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전략’ 없는 중고차 책임보험, 길 잃고 잡음만 ‘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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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전략’ 없는 중고차 책임보험, 길 잃고 잡음만 ‘무성’
  • 김정규 기자 kjk74@gyotongn.com
  • 승인 202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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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6개월 만에 실효성 ‘위기’…폐지론 힘 실려
‘의무→선택’ 개정안, 시장 혼란에 기름 부은 꼴
이해당사자 모두 ‘당혹’…“보완 없이는 ‘유령보험’”

 

[교통신문 김정규 기자] 중고차성능·상태점검 책임보험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제도 시행 6개월을 넘어서고 있지만 소비자 보상에 중점을 뒀던 제도 취지가 무색해지면서 이해당사자들 간 잡음만 심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중고차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시킨 함진규 의원이 논란을 의식해 ‘의무’를 ‘선택’으로 변경한 법안을 재발의 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자 시장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당장 정부가 나서 제도 수정에 나서지 않는다면 중고차 책임보험이 졸속행정의 본보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먼저 매매업계 양대 사업자단체인 전국·한국매매연합회는 신년 사업 목표로 관련 법안 개정 또는 철폐에 주력할 뜻을 내비치면서 중고차 책임보험 폐지에 힘을 싣고 있다. 해당 보험을 ‘악법’으로 규정, 총력전에 나선다는 게 기본 방침이다.

중고차 책임보험은 자동차관리법 개정으로 지난 6월부터 의무화됐다. 중고차 매매 시 발급된 성능·상태점검기록부 내용과 실제 차량 상태가 달라 소비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보험사가 직접 이를 보상하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벌금 1000만원을 부과한다. 책임보험 대상차량은 원칙적으로 매매업자를 통해 거래되는 모든 중고차량이며, 높은 보험료로 소비자 부담이 예상되는 주행거리 20만km 초과 차량과 중대형 화물차 등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매매업계는 제도 시행 초기부터 문제점을 지적하며 강력 반발해 왔다. 책임보험이 성능점검업자와 보험업계만 배불리는 제도로, 매매업자들이 이중부담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또 주행거리 20만㎞ 초과 차량과 중대형 화물차 등은 중고차 시장의 25%가량 되지만, 책임보험 대상에서 제외해 보험사만 유리하다는 게 주장의 핵심이다.

일선 딜러들도 제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강서매매단지 다수의 딜러들은 “분명 제도가 존재하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소비자들도 그렇고 거래 당사자들 어느 누구도 보험을 말하고 있지 않다”며 “이미 보상이 되고 있는 부분에 추가부담만 늘었을 뿐 현실성이 떨어지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유령보험’ 같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딜러들의 이런 반응은 예견됐었다. 딜러들의 협조 없이는 애초 불가능한 제도였지만 중고차업계와 심도 있는 협의 없이 정부가 제도를 밀어붙이다보니 현재의 상황에 이르렀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함 의원이 제도 시행 3개월 만에 보험을 ‘소비자 선택’으로 돌린다는, 막상 제도 폐지를 의미하는 법안을 발의하자 논란은 더욱 커지며 소관부처인 국토부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현실적 난맥상 때문에 이미 도입된 제도를 폐지할 수는 없기 때문. 현재의 상황은 시행착오적 성격이 짙은 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국토부의 입장이다. 시행 초기 데이터가 불충분해 요율체계가 미흡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충분한 데이터를 축적하면 위험률 산출이 가능해지면서 적정요율을 확보, 과도한 보험료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속내가 깔려있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중고차 책임보험이 의무화된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간 보상 건수는 1632건. 책임보험에 가입한 차량 대수는 12만2467대로 보험 가입 대상 중고차가 100만~120만대 수준임을 감안하면 가입률이 10% 수준에 불과하다.

보험업계도 당혹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애초 발의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시행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보험료 부담이 과도하다는 지적에 대해 “중고차 가격이 높고 노후차량일수록 보험료가 10만원대 후반으로 높아지지만 20만㎞ 이상 주행 차량을 의무보험 가입 대상에서 제외한 만큼 보험료 부담을 낮추기 위한 장치는 충분히 마련했다고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중고차 책임보험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개정안이 지난해 11월 진행된 국토교통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의 안건으로 상정돼 축조심사를 마치고 계류 중이지만 국회의 남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결국 4월 이후 새 국회가 구성되고 쟁점을 보완한 내용의 개정안이 다시 발의되지 않는 한 시장 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가 나서 매매업계를 포함한 협의 테이블을 재구성해 해결책을 조속히 찾아야 한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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