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손님을 피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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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손님을 피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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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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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욱(교통칼럼니스트, 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운수 종사자는 대표적인 감정노동자다. 감정 노동은 서비스 업종의 현장에서 직간접적으로 고객을 대면하면서 말투나 표정, 몸짓 등 하나하나의 감정 표현이 업무의 중요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는 고달픈 직업이다. 자신의 감정보다 고객의 기분이 우선이다. 이런 연유로 고객은 영원한 ‘갑’이고, 감정노동자는 영원한 ‘을’일 수밖에 없다.

감정 노동이라 하더라도 음식점이나 유흥업 등 자유업은 영업의 필요에 따라 진상 손님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교통은 국가에서 보호와 지원을 받고 시민들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어 진상 손님이라도 거부하기 어렵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26조는 운수종사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승차를 거부하거나 중도에 내리게 해서는 안 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운전자는 물론 사업주도 과태료와 영업정지 등 처벌을 받도록 하고 있다. 진상 손님이라고 잘못 응대했다가는 법 위반으로 과태료를 물거나 회사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진상 손님은 폭행이나 폭언, 주취 소란을 일으키는 꼴불견 승객이다. 왜 유독 버스나 택시에 이런 진상 손님이 많은 걸까? 항공이나 철도는 항공보안법(제23조)과 철도안전법(제78조)에 의하여 근무자에게 폭언, 폭행이나 고성방가 등 소란행위로 업무를 방해하는 승객에 대해 모두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게 되어있다.

버스나 택시의 경우 운전자를 폭행할 경우에 한해 특가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단순 폭행보다 무거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지만, 항공이나 철도와 달리 폭언이나 주취 소란에 대한 처벌 근거가 없다.

버스나 택시 운전자는 관련 법이나 정부 방침에 따라 위험한 물건이나 악취 물품, 애완동물, 포장 안 된 음식이나 음료를 갖고 타거나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등 안전 운행을 위해 이를 제지하도록 여러 가지 준수 사항을 규정해 놓고 있지만 운행 중에 마땅한 제지 방법이 없어 승객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운수종사자의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건강 문제는 산업재해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고객으로부터 폭력이나 폭언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업무상 질병의 한 요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는 사업주는 고객의 폭언 등으로 근로자의 건강장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업무의 일시적 중단이나 전환 등 필요한 예방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영원히 ‘을’일 수밖에 없는 운전자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진상 손님을 거부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피할 수 있는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2014년 국회 심상정 의원실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은 폭언이나 폭행, 성희롱을 하는 진상 고객에 대해 서비스를 중단해야 한다고 응답하고 있다.

안전 운행에 방해가 되는 진상 승객의 폭언이나 주취 소란 등에 대한 분명한 처벌 근거를 마련하고, 운전자와 승객의 불필요한 마찰을 줄일 수 있는 현장의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데 사업주와 당국이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대중교통 승차 시 마스크 미착용 승객에 대한 처벌 강화와 시민 신고제를 도입한 서울시의 노력은 칭찬받을 만하다.

 많은 시민들은 버스나 택시 운전자들의 불친절한 서비스에 대해 불만이 많다. 하지만 운전자들 역시 가끔 맞닥뜨리는 진상 손님 때문에 울화통이 터진다. 진상 손님을 피할 권리는 운전자와 승객 모두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한쪽의 친절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갑’인 승객의 성찰도 있어야 한다. 

강상욱(교통칼럼니스트, 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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