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일본산 자동차 규제, 과연 압박 효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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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일본산 자동차 규제, 과연 압박 효과 있을까?
  • 이승한 기자 nyus449@gyotongn.com
  • 승인 20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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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 경제제재 조치에 대안으로
무역 불균형 심한 자동차 산업 거론
수입 통관 강화 조치 등 필요 목소리
“기대 효과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
일본 정부가 한국으로 수출되는 반도체 소재에 대한 규제에 나서자, 국내에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일어나며 큰 반발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무역 불균형이 심한 자동차 규제를 보복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일본 제품 판매를 하지 않겠다는 플랫카드를 내걸은 서울의 한 마트. [저작권자]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일본 정부가 한국으로 수출되는 반도체 소재에 대한 규제에 나서자, 국내에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일어나며 큰 반발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무역 불균형이 심한 자동차 규제를 보복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일본 제품 판매를 하지 않겠다는 플랫카드를 내걸은 서울의 한 마트. [저작권자]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교통신문 이승한] #1. 지난 8일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일본 브랜드 자동차 판매점. 차량 4대가 서 있는 전시장에는 찾는 손님이 보이질 않아 한산했다. 영업사원은 “전반적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찾는 손님이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실제 구매할 분들만 방문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실적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한일관계 악화에 따른 영향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2. 김주용(51)씨는 6년 전 처음 일본 브랜드 승용차를 구입했다. 지난해 차를 바꾸면서 선택한 것도 일본 브랜드다. 수입차 가운데선 비교적 저렴한데다, 우수한 하이브리드 성능 등을 고려했다. 김씨는 “최근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일본제품 쓰는 것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지면서 운전할 때마다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다. 당분간 차를 놔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고민도 했는데, 운전하는 버릇이 들어서 그런지 실행하는 게 쉽지는 않다”고 했다.

#3. 김가은(33)씨는 얼마 전부터 생애 첫 차를 사기 위해 서울 시내 다양한 브랜드 자동차 전시장을 찾고 있다. 이것저것 저울질 끝에 내린 김씨 결론은 일본 브랜드였다. 경제성과 실용성은 물론 성능과 디자인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였다. 김씨는 “업체와 차종까지 결정하고 견적까지 냈는데, 한일관계 악화 소식을 들었다. 차량 구입 계획을 아는 친구들이 일본차 사도 괜찮을까라고 묻는데, 솔직히 신경이 안 가지는 않는다. 괜히 망설여져 며칠 계약을 미루고 있다. 저 차 아니어도 대체할 차종이 많다는 생각까지 드니까 계약서에 도장 찍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했다.

◆일본정부 압박에 한국 반발=한국에서 거칠 것 없이 질주하던 일본산 자동차가 일본 아베 정권의 경제제재 조치 탓에 급브레이크를 밟고 멈출 수 있을까?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대법원의 첫 배상 판결이 나온 지 8개월 만인 지난 1일 반도체 제조 등에 필요한 핵심소재 등의 수출 규제에 나섰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한국으로의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해 스마트폰 및 TV에 사용되는 반도체 제조 과정에 필요한 주요 3개 품목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한 것.

당장 한국 내에서 일본의 조치에 대한 반발이 커졌다. 대부분 ‘터무니없는 규제인 만큼 상응한 보복 조치가 필요하고, 국제사회에 이런 사실을 알려야한다’는 주장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는 한일 양국이 정면충돌했다. 한국은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경제보복 조치인 만큼 철회돼야한다”고 했고, 일본은 “금수조치가 아니다”라며 맞섰다.

국내에서는 반일 감정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일부 소비자를 중심으로 일본 제품 불매나 일본 여행 자제와 같은 움직임이 나타났고, 이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울산 적폐청산 시민연대는 8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베 정부가 굴복하는 날까지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일본 경제 제재에 대한 정부의 보복 조치를 요청한다’는 청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시장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편의점과 대형마트에서 일본 맥주 판매량이 줄었다. 무더위 속에서 전체 맥주 판매량이 늘어난 것과 대조를 이룬다.

민간부문과 별개로 정부도 대응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양한 방식으로 조치가 강구되고 있는데, 대응 수위는 아직 그리 높지 않지만 앞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관련해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보복 조치는 국제법에 위배돼 철회돼야 한다. 국제법과 국내법상 조치로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불합리하고 상식에 반하는 보복 조치”라고 비판했다.

◆보복카드로 자동차 규제 거론=일본산 자동차 수입에 대한 제재 조치 필요성은 이런 상황과 분위기 속에서 거론되고 있다.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제재 요구는 민간에서 먼저 나왔다. 시민사회와 경제·산업계 및 학계 일각에서는 “무역 불균형이 심해 적자 폭이 큰 자동차 시장을 건드리는 게 가장 효과적인 만큼 일본산 수입통관 절차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져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자동차 산업은 한일 간 무역에서 가장 불균형이 심한 종목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일본으로 국산차 수출은 승용(76대)과 상용(21대)을 합해 97대에 그쳤다. 금액은 473만3000달러(56억원). 반면 일본산의 국내 수입은 5만8503대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액만 12억208만 달러(1조4143억원)에 이른다. 대수는 603배, 금액은 254배 차이가 난다.

올해는 무역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1월부터 5월까지 국산차 수출은 24대에 그쳤다. 전년 동기(80대) 보다 3배 이상 줄어든 실적이다. 이에 반해 일본산 수입은 2만5284대로 전년 동기(2만578대) 대비 22.9% 증가했다. 금액도 5억4336만 달러(6393억원)로 전년 동기(4억2612만 달러) 대비 27.5% 늘었다. 민간에서 일본에 대한 보복 카드로 일본산 자동차를 언급하는 이유다.

일본산은 침체된 수입차 시장에서 홀로 성장을 지속중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체 수입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14만109대) 대비 22.0% 줄어든 10만9314대에 그쳤지만, 같은 기간 일본 브랜드 판매량은 2만1285대에서 2만3482대로 오히려 10.3% 늘었다. 시장 점유율 또한 21.5%로 전년 보다 6.3%포인트 상승했다. 렉서스의 경우 33.4% 증가한 8372대, 혼다는 94.4% 증가한 5684대를 각각 판매했다.

자동차 시장을 대응 카드로 눈여겨보는 이유에는 고전하고 있는 국산차 업계와 시장을 고려한 측면도 담겨 있단 분석. 주요 차급·차종에서 국산차와 경쟁하는 일본산 자동차를 견제함으로써 반전을 노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장 일각에서 나왔다. 설령 한국과 일본이 자동차 산업에서 갈등을 일으켜도 한국이 손해 볼 것 없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일본산 자동차 대부분이 자국산 또는 미국·유럽산 부품을 쓴다. 따라서 일본이 국내 자동차부품 업계를 상대로 수출 제한을 걸어도 영향력이 크지 않다. 국산차 일본 수출 또한 미미해 제한 조치가 취해져도 유명무실할 것이 뻔한 상황이다.

◆효과 크지 않다는 신중론 제기=물론 보복 조치를 놓고 신중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압박 효과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도리어 일본 측을 자극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뒷받침 근거다. 압박 효과가 크지 않은 것은 일본이 바라봤을 때 한국 자동차 시장이 미국이나 중국 등보다 작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 일본의 자동차 수출은 470만5848대로, 이중 미국과 중국으로 수출은 각각 173만6765대와 20만2155대였다. 같은 기간 한국은 2만9034대 규모였는데, 순위로는 26위에 머물렀다. 물론 한국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보복 조치가 취해졌을 때 아베 정부는 물론 일본 업계에 끼칠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내 시장에 도움 될 것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본산 자동차가 국내 시장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는 것은 하이브리드와 가솔린 차량에 집중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입차 가운데 비교적 가격 경쟁력이 우수해 국산차와 경쟁할 수준인데다, 일부 주행성능과 내구성능은 물론 디자인 측면에서 국산차가 밀리고 있다. 일본산 자동차 수입이 제한을 받는다면 소비자 입장에서 수입차와 국산차를 망라해도 대안을 찾지 못해 차 구입을 망설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일본을 향했지만 부메랑이 돼 일본 브랜드 한국법인과 딜러 소속 국내 고용 근로자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점도 문제다. 일본산 자동차 판매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업체마다 국내 판매·정비 네트워크를 강화해 직간접적으로 고용 근로자가 늘었다. 수입 제한으로 판매가 줄면 이들 근로자 고용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사건 여파로 적지 않은 인력이 정리된 게 비교 가능한 사례다.

이밖에 일본산 제품을 선호하는 국내 소비 풍토도 부정적 요인으로 지목됐다. “동정과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과연 보복 효과를 볼 수 있겠냐”는 업계 한 관계자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정부 차원 대응에 부정적 시선도=일부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아베 정부가 정치적인 입지와 선거 등에 일본 국민의 반한 감정을 이용하기 위해 벌인 일이니 감정적이면서 즉각적인 대응 보다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본산 자동차 판매가 늘었다고 해도 여전히 전체 내수 시장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동차 산업을 보복 카드로 활용하는 것은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에 따라 업계와 시민사회계 일각에서는 “일본이 정치 문제를 경제 문제로 확대시켰다고 해서 우리까지 똑같이 대응할 필요는 없다. 시장에서 확산되고 있는 반일 감정을 자연스럽게 두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나서서 자동차 시장을 건드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는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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