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인식에의 부합성, 실정법 위반 여부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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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인식에의 부합성, 실정법 위반 여부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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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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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 막은 택시’로 보는 ‘비뚤어진 사회상’
택시운전직에 대한 불필요한 여론 경계해야
승객이 기사 폭행하고 처벌받은 사례 더 많아

‘구급차 막은 택시’ 문제가 엄청난 파장을 부르며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다.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싣고 달리던 사설 구급차가 앞서 달리던 택시와 접촉사고를 일으켰는데, 택시 기사가 사건 처리를 요구하며 구급차의 앞길을 막아서는 바람에 구급차의 병원행이 늦어져 환자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청와대 민원으로 올라오며 촉발됐다. 이 민원은 6일 현재 민원건수가 50만건을 돌파했고,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악화된 여론으로 택시 기사가 처벌을 받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주문하고 있다. 만약 택시 기사를 처벌한다면 법적 근거가 명확해야 하고, 무엇보다 직업인으로써의 택시 운전자에 대한 불필요한 여론 확대 재생산을 경계하고 있다. 실제 이 같은 사례는 ‘비뚤어진 사회상’의 단면일 뿐 택시운전이라는 직업과는 상관이 없다. 다만 이 사고 당시 택시 기사의 행위가 우리 사회 보편적 인식의 기준에 부합하는지의 여부와 함께, 실정법 위반 여부는 엄중히 따져봐야 한다.

반대로 택시 기사가 승객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인격적 모독을 입은 사례도 많다. 이 경우 가해 승객의 직업이 문제가 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택시와 관련된 사건사고가 택시에 관한 법령 또는 도로교통법령 위반 여부가 문제의 핵심이기에 그 외 대부분의 시비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요금 문제로 택시 기사에게 동전을 퍼붓고 흉기를 찔러 살해한 사람이나, 택시 기사와의 시비 끝에 막무가내로 폭행한 승객의 문제를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최근 일어난 택시 관련 주요 사고와 범죄, 재판 결과 등을 엮어본다.

◇요금 시비로 택시에 동전 쏟아붓고

창원지법 형사2부(이정현 부장판사)는 요금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다 택시기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살인)로 재판에 넘겨진 A(68)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내렸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2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한 아파트 앞에서 요금을 내지 않아 택시기사 B(63)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주거지에서 동전이 들어있는 맥주잔을 들고 와 조수석에 쏟아부은 뒤 빈 잔을 집어던졌다.

이에 화가 난 B씨와 재차 실랑이를 벌이다 갖고 있던 흉기로 B씨를 수차례 찔러 숨지게 했다. 재판부는 "뚜렷한 동기를 찾기 어려움에도 흉기를 휘둘러 피해자를 살해하고 범행에 대한 진지한 반성도 보이지 않았다"며 "동기나 그 정황을 살펴봤을 때 살인을 다시 범할 위험이 있어 전자발찌 부착을 명한다"고 판시했다.


◇“어떤 길로…" 택시기사 물음에 욕설 폭행

술에 취해 택시 기사에게 욕설과 폭행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승객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김창형 부장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운전자 폭행 등) 혐의로 기소된 A(45)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3월 서울 관악구 한 도로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택시에 탑승해 택시 운전사 B씨가 "어떤 경로로 갈까요"라고 묻자 "네 마음대로 가지 그런 것까지 물어보냐"고 말하며 욕설을 한 혐의를 받는다. 이에 B씨가 항의하자 A씨는 운전 중이던 B씨의 옷깃을 잡아채고, 택시가 갓길에 정차한 뒤에는 먼저 내려 B씨가 하차하지 못하도록 운전석 문을 강하게 닫아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는 운전자 개인의 신체에 대한 위법한 침해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행자나 다른 차량 등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자칫 대규모 인명피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그 행위의 위험성과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해자가 합의해 선처를 바라고 있는 데다, 피고인은 어려서부터 홀로 사회에 나와 가족의 도움을 얻지 못하고 자립해 생활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술에 취하면 폭력을 행사하는 습벽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콜택시 불러놓고 안 타고,따진 기사 폭행

콜택시를 불러놓고는 승차를 거부하고, 이를 따진 택시기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쓰고 있던 안경이 부러지고, 치아와 목 등을 다친 택시기사는 "다시 운전대를 잡기가 겁이 난다"며 가해자를 엄벌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강원 원주에서 개인택시를 모는 김모(70)씨는 지난 25일 오후 7시께 콜택시 앱을 통해 단계동 한 일식당 인근으로 호출을 받았다. 하지만 김씨가 도착한 곳에 승객은 보이지 않았고, 식당 직원으로부터 택시를 호출한 손님 중 한명이 장애가 있어 거동이 불편하니 기다려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식당 인근 골목길이 좁은 탓에 정차 상태로 기다릴 수 없었던 김씨가 차를 가게와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뺐다가 다시 가까이 대기를 수차례.

마침내 나온 두 사람 중 장애인을 부축한 60대로 보이는 손님 A씨는 별다른 이유 없이 승차를 거부했다. 김씨가 "안 타시려면 진작에 말씀해주시지. 한참 기다렸는데 이러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자 처음에는 "미안하다"고 했던 A씨는 "서비스업이 이러면 되느냐"며 화를 냈다. 사소한 말다툼은 곧 폭행으로 이어졌다. 때릴 것처럼 주먹을 올린 A씨를 김씨가 밀어내고 자리를 뜨려 하자 A씨는 김씨에게 욕설과 함께 폭행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A씨는 차에 탄 김씨를 쫓아가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렸다. A씨의 폭행은 주변인들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한 뒤에야 끝이 났다.

이 사건으로 김씨는 치아 2개가 흔들리고, 목과 어깨 등을 다쳐 전치 2주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쓰고 있던 안경도 A씨가 휘두른 주먹에 날아가 렌즈가 깨지고, 테가 부러졌다. 김씨는 "A씨가 술에 취했는지 돌멩이나 던질 것들을 찾으며 '때려죽이겠다'라고 했다"며 "주변 사람들이 말려서 덜 다친 것"이라고 말했다. 40년 가까이 택시를 몰며 취객으로부터 욕설을 들은 적은 있지만, 폭행을 당한 일은 처음이라는 그는 "술 먹은 사람들을 태우기가 겁이 난다"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김씨는 "모든 택시기사가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가해자를 엄벌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경찰은 조만간 피해자와 가해자를 불러 사건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구급차 막은 택시' 사건 수사 강화

폭력을 행사한 승객을 처벌하라고 집단 시위에 나선 원주 택시들.
폭력을 행사한 승객을 처벌하라고 집단 시위에 나선 원주 택시들.

 

구급차를 막아선 택시 탓에 응급환자가 사망했다는 주장의 파문이 커지자 경찰이 수사를 강화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강동경찰서 교통과가 수사 중인 이 사건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외에 형사법 위반과도 관련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 같은 경찰서 형사과 강력팀 1곳을 추가로 투입했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강동서 교통과 소속인 교통사고조사팀과 교통범죄수사팀이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다. 교통과와 형사과의 합동 조사 결과에 따라 택시 기사는 엄중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시작된 '응급환자가 있는 구급차를 막아 세운 택시 기사를 처벌해 주세요' 청원에는 6일 현재 50만명이 동의했다.

‘구급차 막은 택시’ 피해자 ‘김씨’가 사건 현장을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는 장면이 공개된 유튜브 영상.
‘구급차 막은 택시’ 피해자 ‘김씨’가 사건 현장을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는 장면이 공개된 유튜브 영상.

 

청원을 올린 김모(46) 씨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달 8일 오후 3시 15분께 서울 강동구 지하철 5호선 고덕역 인근 한 도로에서 발생했다. 김씨는 "폐암 4기 환자인 80세 어머님이 호흡에 어려움을 겪고, 통증을 호소해서 사설 구급차에 모시고 응급실로 가던 중이었다"며 "차선을 바꾸다가 택시와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그런데 택시 기사가 사건 처리를 요구하며 구급차 앞을 막아섰다. 구급차 운전자가 "응급환자가 있으니 우선 병원에 모셔다드리자"고 했지만 택시기사는 반말로 "사건 처리가 먼저다. 환자가 사망하면 내가 책임지겠다"라며 막무가내였다고 한다. 약 10분간 실랑이 끝에 김씨는 어머니를 119 신고로 도착한 다른 구급차에 옮겨 태워 한 대학병원에 이송됐다. 그러나 김씨의 어머니는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그날 오후 9시께 응급실에서 숨을 거뒀다.

박종욱 기자 pjw2cj@gyotong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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