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상 칼럼] 철도의 부설과 도시의 변화 그리고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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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상 칼럼] 철도의 부설과 도시의 변화 그리고 그 이후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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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필자는 교통지리와 역사를 접목시키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관심을 가진 것이 우리나라 철도의 부설 전과 후의 교통망의 변화와 역사적 배경 그리고 영향력이다. 구체적으로는 조선시대의 도로와 수운중심의 교통체계가 근대 철도가 건설되면서 어떠한 변화가 있었을까. 이로 인한 지역과 도시의 변화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인가 등의 고민을 하고 있다. 현재 연구는 진행중이지만 이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교통망은 경제 및 지리적인 특성을 반영해 형성됐다. 동고서저의 지형적인 특징, 남북으로의 백두대간, 반도적인 특성인 해양과 대륙과의 연계 등을 반영, 조선시대 도로 10로가 형성됐고, 수운의 경우에도 높은 지형의 동쪽에서 서쪽이나 남쪽으로 흐르는 형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경제와 국방 등의 이유로 인구가 모여 살았다.
 조선 시대의 도심은 지방관이 파견된 목을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경부축에는 경주, 안동, 상주 등과 호남축에는 전주, 광주, 나주, 충청도에는 충주, 청주, 공주, 경기 쪽에는 한성(서울), 광주, 여주, 강원도에는 원주, 북쪽으로는 개성, 평양, 정주, 의주, 함흥, 길주 등이었다. 이러한 목을 연결하는 남북으로 도로망이 형성됐고 상대적으로 동서축이 발달하지 못해 강원도 지역은 원주와 강릉 정도가 그나마 인구가 밀집하는 곳이었다. 
조선 시대 후기의 인구 5000명 이상의 도시는 경기에 한성, 개성, 강화, 광주, 양주, 충청에 충주, 공주, 당진, 청주, 부여, 온양, 아산이었다. 전라도는 전주, 나주, 광주, 태인, 제주, 경상도는 동래, 밀양, 부산, 진주, 거제, 대구, 상주, 안동, 경주, 의성이었다. 황해도는 해주, 황주 연안이었으며 평안도는 평양, 의주, 영유, 성천, 선천, 정주, 안주, 창성, 초산, 상원, 철산, 덕산, 가산 등이었다. 함경도는 경성, 길주, 단천, 영천, 함흥, 흥원으로 교통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러한 도시는 주로 내륙에 위치하고 전통성을 간직한 도시로 현재 발전된 지역지역과의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교통상황를 살펴보자. 근대의 도로는 2~3개 간선에는 차량이 통행할 수 있었지만 폭은 한간(1.8m)정도의 협소한 길이었으며, 지형에 따라 구배가 심하고 요철이 많았다. 또한 하천에는 다리도 없어 작은 개울은 도보로 걷고 큰 강에는 나룻배가 고작이다. 장마철에는 교통이 두절되고 물이 줄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여객은 도보로 걷고 말 등이나 가마를 이용하고 화물은 지게에 지고 소나 말 등에 싣고 다녔다. 
한편 연항항로를 보면 1911년말 부산을 중심으로 하여 남해안 노선이 많았지만 1915년 9월에는 동해안과 서해안이 증가해 이동이 많아졌다. 1915년 9월 국제항로를 보면 개항지를 중심으로 국제항로가 개설됐음을 알 수 있으며 우리나라는 부산과 인천의 국제선의 기항 횟수가 특히 많았다.
 1913년의 1등과 2등도로와 조선시대 10로 비교해 보면 도로인 의주선, 원산선은 1로, 2로와 노선이 거의 일치하고, 부산은 4로, 목포는 6로와 유사하다. 다른 것은 철도경부선을 따라 천안∼대전∼김천을 통과하는 간선도로가 부설됐다는 것과, 철도 평원선을 따라 평양∼원산간의 도로가 건설됐다는 것이다. 아울러 개항지인 부산, 마산, 목포, 군산, 인천, 진남포, 원산, 성진을 전체를 연결하는 도로망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교통망이 조선시대의 도로망을 기본으로 하되, 개항지와 경부선, 경의선, 호남선, 경의선 등 내륙 철도망과 연계돼 도로가 형성됐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근대 교통망의 경우 철도가 군사 외교적 목적으로 내륙간선 교통망으로 먼저 건설돼 도로는 이후 철도역과 경제적 자원소재지, 도청 소재지를 연결하는 형태를 취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처럼 근대 교통망에서 철도의 위상은 매우 커서 철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됐다. 1905년 경부선과 경의선 1914년 호남선과 경원선이 완공되면서 조선 시대에 발달했던 도시와 다른 새로운 도시들이 철도부설과 함께 성장했고 기존의 도시보다 신흥도시 중심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다. 1905년 경부선의 개통으로 서울과 부산의 이동시간이 14일에서 14시간으로 단축돼 시간과 공간의 지도가 바뀌게 됐다.
 철도와 도청 소재지의 이전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1910년에는 경기도 도청 소재지를 수원에서 경성부로, 1920년에는 함경북도 도청 소재지를 원산에서 나남(청진)으로, 1923년에는 평안북도 도청 소재지를 의주에서 신의주로, 1925년에는 경상남도 도청 소재지를 진주에서 부산으로 각각 이전했다. 모두 철도가 지나가는 곳이었다. 전통적으로 대구, 공주, 상주, 의주, 전주, 광주, 함흥이 발달하였는데 철도개통 이후 각각 부산, 대전, 김천, 신의주, 익산, 군산, 목포, 원산 등의 도시가 번성하게 됐다. 
 당시 철도의 지역에 대한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1960년부터 시작한 도로의 급격한 건설로 변화를 겪게 된다. 전국 어디나 도로로 접근할 수 있는 교통망이 형성돼 미처 지역까지 철도가 부설되지 않아 철도는 침체기를 걷게 됐다. 그러나 2004년 철도의 부활을 알리는 고속철도가 운영되면서 지역과 정차역 도시는 새로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신 정부는 새로운 교통정책과 지역균형발전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이 중심에 우리나라 교통의 대동맥인 고속철도가 있어 그 영향력이 확대되는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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