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신년특집]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을 기회 맞이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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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신년특집]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을 기회 맞이했죠”
  • 이승한 기자 nyus449@gyotongn.com
  • 승인 201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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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차에 맞서 집단소송 이끄는 하종선 변호사
▲ 지난달 하종선 변호사가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바른 사옥에서 BMW 차량 화재 사건의 핵심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교통신문 이승한 기자] 법무법인 ‘바른’ 하종선 변호사는 대표적인 법조계 ‘자동차’ 전문가다. 1980~90년대 현대자동차에서 법률 담당 임원으로 재직하며 미국에서 발생하는 제조물책임(PL) 소송을 맡았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동차에 대한 전문성을 키웠다. 이후 손해보험사 대표로 재직하는 등 현장에서 얻은 자동차 관련 법 지식만큼은 국내 최고 수준이라 볼 수 있다.

하 변호사는 수입차 업계 ‘저승사자’로 불린다. 2015년 폭스바겐그룹을 상대로 소비자 집단소송을 대리하면서 그런 인식이 확산됐다. 국산차 업체 근무 이력 때문에 수입차 업계를 강하게 몰아붙이는 것 아니냐는 의문에 하 변호사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2015년 터진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은 세계적인 사건이었어요. 업체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러던 중 폭스바겐 차량을 소유한 주변 지인이 법률 자문을 구한 것을 계기로 집단소송이 시작됐어요. 속해 있는 법무법인이 국내 일곱 번째로 큰 로펌이에요. 대형 로펌이 관심을 가지니까 많은 이가 신뢰하고 참여해준 것 같습니다.”

하 변호사가 피해 차주를 대리하고 있는 집단소송은 수입차 업체 다섯 곳을 상대한다. 가장 먼저 제기한 폭스바겐 소송은 5000명 넘는 피해 차주가 참여하고 있다. 재판부만 다섯 곳이다. 하 변호사는 “재판부 한 곳이 오는 3월 판결을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형사 소송은 당시 한국법인을 책임졌던 외국인 임원이 대부분 출국해 애를 먹고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머지않아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BMW 화재 사건 소송은 현재까지 모두 900명이 참여했다. 실제 화재가 난 차량, 리콜 대상에는 포함됐지만 화재는 발생하지 않은 차량, 2017년 하반기 이후 판매된 신형 차량으로 나눠 준비 중이다. 하 변호사는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나왔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소송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 지난달 하종선 변호사가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바른 사옥에서 수입차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가중되고 있는 이유와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수입 상용차 업체 상대 집단소송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6월 벤츠트럭 차주 50여명이 서울에서 한국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7월에는 만트럭 차주 70여명이 수원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마지막으로 11월에는 볼보트럭 차주 50여명이 수원에서 소송을 제기해 현재에 이르렀다. 벤츠 건은 조정절차가 진행 중이다.

소송 쟁점은 차량 문제가 결함·하자에 의한 것인지 여부와 충분한 피해 보상이 이뤄졌는지에 있다. 당연히 업체는 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보상도 충분히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피해 차주가 수입차 업체에 ‘뿔’이 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게 하 변호사 말이다.

“수입차는 좋은 차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국내 소비자 입장에서 발생하지 않아야할 결함이 발생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그나마도 보증기간 끝나면 수리비용이 상승하는데, 제대로 된 AS마저 힘들어 수입차에 갖고 있던 기대가 여지없이 깨지게 된 거죠. 업체와 고객 간에 신뢰 구조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중대형 트럭은 결함을 방치하면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죠. 그런데도 업체는 부품만 교체하면 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마치 요행을 바라는 분위기인데, 사고 여부를 떠나서라도 차량이 결함으로 멈춰버리면 차주 생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넘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 BMW 차주 및 피해자모임이 BMW 한국법인 임원 등을 형사고소하기 위해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하종선 변호사. [저작권자]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서 유독 수입차 업체 태도가 문제인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하 변호사는 법제도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하고, 정부가 수입차 업체를 견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봤다.

“수입차 업체 입장에선 한국은 정말 장사하기 좋은 시장이에요. 이들 업체가 외국에서 보이고 있는 태도와 비교하면 분통이 터질 때가 많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내 자동차 시장 전반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간 한국 시장이 업체에 지나치게 유리했기 때문에 수입차 업체 또한 한국 시장을 쉽게 여겼다고 생각해요. ‘한국 와서 나쁜 것 배운’ 업체가 정신을 차릴 때가 됐다고 봅니다. 집단소송을 계기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죠.”

하 변호사는 AS가 제대로 이뤄지는 경우가 적고, 결함이 발생해도 업체가 이를 인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폭스바겐 피해 차주가 인증 취소 때문에 ‘불법으로 굴러다니는 차를 몬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고 강조했다. 차량 가격 환불과 정신적 피해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 지난달 하종선 변호사가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바른 사옥에서 BMW 차량 화재 사건의 핵심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하 변호사는 소비자가 두려워하지 않고 업체에 따질 수 있도록 법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최근 관련 자동차관리법이 개정되면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시행되고, 업체가 관련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으면 결함을 인정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어요. 추가해 결함·하자 입증 책임을 제조사에 물릴 수 있도록 미국식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에선 재판 전에 소비자가 업체에 관련 문서·자료 요구나 증인 심문 권리를 주고 있어요. 재판 전에 결함 사실을 입증해 재판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영업비밀’이라며 업체가 자료 제출을 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원고인 소비자 입장에서 결함을 입증하는 것이 무척 어렵습니다.”

향후 집단소송과 병행해 자동차를 전담하는 경실련이나 참여연대 같은 전문 공익 단체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미국 ‘센터 포 오토 세이프티(CAS)’ 같은 단체가 롤 모델이다. 하 변호사는 “우리나라 소비자 단체는 교수나 기술자가 개별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 시너지 효과를 얻는 게 힘들다”며 “이들이 힘을 합해 전문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은데, 발족할 때까지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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