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어린이 보호구역의 교통정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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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어린이 보호구역의 교통정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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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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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 박사의 교통안전노트

[교통신문]지난해 우리 사회 전체를 뜨겁게 달구었던 교통분야의 법안이 있다. 고 김민식 군의 이름을 딴 ‘민식이법’이 그것이다. 어린이 보호구역 내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김민식 군의 안타까운 죽음이 온라인과 방송을 통해 퍼져나갔고, 어린이 보호구역 내 안전규정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관련 법 개정에 이르게 되었다. ‘도로교통법 개정법률안’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법률안’이 2019년 12월24일 국회를 통과했고 2020년 3월25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법률안’은 운전자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해야할 의무를 위반해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했을 때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동일한 과실요건임에도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너무 과하게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비례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위헌성 논란이 있다. 또한 보호구역을 조금이라도 벗어난 통학로에서 신호위반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로 어린이가 사망했을 때에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 적용돼 5년 이하의 금고형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처해진다는 점에서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추후 이러한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입법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법 개정과 함께 정부는 올해 1월7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첫 국무회의에서 어린이 보호구역 교통안전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에 따르면 전국의 모든 어린이 보호구역에 무인교통단속장비와 신호등의 설치를 완료할 계획이다. 올해에만 교통사고 우려가 큰 지역에 무인교통단속장비 1500대, 신호등 2200개를 우선 설치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안전한 어린이 통학로 사업을 시행하되 물리적으로 공간 확보가 안 되는 경우에는 제한속도를 30km/h에서 20km/h 이하로 낮추고 보행자에게 통행우선권을 부여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과속방지턱과 같은 기존 안전시설을 보완하는 등 어린이 보호구역 정비 표준모델의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법제도적 측면과 시설적 측면에서 완벽하게 정비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각종 시설과 장비를 잔뜩 설치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원래 어린이의 활동성을 촉진하는 어린이 보호구역과 같은 공간은 교통규칙에 구애받지 않고 어린이의 행동오류를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교통여건 상 불가피성은 인정되지만 보행자(어린이)와 차량을 분리시키면 어린이의 행동오류도 차단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어린이 보호구역이 만들어졌다. 그러다보니 이 제도를 도입할 때부터 어린이 보호구역은 오히려 차량 중심의 공간으로 변질됐다. 예컨대, 어린이 보호구역에 횡단을 억제하는 방호울타리, 중앙분리대 등 안전시설이 들어서면서 역설적으로 자동차는 안심하고 속도를 내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어린이의 무단횡단을 막기 위한 안전시설이 자동차를 위한 안전시설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의 횡단 특성은 특정 지점이 아닌 무작위(면단위)로 발생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는 언제, 어디서든 횡단할 수 있는 통행우선권을 보장했어야 했다. 어린이 보호구역에 안전표지나 노면표시, 보행자 신호등만으로는 어린이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이유다. 선진국에서는 학교부근이나 통학로에 횡단보도 노면표시조차 설치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히려 어린이가 언제, 어디서든 차도를 쉽게 횡단할 수 있도록 차로 수와 폭을 축소하고 차도와 보도간 단차 제거 및 강제적 속도억제시설을 먼저 설치하고 있다.

특히 방호울타리와 삼각교통섬의 설치는 자동차의 통행우선권 및 도류화를 부각하는 시설물로 어린이 안전에는 역효과가 있다. 어린이 보호구역을 처음 설치할 때부터 교통정온화(Traffic Calming)기법을 적용했으면 지금처럼 무인단속카메라에 신호등 설치와 방호울타리, 중앙분리대에 과속방지턱 같은 시설과 장비를 다 동원되지 않아도 된다. 자동차가 속도를 낼 수 있도록 각종 시설을 설치했다가 그 시설은 그대로 둔 채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다른 시설·장비로 덧칠하는 꼴이 된 것이다.

어린이 보호구역 안전대책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어린이·노인·장애인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을 교통정온화 지침의 설치기준에 맞게 점진적으로 보완을 하고, 몇 개의 학교를 선정해서라도 시범적으로 교통정온화 기법으로 차로수와 폭의 축소를 포함한 시설개선을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린이 보호구역은 교통정온화로 가는 게 맞다.

또한 많은 나라들이 30존 지정 시 통과차량의 최고속도가 시속 30km를 초과할 가능성에 대한 실태조사와 더불어 30존이 지정되고 1년 경과 후에는 사고감소 효과에 대한 사후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어린이 보호구역을 포함한 통학로 교통안전점검을 제도화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부분의 어린이 보호구역은 설치만 되어 있을 뿐 유지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아 상당히 노후화 되어 있고 시설 자체도 천편일률적으로 설치되어 있다. 해당 시설의 교통여건과 어린이들의 통학 패턴에 맞게 개선을 하고, 방치되지 않고 계속하여 유지보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어린이가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건널 수 있고, 더 이상 어린이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교통사고 제로 지역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객원논설위원·강동수 한국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연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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