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도전 나선 ‘생물법’, 국회 문턱 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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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도전 나선 ‘생물법’, 국회 문턱 넘나
  • 이재인 기자 koderi@gyotongn.com
  • 승인 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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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법안’ 이라 부르고 ‘공정경쟁’ 균열 조장
“‘자유 시장 경제’ 통제하려는 선 넘은 조치”
택배업계 ‘갑론을박’ 쇄도···사업자 분쟁 가열

 

[교통신문 이재인 기자] 자동 폐기됐던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안(생물법)이 올해 새로 출범한 21대 국회의 재검토를 앞두고 있다. 여야의 정치 공방이 지속되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20대 국회에서 폐기된 바 있는 이 법을, 압도적 의석수를 보유한 여당(더불어민주당)이 지지하고 있고,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청와대까지 가세해 ‘민생법안’ 임을 강조하며 법 제도 실행 가능성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관련 법안은 이전 국회에 발의됐던 내용과 동일하다. 사용자(▲택배회사 ▲본사와 계약된 영업 대리점 ▲지점과 계약된 지역 운송사 등)가 공급하는 일감(배송물량)과 집배송 활동능력과 관계없이 택배기사의 계약기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게 법안에 포함됐다.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의 노동력 부담을 줄인다는 내용은 정확하게 명시돼 있지 않으나, 이들의 근로여건과 환경조건을 개선한다는 목표는 명확하다. 법안과 관련해 택배시장 내부의 입장 차는 극명하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 등 위탁 배송원 창구에서는 “근로시간 단축과 요금인상을 통해 택배노동자의 권익보호와 삶의 질 개선”을 골자로 법안의 필요성을 주창하고 있는 반면, 이들과 동일하게 개인사업자로서 활동 중인 택배영업 대리점과 지역 화물운송사, 원청 법인 택배사들은 “시장 참여자의 형평성을 위배한 그들만을 위한 법안”이라며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시작된 ‘시장균열’
20대 국회에서 생물법이 폐기되면서 참여자간 관계회복과 택배시장 안정화를 위한 다양한 조치가 취해졌다. 후속대책으로 마련된 택배서비스 발전방안의 현장 적용이 속개됐는가 하면, 계약당사자간 공정거래를 유도하는 제도장치가 정부로부터 제시됐다. 가이드라인에 맞춰 노동력을 공급하는 ▲택배기사(개인사업자) ▲지역 물량을 배분하는 대리점‧운송사(개인사업자) ▲일감을 공급하는 택배회사(법인사업자)간 협력관계를 담보하는 방향으로 개선 절차를 밟게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정부가 제시한 표준계약서에 맞춰 계약갱신이 이뤄졌고, 위탁 배송원들의 요구대로 ‘택배 없는 날(8.14)’이 수용되면서 서비스 출시 이래 유례없는 하계휴가가 첫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렇듯 법안 폐기로 대립각을 세웠던 이해당사자간 갈등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영업용 택배차량의 증차 및 관리방안 등 생물법을 둘러싼 각종 루머와 잡음이 사그라들면서 택배시장은 안정세를 찾아가는 듯 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택배시장은, 21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다시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제도신설 목적과 추진배경, 발의자까지 종전과 동일한 생물법안이 재차 국회 문을 두드린 것이다. 문제는 참여자간 갈등이 봉합 수순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또 다시 시장 흔들기에 나섰다. 입법발의가 행해지면서, 앞서 조율 과정을 통해 최대한 협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쳤던 택배노조는, 예전과 동일한 논리를 앞세워 생물법안 신설을 다시금 촉구하고 있고, 이에 반대하는 택배기사를 비롯해 이들과 같은 처지의 개인사업자인 영업 대리점과 지역 운송사들은 관련법안을 두고 대치 국면으로 맞서고 있다.  

때문에 입법취지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비판도 거세다. 산업성장을 위한 진정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택배시장의 여론과 의견수렴에 근거한 법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러한 절차 없이 편향된 내용으로 입법이 반복됐다는 이유에서다.  

 

★정치 먹잇감 된 ‘생물법’
“‘민생법안’ 슬로건 아래 추진된 생물법은, 이슈를 위한 정치선전의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2022년을 목표로 정부 가이드라인에 맞춰 택배시장에 대한 수술이 진행 중인데, 관련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는 시점에서 국회가 생물법 신설 카드를 검토한다는 것은 정부의 후속조치를 기만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택배업계는 지난 6월 입법 발의된 생물법과 관련해, 정치적 이해관계와 성과주의식 의정활동에 의한 그릇된 처방인 점을 지적하며, 택배시장의 양극화와 종사자 편가르기 선동에 따른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한 달 전 당정청으로부터 택배기사 등 특수형태근로 종사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이들 개인사업자들과 계약한 사업주와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방지한다는 취지 아래 안전장치를 실행하겠다는 입장 발표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별개로 생물법안의 입법발의가 사전예고 없이 단기간에 취해졌다는 점에서다.

앞서 당정청은 특수형태근로 종사자의 표준계약서 보급 확대 및 산재보험 적용 직종을 확대키로 하고,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한 골목형 상점가 지정기준 마련, ▲민관합동 자율사업조정협의회 도입, ▲생계형 적합업종법상 의무이행 확보수단 마련, ▲가맹·대래점 분야 표준계약서 도입업종 확대, ▲가맹분야 현장밀착형 종합지원 체계 마련, ▲대리점 분야 불공정거래행위 판단기준 마련 등 6개 이행과제를 확정했다.

택배업계는 “당정청이 제시한 대책안이 실행되기도 전에 종전의 생물법이 다시 발의됐다는 것은 다수로부터 공감을 받지 못할뿐더러, 택배 서비스 종사자의 분열을 조장하고 범정부차원에서 주문한 첨단물류, 디지털물류로의 전환에 따른 산업 고도화를 저해하는 행위”라며 비판했다.

법안 발의자인 박홍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보도자료를 통해 “코로나19 관련 사회적 거리두기, 비대면 거래가 확대, 모바일 발달 등으로 택배시장의 성장세는 유지되고 있으나, 시장을 관리할 수 있는 법 제도는 부재 중”이라면서 “배송기사가 과로사 하는 등 안전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택배시장의 질적 개선을 위해 제도적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며 입법 추진 배경을 제시했다.

★반복되는 생물법 ‘찬-반’ 논리
발의된 생물법안 내용은 종전의 입법안과 다르지 않다. ▲택배사업자와 종사자 간 안정적 계약 유도(계약 갱신 청구권 6년 보장) ▲택배운전종사자의 자격 요건 규정 ▲택배서비스사업자의 업무 위탁과 영업점 관리 ▲부정한 대가의 지급 및 수취를 금지하는 장치 도입(백마진 금지) ▲종사자 보호, 안전운행, 서비스 개선을 위한 조치(휴식보장) 등이다.

때문에 법안을 두고 찬반 진영 논리 역시 과거 행해졌던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택배노조 등 생물법안을 찬성하는 개인사업자들은, 택배산업의 급속한 발전, 시장규모 확대, 국민생활과 직결된 필수적인 산업분야로 정착된 반면, 그에 대한 제도는 미비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법 제도의 부재로 택배기사의 과로사, 택배 터미널 위탁 노동자 감전사 등의 사고가 재발하고 있기에 근로시간과 노동 강도를 줄이면서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실수입은 물가에 비례해 보전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할 것이다.

무엇보다 택배기사의 활동수준은 문전배송 서비스 질적 향상과 직결되는 점을 강조, “다양한 개선사항을 정부에 건의한다 하더라도, 관련 내용의 타당성과 기대효과를 평가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없어 무산되는 게 현실”이라며 실효성 문제를 부각시킬 가능성이 상당하다. 

한편, 생물법안 반대 입장의 진영에서는 참여자의 ‘형평성’과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시장논리’로 결집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택배회사-영업 대리점-지역 운송사-택배기사’ 모두 독립된 사업주이며, 상호 계약에 의해 일감을 공급하고 노동력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시장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중 택배기사만을 보호한다는 취지의 법적 장치를 검토‧추진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반박이 담겨 있다.

예컨대 문전배송 업무에 영업용 개인화물 차량(번호판 아사자바)과 집배송 전용 택배차(번호판 배)가 함께 투입되고 있는데, 입법안은 배 번호판 차주인 택배기사의 권익에만 무게를 두고 있다. 같은 개인사업자인 영업 대리점주는 택배기사를 위해 산재보험 등 금전적 관리부담을 져야 하고, 지역 협력업체 운송사 역시 택배기사의 권익보호 차원에서 능력여부와 관계없이 계약을 유지해야만 하는 역차별이 발생하게 된다.

무엇보다, 시장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소비자와의 합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반론의 여지가 충분하다. 택배노조 등 노동계가 주창하는 처우개선이 실현되려면, 이들 위탁 배송원과 계약한 사용자의 책임과 비용부담이 늘게 되는데, 이 부분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요금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셈법이 작용하게 된다.

코로나19로 ‘택배’가 차지하는 비중과 파급력이 상당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와 종사자 모두의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가계부담을 수반하는 생물법 실행은 역풍을 초래할 것이란 진단이다. 

정부가 대국민 생활편의 서비스로 ‘택배’를 지목한 만큼, 소비자와 서비스 공급자, 시장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는 법 제도적 조치는 후폭풍은 물론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기에 이해당사자간 입장 조율을 거치는 게 합리적 판단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재인 기자 koderi@gyotong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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