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국 박사의 모빌리티 르네상스] 일시정지 표지판, 바로 알고 사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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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국 박사의 모빌리티 르네상스] 일시정지 표지판, 바로 알고 사용하자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2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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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팔각형의 적색 판에 ‘정지’라고 쓰여 있는 일시정지 표지판을 접하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22년 도로교통법이 개정돼 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자동차는 보행자 유무와 상관없이 무조건 일시정시해야 한다. 많은 지자체들이 이 규정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로 어린이 보호구역 무신호 횡단보도에 일시정지 표지판을 설치했다.

어린이보호구역 무신호 횡단보도 상시 일시정지 규정은 상식적이지 않다. 이미 도로교통법은 보행자가 도로를 건너려고 할 때 자동차가 일시 정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행자가 횡단보도로 접근하는 경우 자동차가 정지하는 것은 상식적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즉 횡단보도 근처에 보행자가 없는 경우에도 정지해야 한다는 것을 운전자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스웨덴 비전제로(도로교통사고 사망자수 ‘0’ 목표) 교육자료는 교통법규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운전자가 그 취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비상식적인 교통법규는 운전자의 수용성을 낮추는 부작용을 가져와 결과적으로 다른 상식적인 교통법규의 수용성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일시정지 표지판은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상시 일시정지 지점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필자가 퇴근하는 경로에 위치한 세종시의 한 초등학교 주변 보호구역 내 횡단보도에도 일시정지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퇴근 시간대에는 학교 수업이 종료된 후이므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가 거의 없다. 보행자가 없을 때 일시정지 표지판의 지시를 따르는 운전자도 없다. 일시정지라는 중요한 교통운영 수단에 대한 운전자의 신뢰성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일시정지 표지판을 교통운영 수단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 연방도로국의 교통운영장치 매뉴얼은 MUTCD(Manual on Traffic Control Devices)이고, 이 문서는 법적 권한을 갖는다. 이 문서는 일시정지 표지를 주거지 도로와 같은 국지도로 교차점, 또는 속도 차이가 큰 도로가 만나는 교차점에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주거지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서는 주로 모든 접근로에 설치해 자동차가 교차로에 한 대씩 교대로 진입하도록 해 자동차 간 상충을 방지하도록 유도한다. 속도 차이가 큰 도로가 만날 때는 속도가 낮은 부도로에 설치해 부도로 접근 자동차가 속도가 높은 도로에 진입할 때 한번 정차했다가 안전한 차간 거리가 확보될 때 진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즉 일시정지는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의 안전한 운영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유럽의 경우 국지도로가 만나는 교차점에서 일시정지를 사용하지 않고 속도가 비교적 높은 도로 구간을 제한속도 30㎞/h 이하의 30존으로, 그와 만나는 주거지역 또는 학교 앞 도로 구간을 보행자에게 절대적 우선권이 있는 본엘프 구역으로 지정한다. 본엘프 구역 내에서는 보행자에게 도로 전체에 대해 우선권이 있으므로 횡단보도가 필요치 않다.

우리나라에서 일시정지를 도입하고자 한다면 어떤 경우에 설치하는 것이 적절할까? 도로 폭원별 사망사고 통계를 보면 설치 지점에 대한 시사점을 알 수 있다. 폭 6m 미만 도로에서 약 37%의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9m 미만 도로에서 약 54%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즉 도로 폭원이 좁은 국지도로 또는 이면도로에서 심각한 사고가 많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동차 간 또는 자동차와 보행자 간 사고는 주로 시야가 제한된 교차로에서 발생한다. 이면도로와 같이 규모가 작은 도로가 만날 때 신호등을 설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따라서 미국의 적용 사례와 같이 이러한 좁은 도로가 만날 때 일시정지 표지판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로교통법은 무신호 교차로에서의 통행 우선권을 세 개 방법으로 규정한다. 먼저 진입한 차량, 우측 진입로에서 진입한 차량, 더 넓은 도로에서 진입한 차량에게 우선권을 준다. 운전자가 이 세 가지 우선권을 순간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어렵고 각각 우선권 간의 선후 관계도 모호하다. 따라서 미국과 같이 일시정지 표지판을 설치해 진입 우선권을 명확히 운전자에게 알리는 것이 바람직한 운영 방식이다.

교통량이나 규모가 비슷한 도로가 만난다면 네 개 접근로에 모두 일시정지 표지판을 설치해 교대로 진입하도록 하고 기능과 규모에서 우선하는 도로가 명확한 경우 부도로 접근로에 일시정지 표지판을 설치하면 된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일시정지 표지판은 낯선 교통운영 수단이다. 따라서 그 효용성을 높이자면 홍보도 중요하지만 단속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전체 법규위반 건수 중 과속이 약 75%, 신호위반이 약 18%를 차지한다. 이와 같은 통계가 나타난 원인은 대부분의 교통법규 단속이 카메라에 의존하는 탓도 있고 일시정지 운영방식이 거의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의 경우 법규위반 건수 중 과속이 약 2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일시정지 위반이 약 21%로 그 뒤를 따른다.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시의 법규위반 통계를 보면 과속이 약 2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일시정지 위반이 약 7%로서 세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상기 통계는 일시정지가 선진국에서 중요한 교차로 운영 수단으로 사용되고 단속 또한 꾸준히 시행됨을 보여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어린이보호구역 무신호에서의 횡단보도 일시정지 표지판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장소보다, 고안된 원래 목적에 맞는 소규모 교차로에 설치한다면 적은 비용으로 안전한 교차로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국지도로에서의 속도 관리와 보행자 보호는 최근 교통운영 트렌드이고 교통사고로부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매우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다. 이를 국민들이 잘 이해하고 따르게 하자는 취지의 일환으로 일시정지 표지판을 바람직한 곳에 설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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