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철도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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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철도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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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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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강원도 백두대간에 위치한 추전역, 태백역, 도계역, 철암역 등을 다녀왔다. 하루를 이곳에 머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이 위치한 추전역과 예전의 황지역으로 유명하였던 태백역, 스위치 백과 인클라인 철도의 흔적의 도계역, 많은 양의 석탄을 수송했던 지금도 그 명성을 가지고 있는 철암역 등을 돌아보았다. 오래 전에 수행했던 정선선 관련 연구도 관련 지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번 호에는 강원도지역을 중심으로 산업철도와 그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은 시절이 지나 석탄이나 시멘트 수송량이 많이 감소했지만 당시 산업발전을 견인한 철도의 역할은 매우 의미가 있다.
1945년 해방 후 3년간의 미 군정을 거쳐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그해 12월에 체결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과의 원조 협정에 따라 1949년 1월1일부터 경제 부흥계획이 수립됐다. 미국의 협조하에 영암선, 함백선, 문경선 3대 산업선 건설은 한국의 경제부흥과 산업개발의 첫 시작이었다. 
당시 철도화물 수송량은 급격히 증가했는데 이는 3대 산업선의 건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움으로 처음에는 무상으로 차관을 도입해 1950년 이전에 영암선, 영월선, 단양선의 3개선의 공사가 착수됐다. 
완공 후 중량화물인 석탄, 양회, 유류 등 우리나라 기간산업에 필요한 원자재가 철도로 수송됐다. 이후 1962년에 동해북부선의 개통과 황지선의 개통 등 철도를 통한 산업개발이 촉진돼 화물수송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1963년 철도청이 출범했지만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면서 부족한 재원은 무상에서 유상으로 전환한 외국차관으로 철도의 근대화와 시설 확충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1차 경제개발계획 기간 중 태백산 지역의 지하자원개발과 지역사회개발이 본격화됨에 따라 수송망의 확충과 전철화 등이 진행되는데 1957년 함백선, 1958년 충북선, 1961년 황지본선, 1967년 정선선이 차례로 완공됐다.
당시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으로는 철도청과 국가철도공단 그리고 당시 이를 추진한 철도 관련 종사자들의 인터뷰와 회고록 등이 남아 있다. 이훈섭 ‘전시동원과 경제건설’, 전긍렬 ‘그 외길 토목인생’, ‘나의 레일 인생 60년’, 권기안 ‘철도와의 한 평생’, 김시원 ‘푸르뫼 끝자락에서’ 등이 그것이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당시 철도인들의 노력과 헌신과 열정에 머리가 숙여진다.
이러한 우리나라 산업화를 견인한 철도의 경제성장기 화물수송 분담률을 보면 톤 기준으로 1966년에 철도가 47.3%, 도로가 48.2%로 비슷했으며 1966년부터 1980년까지 철도화물은 석탄과 석회석의 수송으로 급속히 성장했는데 톤·㎞ 기준으로 화물수송 분담률을 보면 철도는 1966년에 81.5%, 1976년 49.5%, 1986년 37.8%으로 많은 물자를 수송했다. 
그러나 1960년 중반부터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도로수송량이 급격히 증가해 철도수송량의 증가 속도는 도로에 미치지 못했다. 
다시금 산업철도의 역할의 중요성을 떠 올리면서 이러한 역을 우리나라의 산업유산으로 보존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들른 추천역은 철도유산으로 보존할 필요가 있다. 역명의 추전(杻田)은 역사(驛舍)가 있는 싸리밭 골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역사가 해발고도 855m에 위치하여 국내의 기차역으로는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연평균 기온이 남한의 기차역 가운데 가장 낮고 적설량도 가장 많은 역이어서 한여름 외에는 연중 난로를 피워야 할 만큼 춥다. 서북방 500m 떨어진 곳에는 길이 4,505m의 정암터널이 있으며, 주변에 태백산도립공원과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 구문소, 용연굴(강원기념물 39), 태백석탄박물관 등 관광지가 많은 곳으로 인근의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이 같은 높은 지역에 철도역을 설치했다. 1973년 10월 16일 태백선 철도가 개통되고 그해 11월 10일 역사(驛舍)가 신축돼 보통 역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1995년 1월 여객 취급을 중지했으며, 1998년 12월 철도청이 관광 상품으로 개발한 환상선(環狀線) 눈꽃 순환 열차가 이 역에서 장시간 정차하면서 새로운 명소가 됐다. 


태백역은 옛 황지역으로, 지금은 철도 중심역으로 역사 자원인 인클라인, 스위치백 자료관 등을 전시하면 어떤가 한다. 1936년에 영동선 통리∼심포리 사이 험준한 산악지대 경사도가 심한 구간에서는, 무거운 객 화차의 중량 때문에 오르막을 올라갈 때는 동력차의 차륜이 공전(空轉, Wheel Slide) 현상이 발생하고, 그 반대로 내리막을 내려갈 때는 제동력이 부족해 운행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에 객 화차를 로프로 연결해 끌어당기고 승객들은 열차에서 내려 1.1km를 걸어 올라가는 ‘인클라인’(incline)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열차가 운행됐다.
1963년 5월 20일 백두대간 8.5km를 우회하는 황지본선(통리∼심포리간) 철도가 개통되면서 남한 유일의 인클라인 방식 구간은 철거되고, 홍전∼나한정간에 스위치백선을 설치하게 됐다. 이 구간도 2012년 6월 말에 영동선 동백산∼도계 간 철도이설사업이 준공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도계역의 경우도 급수탑과 함께 관련 역사를 더욱 확장 보존하면 어떤가 한다.


철암역은 석탄 관련 철도산업관과 함께 영암선 건설 시 종점 역으로 이에 기록을 남겨놓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춘양곡 철탑 교량 건설이다. 이는 춘양터널을 지나서 약 200m 지점의, 영암선 중 유일한 특수구조물이다. 1949년 설계를 마치고 제작에 들어갈 즈음에 한국전쟁으로 착공을 하지 못했다. 휴전 후 1954년에 기존의 설계기준 위에 새로 도입한 디젤기관차의 하중 조건으로 재설계해 1955년에 제작 및 현지 가설을 완료한 난공사였다. 
이처럼 우리 철도는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향후에도 탄소제로 사회의 견인차로서 그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최근 제4차 철도망의 건설을 보면서 고속철도, 광역철도 중심의 철도가 미래의 주역이 되기는 하지만 우리 경제를 뒷받침한 화물철도와 산업선의 역할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울러 남북철도와 대륙으로 철도로 연결되면 다시 한번 그 역할이 부각될 것이다. 이를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우리의 역사를 보전 정리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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