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교통복지다”…고령자 버스 무료화 나서는 지자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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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교통복지다”…고령자 버스 무료화 나서는 지자체들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2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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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요금통을 떼버리니 승객이 탈 때 도와줄 수 있고 안전 운행에 더욱 신경 쓸 수 있어 무척 좋습니다."

경북 청송군에서는 올해부터 누구나 무료로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관광객이건, 외국인이건 나이와 연령에 상관없이 요금을 내지 않는다.

청송 유일의 시내버스 업체 '청송버스' 소속 강병진(54) 운전기사는 교통복지 제도인 일명 '무상 버스' 도입에 "승객뿐 아니라 운전기사들도 '일하기 편해졌다'며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심화하는 가운데 전국 자치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청송군의 교통복지 사례를 경쟁적으로 좇고 있다.

청송에서 가까운 경북 상주, 의성, 영양, 영덕, 울진은 물론이고 전국 지자체와 시내버스 운송업체들의 운영, 자금 지원 등 관련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 대구 등 광역 지방자치단체들이 만년 적자인 도시철도(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상향을 논의 중임에도 '경로 무임승차'에는 대체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분위기다.

 

경북 청송군 전면 무료화 이후 타 지자체 확산

 

청송버스들

제주도는 7월부터 65세 이상 택시이용 혜택 추진

부족한 재원은 과제…“이제는 이동권 차원의 문제”

지자체 넘어 중앙정부 차원에서 기준 등 마련해야

 

◇경쟁하듯 “시내버스 무료화” : 경남 창원시는 지난 주 '어르신 무임교통 지원에 관한 조례안' 입법 예고를 했다.

오는 10일 열릴 임시회에서 조례안이 처리되면 이르면 오는 10월부터는 75세 이상 어르신 6만 명가량이 시내버스에 무료로 탑승할 수 있게 된다.

한 해 소요 재정은 37억∼38억원 규모다.

제주도는 지난달 21일 읍·면 지역 버스 무임승차 연령을 기존 70세 이상에서 '65세 이상'으로 낮추는 조례 개정안 두 가지를 제주도의회에 제출했다.

현재 도내 70세 이상 버스요금 면제 대상은 7만6천여 명가량인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1만5천여 명이 추가된다.

제주도는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조례' 개정안도 내놨다.

현행 70세 이상이던 행복택시 이용 연령을 65세 이상으로 확대했다.

개정안이 통과하면 7월 1일부터 연간 16만8천원 이내 무상으로 행복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경기도는 만 70세 이상에게 버스 요금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경기도의회는 지난 15일 '경기도 대중교통 이용 편의 증진 기본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현재 도는 만 13세 이상~23세 이하 청소년에게 연간 12만원까지 경기지역 시내·마을버스 요금을 환급해 주는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만 70세 이상 도민 30%가 버스를 이용한다고 가정하고 청소년처럼 12만원까지 지원할 경우 연간 500억원가량의 예산이 소요된다.

최민호 세종시장은 2025년 4월 국제금강정원박람회 추진에 맞춰 시내버스 요금 전면 무료화를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발목을 잡는 건 역시 '재정' : 75세 이상 어르신 시내버스 무료화를 추진 중인 홍남표 경남 창원시장의 후보 시절 공약은 '65세 이상 어르신'이었다.

당선인이 되고 나서야 재정 부담 탓에 대상 연령을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창원시는 향후 3년 안에 대상 연령을 70세까지 단계적으로 낮춰나가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미 충북 영동군과 옥천군은 2015년과 2020년부터 70세 이상 노인이면 무료로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시행 첫해 총 8173명에게 교통카드가 지급됐고, 이용 횟수가 32만6천여 건에 달할 정도로 호응이 컸다.

하지만 이후 이 충북에서 사업을 도입하는 기초자치단체는 나오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열악한 재정 문제가 가장 컸다. 2020년 제천시 노인회를 중심으로 시의회에 이 사업 시행을 청원했으나 끝내 무산됐다.

인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민선 8기 선거 공약사업으로 '65세 이상 버스요금 무료'를 내걸었으나 아직 구체적인 시행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내부 검토를 진행 중이다.

인천 거주 65세 이상 시민은 지난해 6월 기준 45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한다. 이들이 월 8회만 버스를 이용해도 1인당 연간 12만원의 지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전체 지원 예산 규모가 연간 437억원에 달한다.

인천시는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 212억원, 버스 준공영제 2656억원, 지하철·버스 환승할인 620억원을 지원하는 등 이미 막대한 교통 지원 예산을 지출했다.

재정 부담이 가중되는 65세 이상 버스요금 무료 제도 도입을 놓고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제주도 역시 조례안이 개정되면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버스 회사의 적자 폭이 늘어 수익 악화 등 재정적인 부담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강원 춘천시에서는 예산 문제로 이미 65세로 기준 잡은 무료 승차 연령을 70세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춘천에서는 작년 5월부터 65세 이상이면 매달 20차례 시내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시내버스 요금이 인상과 대상자가 증가로 그 예산이 2배 이상 늘어나 올해는 45억원이 필요하다.

김영배 춘천시의원은 최근 시의회 임시회에서 "현 기준인 65세 이상은 40여 년 전인 1981년 제정한 노인복지법 조항이다. 단계적으로 70세까지 조정해야 한다"며 "시대 변화에 맞춰 후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대승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주버스

◇주민·운전기사·사업자 모두 '만족' : "예전에는 장바구니를 차에 올리고 잔돈 꺼내고 이러다 보면 비틀거릴 때도 많았는데 이제는 운전기사님이 짐 옮기는 걸 도와줘서 무척 편합니다."

청송군민 이정자(54) 씨는 무료 버스의 장점이 단순히 금전적인 면에만 한정되는 건 아니라고 전했다.

주민 황상정(68) 씨는 "전에는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려고 해도 버스비 생각해서 두 번 가고 싶어도 한번 갔는데 이제는 아플 때뿐만 아니라 볼 일이 있을 때마다 부담 없이 집 밖을 나선다"고 말했다.

전면 무임승차 덕에 청송군에서는 운전기사와 승객 간 실랑이도 줄어들고 유대감도 높아졌으나 단계마다 추가 비용이라는 암초가 잠복해 있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무상 버스 도입 소식을 알리며 경북 청송군은 예비 시내버스 1대를 포함해 18대 운영비 지원에 예산 약 3억원가량이 든다고 홍보했다.

'3억원'은 2020∼2021년 2개년 평균치를 계산한 순수 운송수익금으로 경북도와 청송군이 계산한 운영 비용이다.

시내버스 업체 측은 이 기간 운영 비용은 3억5천 정도이며, 코로나19 이전 운영 비용은 1년에 5억5천∼6억원 정도로 계산했다.

청송버스 운전기사는 26명으로 한해 급여만 해도 12억원가량 든다. 이 밖에 여러 부족분에 대해서는 추가경정예산으로 충당 받기로 군과 조례로 약속을 했다는 게 시내버스 업체 측 설명이다.

박현식 청송버스 대표는 "당장에 수익성은 좀 멀어졌지만, 장기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형국에 급여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다 보니까 마음이 편하다"라며 "보편적 복지 개념에서 이동권을 보장해주니 서로 좋다"고 말했다.

 

◇사회적 비용 줄여줘 : 전문가들은 '버스 무임승차'가 다각적인 측면에서 사회적 비용을 절약해준다고 강조했다. 노인 세대에게 무임승차를 확대해 이동 선택권을 준다는 건 단순히 교통이나 복지를 넘어서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김희경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고고인류학과(문화인류학 전공) 교수는 "어르신들의 이동권 보장은 지자체에서 개별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지자체는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이동권 차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시골에서는 배송이 안 되기 때문에 매일 필요한 식료품이나 기본적인 의약품을 구하러 가기 위해 버스를 타야 하는데 비용을 아끼려고 타지 않는 이들도 있다"라며 "노인과 젊은이들 싸움 문제, 세대 간 갈등 문제로 정쟁화시킬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농어촌 지역 버스회사의 경영이 지자체의 재정 지원 없이는 운영될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하고 있는 게 현실이란 지적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고령층 이동권과 관련한 요구사항이 금액을 넘어서 더 다양해질 것"이라며 "목소리를 정책에 담을 수 있도록 정부가 귀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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