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에 충돌당한 승용차가 보행자 덮친 사고 두 운전자 '민식이법' 적용 여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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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에 충돌당한 승용차가 보행자 덮친 사고 두 운전자 '민식이법' 적용 여부 주목
  • 박종욱 기자 pjw2cj@gyotongn.com
  • 승인 2020.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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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좌회전으로 승용차의 보행자 충격
‘가능성 예상’ 인정돼야 형사처벌 가능

 

[교통신문 박종욱 기자] 스쿨존에서 불법 좌회전 차량에 충돌 당한 승용차가 보행로를 침범해 6세 아동을 치어 숨지게 한 '부산 스쿨존 사망사고' 사건에 이른바 민식이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어린이가 다치거나 사망한 스쿨존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를 가중처벌하는 법이 이번처럼 복잡한 사고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주목되는 것이다.
민식이법을 적용해 사고를 낸 두 차량 운전자를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분석과 사고 당시 차량 속도, 브레이크 제동 여부 등을 감식해 사고 운전자들에게 민식이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차량 간 교통사고와 차량의 보행자 충돌 사고가 복잡하게 얽힌 사고인 만큼 민식이법을 적용하기 위해선 사고의 원인과 두 운전자의 형사책임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어린이 사망사고는 스쿨존 내에서 불법으로 중앙선을 침범해 좌회전하던 SUV 차량이 정상적으로 직진하던 승용차를 들이받은 것에서 비롯됐다.
이 충돌로 중심을 잃은 승용차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내리막길을 따라 갑자기 가속했고, 결국 사고 지점에서 20m 떨어진 보행로를 침범해 걸어가던 어린이를 덮친 것(사진 사고 현장)으로 확인됐다.
우선 어린이를 직접 충격해 숨지게 한 승용차 운전자에게 민식이법 위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불법 좌회전 차량과 부딪힌 지점에서 20m 떨어진 보행로로 질주해 사망사고를 낸 과정에서 '안전운전의무'를 이행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승용차 운전자가 경찰 조사과정에서 '접촉사고 이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안전운전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법적 평가를 내릴 수 있을지 불투명해 보인다.
불법 좌회전 차량과의 충돌로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을 밟아 질주한 것으로 밝혀지면 형사법상 법 위반 행위를 행위자의 책임으로 귀속시킬 수 있는 '행위 지배력'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정신을 잃은 정도는 아니지만 충돌사고 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운전 미숙으로 가속페달을 잘못 밟은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마찬가지로 안전운전의무를 위반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이 역시 운전자가 법 위반 행위를 '지배'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사건 전문인 정경일 법무법인 L&L(엘앤엘) 대표변호사는 "1차 충돌사고 후 승용차 운전자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밟았거나, 승용차 운전자가 충돌사고에 당황해 가속페달을 잘못 밟아 어린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면 이를 승용차 운전자의 책임으로 돌리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사망사고가 발생한 보행로에 설치된 현수막 때문에 승용차 운전자가 피해자를 발견하기 어려웠다는 사정까지 확인되면 민식이법 적용은 더욱 어려워진다.
해당 보행로에 설치된 난간에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 등을 당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는데, 어린이들이 이 현수막에 가려 운전자가 발견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승용차 운전자에게 민식이법을 적용할 수 없다면, 애초 불법 좌회전으로 연쇄 사고를 유발한 SUV 운전자에게 그것을 적용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숨진 어린이를 직접 충격하진 않은 SUV 운전자에게 민식이법 위반 책임을 묻기 위해선 불법 좌회전 행위와 어린이 사망 사이에 형사법상 인과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또 불법 좌회전으로 직진 중인 승용차와 부딪힐 수 있고, 이로 인해 승용차가 보행로를 덮쳐 보행자를 다치거나 숨지게 할 수 있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던 것으로 인정돼야 한다.
최초 차량간 사고와, 보행 중이던 어린이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과거 법원의 판단 사례로 유추할 수 있다.
기존 법원 판결은 가해 차량이 과실로 다른 차량을 충돌했고, 이 때문에 피해 차량이 인도를 침범해 보행자에게 상해를 입혔다면 가해 차량의 과실과 보행자의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판단한다.
서울중앙지법은 2015년 2월 "가해자 차량이 교차로에서 진로를 변경해 A차량을 충격하고, 이에 A차량이 B차량을 충격하고 이러한 연쇄충돌로 인해 B차량이 보도를 침범해 보행자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이므로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비록 대법원이 "교차로에서의 진로변경은 도로교통법 위반이 아니다"라며 최종 무죄판단을 내렸지만, 연쇄적으로 발생한 교통사고에서 운전자의 최초 사고와 최종 사고결과 간에 인과관계를 인정한 당시 법원의 판단은 이번 사건에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 SUV 운전자가 자신의 불법 좌회전으로 연쇄 충돌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승용차가 보행로를 침범해 어린이가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할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통상 법원은 충돌사고로 상대방 차량이 튕겨 나가 보행로를 침범해 추가사고가 발생한 경우에 최초 사고를 유발한 운전자에게 예견 가능성을 인정해 형사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SUV와 승용차 간 충돌이 비교적 가벼운 접촉사고 수준이었고, 충돌사고를 당한 상대방 차량 운전자가 갑작스레 가속페달을 밟아 보행로로 돌진하는 등의 상황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어서 예측 가능성이 있었다고 판단할지 미지수다.
정 대표변호사는 "SUV 운전자가 자신의 불법 좌회전으로 승용차 운전자의 보행로 침범 및 보행자 충격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고 인정돼야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경찰의 조사결과가 명확히 나와야 예견 가능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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