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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1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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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호 교수의 자동차 단막극장

[교통신문]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전자제품박람회(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는 그 제목과 달리 많은 자동차 기업이 자사의 첨단 제품을 전시했다. 몇 년 전부터 자동차회사들이 이 전시회에 참가하기 시작했으니 요즘 자동차는 전자제품의 일종으로 봐도 무방할지 모르겠다. 바야흐로 자동차와 IT가 융합되어 가는 미래의 물결이 문 앞에 서서 노크하고 있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번 CES에서 기아차가 전시해 눈길을 끈 R.E.A.D 시스템은 각별한 것 같다. R.E.A.D는 ‘Real-time Emotion Adaptive Driving’의 약자로 ‘실시간 감정반응 운전’ 시스템을 의미한다. READ 시스템은 탑승자의 기분에 맞춰 차량의 실내 공간을 최적화한다고 한다. 카메라와 생체 감지 센서 등을 이용해 승객의 표정을 읽고 기분을 파악해 실내온도, 향기, 조명, 음악, 가감속 정도와 진동 수준까지 제어한다고 한다. 머신러닝 기법을 적용해 운전자의 감정 상태를 점점 더 정확하게 감지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운전자를 읽어내는(read) 시스템인 것이다.

오랫동안 함께 생활해온 배우자나 직장동료, 친구의 표정, 억양, 몸짓의 미세한 변화만으로 그 기분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음을 우리 ‘인간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동료가 평소와 달리 우울한 것 같으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기도 하고, 너그러운 기분일 때는 곤란한 부탁을 슬쩍 들이밀기도 한다.

이런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눈치 없는 인간이라는 딱지를 붙여 따돌리기도 하지 않는가. 혹시 이렇게 분위기 파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독자가 있다면 한번쯤은 의심해봐야 한다. 자신이 바로 왕따가 아닐까, 혹은 갑질을 하는 인간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감정 인지 능력이 부족한 인간들도 존재하는 판국에 눈치 빠른 자동차가 등장해 우리의 기분에 맞추어주기 시작했으니 참으로 기쁘고도 놀라운 일이다.

READ 시스템이 대중화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고 생각하다가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심각한 부부싸움으로 기분이 상해 이제 각자의 길을 가야하지 않을까, 깊은 고민에 빠진 여자가 길고 긴 업무시간을 마치고 주차장에서 자신의 승용차에 오른다. 우울하게 깊어진 눈동자, 어두운 안색과 느려진 맥박수를 파악한 자동차의 음성 시스템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힘든 하루였지요?’ 동시에 낮은 음량으로 조지 거쉰의 서머타임이 실내에 울려 퍼진다. ‘서머타임, 아이야 울지 마라…’ 두 눈을 감고 음악을 듣던 여자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도록 차창의 색이 짙어지고, 시트의 온도가 따뜻하게 데워지며 부드러운 여름 꽃향기가 풍겨온다(거쉰의 서머타임은 아이를 달래는 엄마의 자장가이다.)

물론 이런 수준으로 운전자의 기분을 파악하는 시스템은 아직까지 힘들 것이다. 하지만 바둑이라는 고도의 사유능력을 필요로 하는 영역에서 이미 인간을 한참 추월한 인공지능 알파고를 떠올려보면 그다지 먼 미래의 상황도 아닐 것이다.

최근 발생한 극단적인 ‘갑질’과 봇물 터지듯 확산된 ‘미투’ 같은 일들은 모두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는 공감능력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 것들이 아닐까. 상대방의 기분과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면 육체적인 폭력은 고사하고 폭언조차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사람이 아니고 메달을 따오는 기계 정도로 생각해야 그런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종업원을 일하는 노예로 생각해야 욕설을 퍼부을 수 있고, 가임기의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로 볼 때 엉뚱한 출산 장려 정책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 모든 문제가 사실 감정 인식 능력의 부족, 공감능력의 부족 때문이라고도 정리할 수 있겠다.

그래서 기아차의 READ 시스템은 그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출퇴근으로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여행이나 출장 등으로 열 시간 이상을 차에서 보내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상처받은 운전자의 기분을 파악해 음악도 틀어주고 향기도 뿜어주며 운전도 조심스럽게 한다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사람한테 받은 상처를 자동차가 치유해주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혹은 사람보다 자동차가 더 나은 시대라고 해야 할까.

4차 산업혁명이니 인공지능이니 해서 다가오는 미래가 두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런 기술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할만하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상을 살만하게 만들어주는 기술이니 말이다. 또한 이런 기술을 선도하는 기아차의 선견지명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기술이기 때문에 당장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간답게, 기분 좋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제발 ‘READ’ 하면서 살자고 말이다.

<객원논설위원·평택대학교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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