 짧은 탄력적 근로시간제도나 파견제도 도입이 다른 나라에 비해 어렵다”며 “글로벌 경쟁 업체는 고용·근로시간·임금·근로는 물론, 단체협약까지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어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을 근거로 업계는 인건비 부담과 해마다 반복되는 노사 분규를 자동차 산업 위기를 불러일으킨 직·간접적 원인으로 봤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자동차 산업이 30년간 지속된 대립적 노사 관계와 최고의 인건비 부담,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을 안고 있는 가운데 재도약할 것인가 후퇴할 것인가 기로에 서 있다”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세계 시장에서 파업 하는 나라는 우리뿐”이라며 날을 세웠다.

김 회장은 아울러 “노사 간 교섭력 측면에서 (관련법과 규정이)노조에 우월한 힘을 주기 때문에 사업자는 대안이 없고 파업이 관행화하고 있다”며 “현재 노사정 시스템에서는 사측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만큼 정부가 학계 등 전문가가 주도하는 노사정 협의 기구를 가동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이밖에 간담회에 참석한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과 황은영 르노삼성차 본부장, 김수욱 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 신달석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사장, 이영섭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이사장 등도 정부와 노동계 등을 상대로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을 내주길 바랐다.

 

업계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일각에서는 자동차 산업 경쟁력 악화를 전적으로 노조와 정부 규제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가 글로벌 시장 동향을 잘못 파악한 가운데 일시적인 성장세에 고무돼 R&D 투자 등에 소홀히 해놓고 이제 와서 낮은 생산성 문제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또 다른 오판일 수 있다”며 “중장기적 관점에서 경직된 생산 구조를 바꿔 생산성을 혁신하는 것이 선결과제로, 그런 가운데 노사 문제 등을 풀어낼 해법을 고민하는 게 더욱 올바른 방향 같다”고 말했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차량 품질 문제가 발생할 때나 車 경쟁력 상실을 이야기 할 때마다 노동계 탓을 하는데, 이는 산업계 전반의 문제를 근로자에게만 전가하는 꼴과 다를 바 없다”며 “생활물가 등이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급여 수준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대부분 근로자가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삭감됐다 하더라도 여전히 억대가 넘는 급여를 받고 있는 경영진이 근로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한다면 괴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관련해 지난 14일 공시된 기아차 올해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직원 3만4050명의 상반기 지급 평균 급여는 3700만원이었고, 임원 9명의 상반기 평균 보수액은 1억380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등기이사 4명에게는 2억7600만원이 지급됐고, 이형근 부회장은 수당 없이 급여로만 5억4600만원을 받았다. 전체 직원 급여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동일했고, 임원 보수는 대체로 10% 정도 깎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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