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준운송수입금 없는 택시월급제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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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준운송수입금 없는 택시월급제 가능할까
  • 유희근 기자 sempre@gyotongn.com
  • 승인 202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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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신문 유희근 기자] “저도 여기서 일하기 전에는 기준운송수입금이 무조건 나쁜 건 줄 알았는데...”

지역 택시 단체에서 일하는 A씨는 기준운송수입금, 일명 사납금제와 관련해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에 따라 올해 전액관리제를 시작으로 내년 서울 등 주요 대도시에서 택시 월급제가 도입되는 가운데 지난해 선도적으로 월급제 택시를 시작했는데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A씨 단체가 도입한 월급제 택시는 대형 승합차로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 택시 서비스였다. 고정 기본급 200만원대에 인센티브를 포함하면 300만원 이상 급여를 가져갈 수 있어 인력난을 겪고 있는 일반 택시와 달리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하지만 이후 펼쳐진 현실은 장밋빛 예상과 달랐다. A씨에 따르면, 초반에는 운수종사자가 예약콜과 함께 일반택시 영업도 성실히 수행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실운행률이 떨어지면서 이제는 하루에 예약콜 2~3건을 제외하면 거의 운행 실적이 없게 됐다.

A씨는 “운수종사자간 단체 채팅방이 만들어지면서 그곳에서 최소한으로 일할 수 있는 노하우들이 공유되기 시작했다”며 “이제는 전체 운수종사자 중 1/4 정도만 제대로 근무하고 있다 회사는 월급제로 고정적으로 급여를 줘야하는데 손해가 발생해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1일부터 시행된 전액관리제 규정을 놓고 업계 현장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액관리제는 택시월급제를 도입하기 앞서 반드시 시행해야하는 제도다. 업계 투명성 강화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승객이 택시를 이용하고 지불하는 요금에는 부가세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준운송수입금의 초과분은 공식적으로 ‘수입’에 잡히지 않아 운수종사자가 모두 가져가면 그만이었다. 국가 세수 차원에서 보면 그만큼 탈세가 이뤄지는 것이다. 물론 이는 초과분까지 임금으로 잡을 경우 4대 보험 및 퇴직금 등의 부담이 높아지는 것을 고려한 회사와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 생긴 관례였다.

이번 전액관리제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정부가 어떤 형태든 일정 금액의 운송수입금 기준액을 정하는 임금 체계는 사실상 불법으로 보겠다고 한 데에 있다. 앞으로 각 시·도 지자체도 이 같은 지침을 기준으로 위반 업체에 대해 행정처분을 내린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현장에서는 애초 기준액을 미달하는 경우 공제하기로 했던 상여금과 승무수당에 관한 임금 지급 방침을 달성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하도록 수정하는 등 크고 작은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정부가 통보한 전액관리제 지침은 크게 운송수입금 기준액 설정에 관한 부분과 수납 관련 부분으로 ,‘~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부정문이 수 차례 이어진다. 반대로 그러면 어떻게 임금 체계를 만들어 지급해야한다는 설명은 단 한 줄로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정부는 택시 운행 경로 및 수입금 등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는 운행정보관리시스템(TIMS) 보급이 전국적으로 확대됐다는 이유 등으로 전액관리제 및 택시월급제 도입 기반이 갖춰졌다고 판단할 뿐이다.

그렇다면 기준운송수입금 없는 택시월급제는 가능할까.

지난해 3월 정부가 완전한 월급제 택시라고 상찬해 마지 않았던 웨이고 블루(현 카카오T 블루)또한 월 500만원의 기준금을 정해 놓고 초과금에 대해서는 5:5를 배분하는 지급 기준을 마련했었다. ‘실적에 따라 정액급여를 삭감하면 안되며, 일정 기준에 초과분의 일부 또는 전부를 성과급여 등의 명목으로 되돌려주는 방식은 불가하다’는 이번 국토부 지침에 의하면 웨이고 블루 또한 위반 사항이 나올 수 있는 모순이 발생한다.

올해 시무식에서 이낙연 전 총리가 공직자에게 당부한 세 가지는 정책의 정합성, 수용성, 실행력이다. 이 중 정합성은 정책 내부에 모순이나 충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고, 수용성은 현장에서 그리고 정책을 이행하는 각 단계에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운수종사자 처우 개선 및 택시 산업 양성화 등 정책의 선의를 내세우기 앞서 업계 현실을 좀 더 세밀하게 살피고 같이 머리를 맞대야 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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