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택배·배송대행 법적 근거 ‘생물법’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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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택배·배송대행 법적 근거 ‘생물법’ 초읽기
  • 이재인 기자 koderi@gyotongn.com
  • 승인 2019.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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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제정 추진 과제 확정…입법절차 7월 착수
‘택배법’ 아닌 ‘노동법’ 온도차 극명
사용자 “자유시장경제체제 훼손 가능성 농후”
노동계 “특고직 노동자 보호한다는 정부 취지 온당”

 

[교통신문 이재인 기자] 택배와 배달대행을 총괄하는 ‘(가칭)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이하 생물법)’ 제정을 위한 작업이 초읽기에 들어간다.

생활물류서비스 육성기반 구축을 골자로 한 법 제도를 신설하고,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법)과 별개의 독립된 형태로 법령정비를 추진하는 정부 계획안이 확정되면서다.

이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진행된 ‘제18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선정됐으며, 물류산업 혁신방안 일환으로 택배·배송대행업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과제가 추진된다.

법령정비는 당초 입법 취지에 맞춰 택배기사 등 특수형태근로 종사자(특고직)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이들의 고용안정성과 노동자성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형태로 정립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를 위해 다양한 조건의 안전장치가 논의선상에 오른 상태며, 관련업계와 노동계가 제시한 대안을 아우르는 형태로 재구성될 예정이다.

지난 26일 정부는 신설법 구상 계획을 발표하고,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가칭)생물법 제정 및 화물법 개정 등에 필요한 입법절차를 7월 중 착수·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운송수단 관리체계 손질…별도법 제정

택배·퀵·배달대행에 사용되는 운송수단의 관리체계가 개편된다.

집배송 용도로 허가됐던 택배전용차량(배 번호판)을 비롯해 퀵서비스와 배달대행에 투입되고 있는 이륜차가 대상이다.

그간 화물법 상에서 허가됐던 택배전용차량은, 동법 관리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직접운송의무제와 최소운송의무제 등 화물법 규정 적용대상에서 택배를 제외하고, 택배전용차량을 개별·용달화물 업종과 법적으로 분리하는 방안이 확정된데 따른 것이다.

기존 사업용 화물차(아·사·자·바)는 화물법으로, 배 번호판 택배차는 생물법으로 이분화 하고,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는 화물법은 기존 체계를 유지하되, 생물법으로 귀속되는 택배전용차량은 매년 정부가 실시하는 증차심의와 관계없이 증차가 가능한 등록제로 운영한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계획안대로 업종이 신설되면, 배 번호판 차주인 택배기사는 기존 화물차 운전자(아·사·자·바)와 다른 형태의 법적 잣대를 적용받게 된다.

여기에는 택배기사의 법정 의무와 사용자인 택배회사의 책임 권한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이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한편, 이륜차에 부착되는 넘버도 생물법 관리를 받게 된다.

비(非)사업용 넘버가 부착됐던 이륜차에 사업자를 제도권 내로 이끌어 사업자로서의 법적 책무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생물법에 흡수된 이륜차 넘버를 영업용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검토대상에 포함돼 있으며, 구체적 방법론은 지난 3월 발족된 물류산업 공생발전 협의체를 통해 도출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각 시·도 지자체에서는 이륜차 현황 및 실태조사가 실시된 바 있다.

▲사용자-피사용자, 엇갈린 시선

정부의 입법절차 추진 선언에 대해 택배사들은 우려한 반면, 노동계는 환영 입장을 내놨다.

법적 보호 대상에서 제외돼 있던 특고직의 처우개선과 개별적으로 이뤄졌던 위수탁 계약내용을 법제화 한다는데 초점이 맞춰지면서다.

정부 계획안을 보면 관행상 1년 단위로 행해지고 있는 택배기사의 운송계약 갱신 청구권을 3년으로 정하고, 피사용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조건부 계약조항을 제거한다는 취지로 정부가 인정한 표준계약서가 도입된다.

사용자인 택배사와 배송대행사는 위수탁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배송기사)의 안전관리 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산업안전보건법 등 위반으로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는 과징금과 택배차 공급제한을 적용하는 페널티도 준비되고 있다.

반면, 피사용자인 특고직이 개인사업자로서 이행해야 하는 법정 의무와 정시배송 등 의무불이행 등에 대한 책임을 법으로 정한다는 내용은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이런 이유로 사용자인 택배회사와 배달대행 중개 플랫폼 업체들은 미온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A 택배사 관계자는 “생물법 제정 취지는 과거 추진됐던 택배법과 맥을 같이하고 있으나, 법안 마련의 방법론에 있어서는 이해당사자들간 간극이 상당하다”면서 “노동계가 주창하는 특고직 처우개선이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생물법은 업체별 상황과 조건이 모두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내용물이고, 사업자대 사업자로서 계약조건을 조정·조율해야할 부분을 법으로 정한다는 자체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택배뿐만 아니라 대다수 업종에서도 사용자가 내건 조건에 맞춰 피사용자가 노동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러한 사회적 룰을 인정하지 않고 특고직을 정규직으로, 위탁을 직영으로 전환하라는 정부 계획안은 선을 넘은 것”이라면서 “정부가 권고하고 제안할 수는 있으나, 이러한 정책을 법제화한다는 것은 의사결정권이 있는 경영주의 판단에 아래 사업체가 운영되고 있는 현 자유시장경제체제의 가치를 훼손하고 부정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택배사와 정부의 소통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 한국통합물류협회도 생물법 제정을 두고 ‘계륵’과 같은 존재로 전락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서 우려를 표명했다.

계획안대로 진행되면 사용자의 책임과 비용부담이 늘게 되는데, 이 부분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요금인상이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며, 정부가 지목한 대국민 생활편의 서비스에 택배가 포함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회적 합의라는 긴 여정을 거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제시한 법 제정 취지는 동의하나, 구체적 내용이 논의된 바 없기에 법안추진 일정을 파악 중”이라면서 “한쪽으로 편향된다면 후폭풍은 물론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소지가 다분하기에 정부와의 입장 조율을 거쳐 합리적 결과물을 도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노동계는 정부방침을 사용자가 적극 수용해야 한다며 고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난 26일 택배노동자 기본권 쟁취 투쟁본부는 논평을 통해 “사용자인 택배사의 입맛에 맞게 택배산업을 좌지우지함에 따라 특고직 택배노동자들이 고통 받고 있고, 정부가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생물법 제정의 필요성을 시종일관 강조했다”면서 “그렇기에 생물법에는 택배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위한 내용이 비중 있게 들어가야 함은 물론, 건당 수수료 하락과 장시간 노동에 대한 구조가 법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택배 노동자의 가치가 존중되고, 일방적 계약해지 등 각종 위협으로부터 노동자가 대응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택배요금 정상화, 집배송 수수료 보장, 고용안정 보장, 주5일제 도입, 작업환경 개선, 노동3권 보장 등이 포함돼 있다.

▲생물법 수혜자는 누구?

노동계는 요구사항이 관철되면 특고직 기사의 수입 등 처우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무시간이 줄어드는 대신 택배요금 인상에 따른 배송건당 수수료가 상향된다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화주·소비자로부터 연중무휴 문전배송 요구가 지속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택배사 측에서는 서비스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또 다른 대안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정부의 스마트물류 정책에 입각해 무인 자동화 카드를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나리오대로 정직원 전환에 따른 주5일제가 적용되면, 최저임금을 적용한 월 단위 급여가 지급되는 대신 실 수입원인 수수료는 받지 못하게 된다.

현 체제상 정규직을 유지하면서 배송건당 수수료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체결된 도급 계약을 이중으로 적용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부담원칙에 따라 정직원 수준의 대가를 지불하고, 현재 산·학·연을 중심으로 연구개발 중인 자율주행 화물차와 군집주행 운송서비스, 물류로봇 자동화 설비를 통한 무인화 계획안이 구체화되고 있다.

일단, 지금의 택배기사 수입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시장점유율 1위인 CJ대한통운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1만7000명 택배기사의 월평균 매출은 551만원에, 실 수령액은 411만원으로 조사됐다.

실 수령액을 주말을 제외한 근로날짜(22일)와, 일일 업무시간(7시~21시, 집화 기준)으로 계산하면 시급 1만3400원이 산출된다.

‘최저임금 1만원’을 관철시키겠다는 노동계의 산술범위를 넘어선 셈이다.

정부가 생물법을 통해 사용자의 필요에 의해 체결되고 있는 도급 계약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개인사업자인 배송차주에게 업무를 내리는 하청 방식을 직접고용 형태로 전환하면 영업용 화물차 증차 심의 대상에서 면제한다는 점을 비춰볼 때, 오히려 지금의 시급 1만3400원 보다 낮은 최저임금(2019년 기준 8350원)을 적용하는 셈법을 사용자가 택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노동자 보호차원에서 고용·산재 4대보험 등의 안전장치가 반영되도록 생물법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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