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차 없이도 행복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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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 없이도 행복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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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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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욱 박사의 대중교통 현장진단

[교통신문] 세종 신도시는 분당 신도시의 4배인 73㎢의 면적에 조성되는 국내 최대의 신도시다.

원수산 자락의 넓은 평야, 미호천 등 갈대숲 사이로 서너 개의 하천이 모여 합강을 이루는 금강변의 광활한 자연생태 공원과 습지는 세종 신도시가 누리는 천혜의 자연환경이자 보물이다. 2030년 인구 50만을 목표로 착공된 지 이제 10년, 아직 절반 정도의 공정에 불과하지만 세종시는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넓은 호수공원과 수목원, 국립도서관,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 등 편의시설도 증가되면서 신도시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입주민들의 기대도 한껏 부풀어 있다.

대중교통중심도시에 걸맞는 우수한 교통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세종시는 지금까지 약 2조원을 투입해 광역도로를 비롯, 땅위의 지하철인 26km의 환상형 BRT(간선급행버스) 운행체계, 250km에 이르는 국내 최대 자전거 전용도로를 구축해 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대중교통의 운영이다. 중추 대중교통수단인 버스 분담률은 14% 수준으로 전국 평균치 21%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대전시나 청주시 등 인접한 도시 보다도 못하다. 대부분이 2차로인 도로는 출퇴근 시간대면 자동차로 혼잡을 이루고, 여기저기 주차문제로 아우성이다. 가구당 자동차 보유대수도 전국 평균치 보다 높다. 당초 구상인 2030년 대중교통 분담율 70% 목표 달성은 고사하고 어쩌면 자동차 중심도시의 오명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명색의 대중교통 중심도시를 지향하는 세종시 신도시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마땅한 해법은 없는 것일까? 지난 달 20일 한국교통연구원에서 세종시, 세종행복도시건설청, 교통학회와 연구원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세종시 교통혁신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가 열렸다. 주제 발표와 토론의 대부분은 광역교통, 신호체계, 버스노선, 자전거, 주차문제 등 세종시 교통이 당면한 현안문제의 종합 진단과 처방에 관한 것이었다. 새로운 것이라면 세종시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시티 정책구상 정도였다.

이날 행사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으나 필자에게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무상 대중교통 정책제안이다. 이 제안을 한 사람은 임승달 전 강릉대 총장이다. 임 총장은 노무현 정부당시 세종시 도시계획 입안 단계부터 깊숙이 관여해 왔으며 현재도 세종시의 각종 도시정책 자문에 활발히 참여 하고 있는 저명한 교통전문가다.

임 전 총장은 날로 악화되고 있는 세종시의 대중교통 혁신을 위해서는 버스노선이나 시설 등 단순히 공급 확대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세계 몇몇 도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무상 대중교통 정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무상 대중교통에 대해서는 토론회에서도 예산 부담만 늘고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비판적 견해가 있었지만 정교하게 설계된 교통문제의 타개책으로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2018년 현재 세계적으로 21개국 88개 도시에서 무상 대중교통이 시행되고 있다. 대부분 버스와 트램, 미니셔틀 등 대중교통을 망라한 통합시스템을 갖추고 도심지역을 중심으로 시행하고 있다. 동유럽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무상 대중교통을 시행하는 대부분의 도시가 인구 10만 이하의 소규모 도시인 반면 탈린시는 인구 40만의 중소도시 규모에 시행한 최초의 사례다. 세종신도시의 목표 인구 50만에 딱 들어맞는 규모다. 탈린시는 2013년 75%가 찬성한 주민투표를 통해 대중교통 무료화를 시행했다. 시민의 교통편의를 늘리면서 교통체증과 환경오염을 줄이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취지였다.

초기의 예산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도 있었으나, 부족한 재원은 차량 연료세나 주차료의 인상과 주민 유입에 따른 세수증대로 해결했다. 승차권의 판매나 관리에 소요되는 시설, 인건비가 줄고 자동차 교통량도 6%정도 줄어들었다. 무료요금제 시행으로 가구당 92유로(약 12만원)의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보전 효과도 있었다. 새로운 주민의 유입으로 경제가 더욱 활기를 띄고 주민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에스토니아는 금년 7월부터 세계 최초로 무상 대중교통을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고 있다.

사회주의 전통의 인구 130만 에스토니아의 과감한 결단은 대중교통을 단순히 이동편의 개선을 위한 교통대책의 협소한 시각을 넘어 침체된 지역경제의 활성화라는 비즈니스 차원에서 접근한 실용적 대책이다. 75%이상의 시민들이 지지할 만큼 견고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추진역량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탈린시와 에스토니아의 결단은 단순한 ‘퍼주기식’의 무상복지 포퓰리즘과는 그 결이 다르다.

에스토니아의 무상 대중교통 실험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향후 얼마나 지속가능한 효과를 이뤄낼 수 있을지는 보다 냉철히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탈린시의 사례를 비롯한 세계 여러 도시들의 다양한 사례를 참고하여 세종시의 미래 교통문제를 혁신할 수 있는 무상 대중교통의 정교한 정책대안이 검토되었으면 한다. 세종 신도시의 환상형 운행 BRT(간선급행버스)와 순환버스, 공용자전거를 망라한 대중교통 프리존(Transit Free Zone)을 만들고, 부족한 재원은 원인자부담 차원에서 교통유발부담금을 인상하거나 엄격한 주차수요 관리 등을 통해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신도시에 한정할 경우 소요 예산도 절감하면서 승용차 이용을 줄이기 위한 강력한 교통수요 관리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했던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부회장인 김현수 단국대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종시가 발전하려면 기업, 유통, 판매 등 외부의 고급수요를 끌어들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도시내부의 교통에만 주력하지 말고 KTX역을 세종시 깊숙이 끌어 들여야 합니다”. KTX역은 이미 정치권의 문제로 당분간 물 건너갔고, 도시의 이곳저곳엔 당국의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혼잡한 승용차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 없이 세종시가 그리는 미래의 장밋빛 청사진은 결코 기약할 수 없다.

<객원논설위원-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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