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교통산업 '고용문제'·'근로환경' <버스>
상태바
[창간특집] 교통산업 '고용문제'·'근로환경' <버스>
  • 김정규 기자 kjk74@gyotongn.com
  • 승인 2017.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속 휴게시간 10시간 확대, 쟁점은 수면시간이 아닌 질”

 

[교통신문 김정규 기자] 지난해 7월 봉평터널 전세버스 추돌사고, 올해 5월 봉평터널 시외버스 추돌사고, 7월 경부고속도로 양재IC 광역급행버스 추돌사고, 9월 천안논산·경부고속도로 오산IC, 안성휴게소 고속버스 추돌사고 등 1년여간 졸음운전으로 인한 대형버스 사고 6건. 사망자만 14명.

지난 7월 정부는 연이은 대형버스 교통사고가 발생하자 졸음운전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서둘러 대책을 내놨다. 운전자의 졸음운전을 방지하고 근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개정을 진행하고, 광역버스의 연속 휴게시간을 기존 8시간에서 10시간으로 확대하는 안도 병행 진행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업용 차량에 대한 첨단 안전장치 장착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가했다.

한국도로공사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졸음운전 사고의 치사율은 18.5%로,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 치사율보다 2.4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졸음운전이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이유는 다른 교통사고와 달리 운전자가 위험 상황을 인지할 수 없어 속도를 줄이거나 브레이크를 밟는 등의 회피 반응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장거리 노선버스업계, 실효성 ‘글쎄’…"시간 늘린다고 사고 줄까"

‘졸음’이 대형 교통사고의 ‘원흉’이 됐다. 정부는 장거리 버스기사들의 근로 환경과 휴게시간 확대라는 ‘긴급 처방’을 내놨다. 열악한 근로 조건을 개선하고 기존 8시간의 연속 휴게시간을 10시간으로 늘리는 대안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은 다가올 정기국회부터 추진하고 법 통과 전에라도 관련법 하위법령 개정을 시도한다고 밝혔다. 사업용 차량 운전자 근로시간이 개선되면 인력 수요가 최대 2000명 정도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섣부른 전망도 내놨다.

하지만 업계는 정부가 버스기사의 휴게시간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업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땜질식 처방’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시외·고속버스와 전세버스가 업무 상황과 운행방식이 다른데도 여론에 밀려 일괄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또 의무휴게시간이 확대된다 해도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질지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휴게시간 확대가 교통안전을 담보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점도 업계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우선 버스업계는 현재의 시스템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정부 대책은 경영 부담만 가중시키는 것으로 최근 불거진 문제는 노사간 합의를 통해 현행 휴게시간 조정이나 배차 시스템 개선, 근무제 변화 등으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일각에선 기사들의 연속 휴게시간 확대가 수면 보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연속 휴식시간이라고 말하는 것은 수면시간의 문제인데 이것은 전날 퇴근하고 나서 그다음 날 출근할 때까지 8시간 이상 휴식하게 하라는 것”이라며 “하지만 수면을 강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간을 늘린다고 기사들이 충분한 수면을 해 졸음운전이 줄어들 것으로 보는 주장은 극히 일차원적 해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방침이 도로의 가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거리 노선의 경우 도로상황이 달라지면 극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리게 되는데 정부의 운행시간과 휴게시간 조정이 이를 감안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졸음운전 방지를 위한 대책은 대형사고에 따른 임시방편적 요소가 많고 여론에 밀려 주먹구구식 대안으로 급조한 느낌이 든다”며 “근로시간 상한 조정이나 휴게시간 문제는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으며 시간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객관적 배경 없이 ‘여론몰이’ 정책 추진…업계별 운행특성 고려해야

문제는 현재의 휴게시간 확대안이 교통안전을 담보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장거리 버스기사의 노동시간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팽배해지면서 그에 따른 대안으로 휴식시간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지 그것을 객관적 근거로 연결 지을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세버스업계도 연속 휴게시간 확대에 대해 업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전세버스는 특성상 승객의 이벤트 계획에 맞춰 운행이 결정되고 휴식시간도 승객의 일정에 맞춰 진행되는데 이를 강제할 경우 영업 자체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승객이 떠나 있는 상황에서 운전자들이 돈을 들여 숙박을 결정하거나 휴식시간을 스스로 보장해야 하는데 승객 일정이 바뀌면 이마저도 의미가 없는 게 현실이다. 결국 휴게시간을 강제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제재를 한다는 것은 전세버스 업계의 경영 손실로 이어진다는 의견이다.

"휴게시간 질이 관건"…수면 건강성 확보할 제도적 뒷받침이 중요

정부의 졸음운전 방지 대책은 문제적 요소가 곳곳에 눈에 띤다. 운수업계의 현장성을 수렴하지도 않은 채 ‘사고 발생-졸음 원인-과잉 노동-휴식 연장’이라는 단편적 흐름을 통해 나온 결과물로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휴식시간의 자율성에 대한 고민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에서 휴식시간이 보장된다고 해서 기사들이 무엇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시간만 늘린다고 휴식시간 확대의 취지가 보장된다는 근거가 없어서다.

업계 한 전문가는 “졸음운전에 대한 국가적 대응 시스템이 아직 초보적 단계인 도로공학적 측면에서 속도 저감이나 경보, 휴게시간·졸음쉼터 확대 등에 머물러 왔다”며 “이제 겨우 운전자가 무리하지 않고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연속 운전 시간제한, 버스 준공영제의 확대 등의 제도적 환경 개선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런 제도적 개선과 더불어 졸음운전 사고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서 이제는 우리도 국가 차원에서 졸음운전을 유발하는 운전자의 수면 건강을 돌아보고 치료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수면시간의 확대가 아니라 ‘수면의 질’을 확보해 운전자의 건강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해외 사례와 같이 의학 장비를 이용한 장거리 운전자의 수면의 질의 확보하는 사례는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양압기 등을 사용해 무호흡 수면을 줄임으로써 단시간의 휴식에도 높은 수면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수면시간의 확대가 낮 시간대 졸음운전을 방지한다는 연구결과는 없다. 반면 졸음운전이 수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수면의 질에 있다는 의학적 결과는 속속 나오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졸음운전에 대해 단계적으로 최소한 공공 영역 즉 버스, 지하철, 기차 등의 공공 운수종사자들부터 수면 실태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고 그들의 수면 문제를 사전 치료해야만 공공의 안전을 지키고 졸음운전 사고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후 단계적으로 화물차, 택시 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직까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정밀 수면 검사나 치료를 위해서는 개인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전문가들은 졸음운전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가 의료보험 확대에 수면다원검사나 양압기 치료에 대한 의료보험 확대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광역버스 기사는 “현재 정부 대안은 휴식의 질에 대한 고민이 없이 시간만 늘리면 된다는 식”이라며 “서두르지 말고 노·사 합의를 바탕으로 운수종사자의 휴식과 수면에 대한 체계적 관리가 가능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