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여버린 정부의 택배 안정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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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여버린 정부의 택배 안정화 정책
  • 이재인 기자 koderi@gyotongn.com
  • 승인 2021.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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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자 보호 개선 대책, 인력충원 비용 조달 ‘부재중’

‘사회적 합의기구’ 중재안 빠진 ‘인건비’…첫 단추부터 핵심 놓쳐

‘택배비 인상’ 임금 보전? ‘정부 보조금’ 손실 충당?

[교통신문 이재인 기자] 택배 현장 인력 보호를 골자로 한 정부의 택배 안정화 정책이 다시 한 번 난관에 부딪혔다.

민‧관 협의체인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계약당사자(택배회사-영업대리점-택배노조)간 집배송 택배의 분류전담반을 편성‧운영하기로 확정하면서 일단락된 듯 했으나, 이를 실행하는데 있어 충원 인력의 비용 부담을 두고 각기 다른 입장을 드러내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비용 지불건과 관련해서는 3자 모두 서로 다른 논리로 책임론을 주장하면서, 금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시에는 단계별 서비스 축소 및 중단이 불가피 하다고 맞서고 있다.

검토선상에 올라 있는 대안을 보면, 택배 요금 현실화를 통해 인상분을 분류인력에게 환원하는 일안이 있고, 택배가 대국민 편익 서비스 범주에 포함돼 있는 점을 감안해 정부가 충당금 일부를 지원‧보조하는 방식의 차선책으로 좁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정은 이 문제를 두고 택배회사, 영업대리점, 택배노조와 합의점을 조율 중이며,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 설 명절 특수기 택배 파업을 저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인력충원 OK, 비용책임은?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3자는 택배기사는 ‘집배송’을, 충원인력은 ‘분류작업’을 전담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택배사들은 분류작업에 추가 배치될 인력 채용 계획안을 확정했고, 당초 3월 완료를 목표했던 수급 일정을 설 명절 특수기에 대비해 앞당겨 진행 중에 있다.

업체별 보고된 수치는 CJ대한통운 4000명, 롯데택배 1000명, 한진택배 1000명이다.

이들 업체들은 정부에 보고한 인원수를 투입한 이후에는 별도 충원은 없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업체들은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확정된 내용인 만큼, 분류인력을 요구한 택배노조는 택배회사가 조치한 충원 내용을 인정해야 하며, 이외 추가 인력을 필요로 할 시에는 이용자부담원칙에 따라 개개인의 택배기사가 사용한 값을 분담해 노동력을 수급하는 방식으로 자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노조는 ‘배송기사에게 분류작업을 전가하지 아니 한다’라는 택배회사의 입장을 반기면서도, 일회성이 아닌 반영구적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면서 맞서고 있다.

앞서 파업이 예고됐던 지난달 27일, 택배노조는 “택배회사가 제시한 계획안은 지난해 10월 확정한 것으로 사회적 합의문에 명시된 대로 택배 노동자 개인별 택배 분류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라면서 “택배회사가 자체 발표한 분류인력만 투입한 뒤 더 이상의 인력을 투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데, 이는 택배 노동자에게 분류작업을 전가하는 것이자 과로사의 위험으로 내모는 행위”라며 추후 발생하는 인력수급과 해당 비용에 대한 책임을 택배회사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중간에 위치한 영업‧대리점 역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원청(본사)과 계약돼 있는 대리점주들은, 택배 분류지원 인력의 고용비용을 택배기사들에게 전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택배기사와 동일한 위치의 소상공인 개인사업자인 점을 강조하며, 정부가 제시한 택배시장 근로환경 개선 대책을 이행하는데 있어 택배회사(원청)가 주도적으로 임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밝힌 만큼, 본사가 나서 금전 부담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택배대리점연합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통해 “갑‧을 계약관계에 있는 원청과 충원인력에 대한 비용 분담을 바탕으로 택배기사의 장시간 작업 문제 해결에 앞장설 것이며 택배기사에게 비용을 부담시키지 않을 것”이라면서 인력 충원을 단행하기로 결정한 주체가 분류작업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비용을 메워야 함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택배시장의 과도한 가격경쟁으로 인해 치킨게임에 의한 부작용이 가중되고 있는 현 실태를 지적, 개선대책을 주도한 정부를 향해서는 택배운임 현실화가 실행되도록 조치할 것을 요청했다.

▲택배비 인상으로 기우는 판세

택배 서비스 공급자인 3자간 갈등은 분류전담 인력에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하느냐가 관건이다.

일예로 최상위 단계에 있는 본사와 계약된 대리점은 분담률을 정해 추가적으로 납입해야 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상호 조율 및 협의 없이 본사가 요율을 정해 하청 대리점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게 또 다른 화근이 됐다.

비용 문제를 두고 각각의 사업체인 택배회사, 영업대리점, 택배기사는 서로에게 책임소지를 물으며 설전을 벌이고 있다.

인력을 대신해 무인 자동화 설비로의 전환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국회와 정부가 예산‧세제 등을 통해 일정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으나, 재차 발생 가능한 시시비비를 명확히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들 당사자는 문제 해결에 있어 행정적‧제도적 정부 지원은 한계가 있다면서, 요금 현실화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궁극적으로 지금의 택배비를 인상하는 게 합리적 판단임을 강조하고 있다.

인상분은 분류작업 전담인력에게 환원함으로써 3자간 갈등의 근원인 임금 문제를 해결한다는데 무게가 더해진 상태다.

결국, 소비자와 화주 의뢰인의 몫으로 돌려 충당금을 보전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류작업자에게 지급함으로써 서비스 공급자(택배회사-영업대리점-택배기사)가 분담해야 하는 손실 비용을 최소화 한다는 셈법이 담겨 있다.

앞서 사회적 합의기구는, ‘설비 자동화 추진계획이 완료되기 전까지 택배회사와 영업 대리점은 충원된 분류전담 인력에게 급여를 지급하고, 불가피하게 배송기사가 분류작업에 투입된 경우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 문제를 놓고 양측 관계자는 “영업점별 지불 능력과 경영 환경을 고려해 본사와 협의를 거쳐 분담 비율을 정해 조속한 시일 안에 분류지원 인력이 투입되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설 명절 특수기 택배 프로세스의 안정성을 담보하면서도 “특수기 이후 분담률에 대한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시에는 향배를 가늠하기 어렵다”며 불확실한 집배송 서비스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택배비 인상’ 투자심리 ‘출렁’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금융 시장에선 택배 관련 투자심리가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현재진행형인 사회안전망 확대‧적용이 담긴 종사자 개선대책을 실행하는데 있어 요금 현실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택배비 인상이 기정사실화된데 따른 것이다.

국내 택배시장 점유율 1위인 CJ대한통운의 주가는 지난 3일 기준 18만9500원으로 전일대비 1만5500원(+8.91%) 상승했다.

이러한 오름세는 택배 현장 인력의 처우개선을 위해 단가 인상이 논의 중이라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투자 목표가는 21만원으로 평가돼 있다.

올해 택배비 인상이 단행되면, 국내 택배사들의 영업이익률은 개선될 것이고 환금성이 있는 자산으로 투자가치가 오를 것으로 진단됐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취급 물동량이 지속적으로 늘면서, 단가 경쟁을 수반하는 화주기업 유치가 상대적으로 줄고 요금 인상에 의한 고객사 이탈 가능성이 낮다는 여러 요인이 복합돼 있다.

한편, 관련 업체들은 요금 현실화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택배비 인상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아직 없다고 선을 그었다.

택배사 관계자는 “택배기사의 작업시간을 주 최대 60시간, 일 최대 12시간을 목표로 하고, 불가피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21시 이후 야간‧심야배송을 제한함과 동시에 분류인력에 대한 충원과 관련 비용을 업체가 부담해야 하는 등 현재 수준의 택배 서비스를 공급하는데 분명 한계가 있다”면서 “화주가 소비자로부터 받은 택배비가 온전하게 지급되도록 거래구조를 개선하고, 택배 현장 인력에게 지급해야 하는 적정요금을 산정하기 위한 국토교통부의 연구용역이 준비돼 있는 점을 종합하면 용역 결과에 맞춰 단가 인상 논의에 착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택배비는 지난 2019년 기준 박스당 평균 2269원, 택배기사의 배달수수료는 800원이며, 이중 10%가 영업 대리점의 운영비로 정산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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