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 강박에 빠진 중기부의 중고차 생계형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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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 강박에 빠진 중기부의 중고차 생계형 딜레마
  • 김정규 기자 kjk74@gyotongn.com
  • 승인 202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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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차선의 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느 철학자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데도 최선만을 고집하다 차선마저 놓치고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지는 비극에 대한 경고로 해석되기도 한다. 지금의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지정 여부를 놓고 중소벤처기업부가 완성차와 매매업계 간 중재안을 찾는 상황이 이 같은 양상을 띨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장 걱정스런 것은 중기부의 태도이다.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자 수장이 새로 바뀌면서 새로운 협의 테이블을 통한 해법을 모색할 것으로 기대했던 양 업계는 이제는 장기 포석을 준비하면서 중기부의 우유부단한 모습을 에둘러 비판하고 있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소관부처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언제까지 결정을 미룰지를 두고 한숨만 쉬는 분위기다.

‘상생안’이라는 허울 좋은 프레임을 갖고 이미 법정 기한이 넘긴 논의를 매번 반복하면서도 양측 사이 입장만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에 대한 불만도 넘쳐난다. 중기부의 지루한 ‘눈치 보기’를 지켜보는 시선에도 피로감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한 ‘중고차 상생협력위원회’ 발족식이 무산된 점도 비난의 화살은 중기부를 향하고 있다. 관할 부처의 중재력을 보여줄 시험대였음에도 어떠한 역할도 보이지 않아서다. 업계의 의견에만 끌려다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평행선을 달리는 양측의 주장에 ‘모두 맞다’라는 입장으로는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 꼴이다.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지정을 위한 독립민간심의위원회가 법정 기한을 넘기면서까지 열리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의문도 꼬리를 물고 있다. 생계형적합업종법에 따르면, 생계형 적합업종은 신청일부터 심의·의결하는 날까지 최장 15개월 이내에 지정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중고차 매매업의 경우 2019년 2월 신청일 이후 2년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현 시점에서 법정 심의 기한이 이미 9개월 이상 지난 셈이다.

이쯤 되면 직무유기에 가깝다. 중기부가 중고차 생계형 지정을 놓고 최선의 해법을 찾으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완성차의 진입을 차단할 명분도 없는 상황에서 동시에 영세상인을 보듬어야 한다는 ‘이상적인 대전제’가 중기부의 골칫거리인 셈이다.

과연 이를 완벽하게 만족시킬 ‘최선’이란 존재하는지를 이제는 물어야 할 지경에 왔다.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못해 상충한 두 업계가 만족할 대안이라는 것에 대한 의구심만 커지는 형국이다. 중기부는 애매한 포지셔닝 문제뿐만 아니라 양보의 미덕을 자본주의 시장에서 실행할 것을 업계에 제안하는 순수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순수한 상생안’을 찾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 일관한다면 생존을 위한 투쟁의 장에서 아마추어 같은 발상으로 쟁점 현안을 대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중기부는 최선에 대한 집착이 차선마저 거론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되새겨야 한다.

지금 업계는 명분을 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치열한 실리의 문제이다. 실리 앞에서 최선은 순수의 다른 이름이다. 순수는 자본시장에서 무용(無用)하다. 양측에 이익을 안겨줄 최선이 없다면 양측이 인정할 차선을 고민해야 한다. 차선마저 놓치면 남는 것은 최악이다. 이를 막기 위해 중기부는 냉정해 질 필요가 있다. 업계의 생계를 앞에 두고 ‘우는 아이 달래듯’ 어영부영한 태도에 모두가 지쳐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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