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규 위반하면 보호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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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법규 위반하면 보호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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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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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신문]자동차들이 신호대기 중인 복잡한 건널목에서 주행 신호 변경 후 뒤늦게 진입한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한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져 주목된다.

배심원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에서 "교통신호를 준수했고 오토바이 운전에 관한 업무상 주의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오토바이 운전자와 변호인의 주장이 수용된 것이다.

이번 판결의 요점은 그동안 국민들이 알게 모르게 ‘교통사고에서는 상대적 약자가 우선 보호받는다’ 인식이 잘못됐다는 점이다.

배달원 A(36)씨는 지난해 10월6일 오후 4시께 부산 중구 부평동 편도 2차로 중 1차로로 시속 47.5㎞로 달리고 있었다. A씨는 전방 건널목에 정지 신호가 켜졌으나 멈추지 않고 신호대기 중인 승용차 사이로 차로를 변경하며 계속 달렸다. 그 사이 건널목 신호가 주행 신호로 바뀌었고 A 씨는 그대로 건널목을 지나다 건널목을 횡단하는 B(75·여)씨를 치었다. B 씨는 머리를 심하게 다쳐 3일 뒤 숨졌다. A씨는 속도를 줄이고 보행자가 있는지를 충분히 확인하는 등 안전운전 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사는 "재래시장 근처인 사고 현장이 평소 보행자가 많고 당시 토요일 오후여서 이곳을 자주 지나던 피고인이 무단횡단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운전해야 했다"며 A 씨의 처벌을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주행 신호로 바뀐 지 6초가 지났고 앞선 승용차가 건널목을 지난 뒤 사고가 난 점, 피고인이 1·2차로에 걸친 버스에 가려 건널목으로 진입한 피해자를 발견하기 어려웠던 점 등을 고려하면 '신뢰의 원칙'을 배제할 특별한 사정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에서 ‘신뢰의 원칙’이란 운전자가 주행 신호로 바뀐 건널목에서 보행자가 건너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지 아니할 것까지 예상해 주의 의무를 다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7명도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재판에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자동차든, 오토바이든 법규를 준수할 때 최악의 경우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우선 보호받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반대로 피해 보행자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막연한 ‘약자니까 법이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은 허상이며, 약자도 법규를 어기면 그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다는 냉정한 진리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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