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창간특집] 버스업계 탄력근로제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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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창간특집] 버스업계 탄력근로제 진단
  • 김정규 기자 kjk74@gyotongn.com
  • 승인 201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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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제’ 파열음 들린다…“미봉책” 곳곳서 감지
 

[교통신문 김정규 기자] 내년 버스업계의 주 52시간 근무가 가능해질까. 지난 5월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른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을 앞두고 노선버스 운행 감축 우려가 커지자 노사정은 2주 단위 탄력근로제를 도입키로 합의했다. 하지만 탄력근로제 한시적 허용을 두고 지역 곳곳에서 파열음이 발생하는 등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당장 버스회사 가운데 300인 이상을 고용한 업체는 탄력근로제 도입으로 올해 연말까지 기존 주당 70~80시간에 달하던 근무시간을 68시간으로 줄인 뒤 내년 7월부터 52시간 근무를 준수해야 하는 만큼 고민이 깊다. 또 향후 50인 미만 사업자로, 사실상 전 버스업체가 근로시간 단축 개정안의 적용을 받는 2021년까지 탄력근로제 말고는 별다른 해법이 보이지 않으면서 업계의 소리를 반영한 논의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실질 임금산정 시간 줄어 노사 협상에 ‘부정적’

지난 7월 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 실현을 위해 근로기준법을 개정·시행한 이후 노선버스로 대표되는 연장근로 특례제외 업종에 대해 탄력근로제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그러나 탄력근로제로 기존 격일제 근무시간 유지는 가능하지만 임금산정 시간이 오히려 줄어들어 노사 임금·단체협상 갈등이 커질 우려가 커지면서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부정적 여론이 업계를 휩쓸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특정 주의 기본근로 시간 초과를 가능하도록 해 기존 격일제와 비슷한 운행시간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주 52시간 근무(기본근로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를 준수해야 하는 내년 7월까지 유예기간을 준 것이다.

대부분의 노선버스가 격일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첫 주엔 하루 평균 15~17시간 이상 근무하고, 다른 한 주엔 짧은 운행 노선을 맡아 근무시간을 줄이는 방식이다. 일이 많이 몰리는 기간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다른 기간의 노동시간을 줄여 평균적으로 법정 노동시간을 맞추는 노동 형태이다.

우선 버스업계는 탄력근로제 도입으로 주 최대 52시간 위반을 겨우 면했다.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해 오는 12월까지 6개월간 법규 위반에 따른 처벌을 미룬 만큼 큰 혼선은 피했다. 300인 이상 고용 버스업체는 ‘1일 2교대’로 전환하지 않고 현행 ‘격일제’나 ‘복격일제’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탄력근로제 논란은 기존 근무시간만 유지시켜줄 뿐 근로자들 임금은 오히려 감소시키는 구조여서 노사 간 임금협상을 더욱 어렵게 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불거졌다. 격일제의 경우 연장근로 시간에 대한 제한이 없었지만 탄력근로제로는 최대 연장근로 시간에 제한이 생겨 이로 인한 추가수당이 줄기 때문이다. 노사 임단협의 갈등 요소로 상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업계에선 최저임금 인상도 협상을 어렵게 하는 추가 요인으로 지목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가 거센데 탄력근로제에 따른 임금보전까지 생각해야 해 어려움이 있다”고 볼멘소리를 내놓고 있다.

탄력근로제가 근로기준법 위반을 일시적으로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의 후속대책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목소리다. 근본적 대책을 요구하는 주장이 제기된다. 노조 한 관계자는 “운수종사자 양성, 채용비용 지원, 요금 적정화, 준공영제 확대 등에 논의가 먼저”라며 “정책이나 근무 환경 등 본질적 문제에 대한 논의가 없는 탄력근로제는 언제라도 불거질 파업 등 버스대란을 미루는 수준의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제도 악용 소지 있어”…기사 인력난은 그대로

이러자 일각에선 임금 삭감에 대한 노동자의 우려를 이용해 탄력근로제 합의를 끌어내는 기업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한다. 탄력근로제가 노사별 서면합의에 따라 시행되는 제도인 만큼 사업자가 이를 악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제도가 자칫 노동 강도를 높이거나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 통제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섞여 있다. 노조를 중심으로 정부의 ‘탄력근로제 적극 활용’에 반발하는 배경이다.

기사 충원 없는 제도가 결국 노동 강도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근로시간 줄이겠다는 취지의 제도가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빠질 수 구조적 모순을 함께 하고 있다는 주장이 여기서 나온다.

일부 탄력근로제를 시행하고 있는 업체는 정부의 6개월간 근로시간 단축 계도기간에 대해서도 부족한 인력 충원을 위해서는 적어도 2~3년의 시간이 걸리고, 그나마 신규 인력 채용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을 감안하면 정부의 단속 및 처벌 유예는 실질적인 효력을 나타내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현재 탄력근로제에 따라 주당 기본근로기간 40시간을 초과할 수 있지만 무제한 가능했던 연장근로는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업체들은 운전기사를 확보에 나서고 있다. 반면 버스업계의 고질적 인력난은 나아지지 않고 있어 운행버스에 상시 모집공고를 붙이고 다니고 있지만 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버스 파업 현실화…정부는 원론적 입장 되풀이

업계의 우려는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는 지역을 중심으로 현실이 되고 있다. '주 52시간제' 도입에 따른 시내·시외버스 파업 국면이 이어지면서다. 지난달 파업 직전까지 갔던 경북 포항 시내버스는 격일제 근무 대신 1일 2교대제로 바꿔 주 52시간 근무를 지키는 것을 합의해 파업 위기는 일단 넘겼다. 근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임금을 줄여야 한다는 사측의 입장과 임금을 유지해야 한다는 노조의 요구가 팽팽히 맞서고 있어 일촉즉발 상태다.

지난 5일 총파업을 예고했던 충남지역 버스는 임금인상에 최종 합의하면서 극적 타결되기도 했다. 충남버스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무 시행으로 하루 평균 임금이 낮아지면서, 일평균 임금에 근거해 지급하는 퇴직금 수급 신청도 급증해 자금난을 겪고 있다"고 했다.

또 경북지역에서도 버스 노사 임금협상이 결렬돼 파업 위기가 고조된 바 있고, 전남에서도 4개 지역 시내버스 노조가 쟁의조정을 신청하는 등 전국에서 갈등이 양산되고 있다.

한편 정부는 탄력근로제에 대한 버스업계의 우려가 높지만, 원론적 입장으로 대처하고 있다. ‘노사 합의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노사정 합의에 따라 사측과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버스 기사의 임금 감소분을 보전키로 선언한 만큼 6개월간 근로시간 단축 계도기간과 상관없이 국토부는 노선버스 근로시간 단축 환경을 조성키로 하고, 연말까지 노선버스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노동시간 단축이 노선버스 업계에서 제대로 정착하기 위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탄력근로제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세부 운영규정을 마련해 노사 간 다툼의 여지를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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