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버스 근로시간 단축 현장의 혼란
상태바
노선버스 근로시간 단축 현장의 혼란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18.04.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상욱 박사의 ‘대중교통 현장진단’

[교통신문] 한국은 기적을 이뤘지만 ‘재미없는 지옥’과 같다. 서울에 살고 있는 어느 외국인의 촌평이다. ‘빨리빨리’, 경쟁, 과로, 스트레스…, 이 통렬한 표현들의 이면엔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저임금 장시간 근로의 오랜 관행이 한 몫을 해왔다.

지난 2월 근로시간 단축을 내용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1961년 근로시간 특례제도가 생겨난 지 57년만이다. 동법 개정안에 따르면 노선버스는 장시간 초과근로를 허용하는 26개 특례업종에서 제외돼 현재 주 60시간에 노사합의 시 얼마든지 연장근로가 허용됐으나 당장 올 7월부터 주 60시간으로, 내년 7월부터는 주 52시간으로 단축된다. 1일 짧게는 11시간에서 길게는 16시간까지 장시간 근로 후 다음 날 쉬는 격일제, 복격일제의 근무형태로 운영되는 시외버스, 농어촌버스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가 최근 1개월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실태 조사분석을 위해 전국 곳곳의 사업현장을 둘러본 소감은 한마디로 당장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준공영제가 시행된 덕분에 이번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서울 등 대도시를 제외한 여타 지역의 업계현장에서는 당국에 대한 원망과 대책 마련에 허둥대고 있다. ‘도대체 노선버스라는 게 내멋대로 수입은 올릴 수 없는데 요금은 몇 년째 묶어놓고 최저임금이다 뭐다 인건비는 이렇게 오르니 어떻게 감당하란 말입니까?’, “좀 숨통을 돌릴 여유라도 줘야 할꺼 아닙니까?”, 1년전부터 근로시간 단축에 미리 대비해 왔다는 한 중견업체의 간부는 컨설팅 업체로부터 버스사업을 아예 접을 각오도 하라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변경된 근로제도가 사업현장에 정착되려면 일시에 대규모의 운전인력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가장 시급한 과제다.

특단의 보완대책이 없을 경우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향후 3년간 약 1만8000여명, 당장 금년 7월부터 약 1만여명의 추가 운전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운행 현장 투입 전에 이뤄지는 3주 정도의 실무교육을 감안한다면 오는 6월말까지 약 3개월 동안 부족한 운전자를 시급히 확보해야 한다. 준공영제가 시행되는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현재도 버스운전직의 열악한 처우수준으로 고령화와 이직률이 증가하면서 많은 사업현장에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새로 충원 가능한 운전인력도 마땅치 않다. 사정이 이럴진데 당장 급한 운전자 충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버스의 파행은 불을 보듯 뻔하다.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1만7000명의 신규인력 충원에만 약 3700억원, 여기에 최근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도 금년 한해 약 500억원의 추가부담이 예상된다. 근로시간 단축의 직접 수혜자로 여겨지는 운수종사원들에게도 당장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급여삭감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해결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농어촌버스, 시외버스 업종에서는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임금보전 수단으로 초과 연장근로가 보편화되어 왔다. 현장에선 근로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삭감되면 운전자 이탈로 사업이 어렵기 때문에 결국은 어느 정도 삭감된 임금보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래저래 버스업계는 기존 인력의 이탈방지를 위한 임금보전과 추가 운전원의 확보를 위한 비용 등 이중고의 부담을 떠안게 됐다. 경직된 근로시간 규제로 인한 노선운영상의 비효율 문제도 만만치 않다. 격일제나 복격일제 형태로 운행되는 농어촌 벽지나 장거리를 운행하는 시외버스 노선의 경우 특히 그렇다. 예상되는 사업현장의 노사분쟁 이슈들도 결코 예사롭지 않다. 최저시급 인상에 따른 보수체계 조정,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삭감 문제, 근로시간이나 휴게시간의 범위를 둘러싼 노사간의 대립 등 새로운 노사분규의 불씨를 안고 있다.

사전 대책 없이 통과된 국회의 법 개정으로 당장 마땅한 대책이 없어 우왕좌왕하는 정부당국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당장은 7월부터 신규 충원돼야 할 운전인력을 확보하는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퇴직 운전자, 군전역자 등의 가용인력 풀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조선족 등 해외동포를 활용하는 방법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정부와 업계가 협력해 양질의 운전인력을 체계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운수사관학교의 설립도 적극 검토 되어야 한다. 몇 년 째 동결된 버스요금 현실화도 필요하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정책요인이 추가된 만큼 어느 정도 요금 현실화가 된다면 사업현장의 숨통이 트일 수 있다. ‘버스요금=싼 것’이라는 인식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세계가 부러워하는 서비스 수준을 누리면서도 버스요금은 OECD 평균의 약 40%수준으로 34개 국가중 30위로 낮은 수준이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걸맞는 서비스를 누리려면 버스요금에도 그 대가에 부응하는 수익자 부담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이번 기회에 버스운영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시내버스와 농어촌 버스에 대해서는 대도시권에서 시행되고 있는 버스준공영제의 전면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버스준공영제는 그동안의 시행경험에서 보면 운전자 처우개선과 사고 감소, 서비스 개선 등의 효과에도 불구하고 재정부담의 증가, 일부 업체의 도덕적 해이문제 등 부작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시에서 BIS(Bus Information System, 버스정보시스템)이나 BMS(Bus Management System, 버스운행관리시스템)와 같은 버스운행 인프라가 구축돼 있고, 무료환승도 시행되고 있어서 준공영제 시행에 따른 추가 비용 부담도 많이 해소됐다. 여기에다 이번의 근로시간 단축으로 1일 2교대의 안정적인 근무형태가 가능해 졌다는 점도 준공영제 시행에 유리한 여건이다.

시외버스에 대해서는 과감한 사업규제 완화나 중복 과잉공급 노선의 정비, 표준인건비를 책정해 인건비에 한정된 공정관리와 보조를 하는 인건비 보조형 공공관리제 등 심도있는 운영체제의 개편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파행운행으로 애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일은 막아야 한다.

<객원논설위원=한국교통연구원 광역교통·행정연구팀 선임연구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