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족들과 여주에 있는 한 아울렛을 찾은 적이 있다. 전에도 한두 번 와 보았던 터라 생소하지는 않았지만 더 늘어난 국내외 관광객을 보니 새삼 쇼핑이 강력한 관광자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작은 도시국가 홍콩이 인바운드 강국의 위치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홍콩이 아시아의 부유층들에게 오랫동안 쇼핑천국으로 알려져 있던 일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2010년 외래관광객 실태조사는 이 주제에 대해 재미있는 통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을 목적지로 선택했을 때, 가장 고려할 점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1위로 응답한 항목이 쇼핑으로 나타났다. 응답의 59.8%가 쇼핑 때문에 한국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이 질문에 대한 두 번째 이유는 음식으로 40.2%가, 3위는 30.1%로 가까운 거리를 꼽고 있다. 반면 자연풍경은 4위(25.6%), 역사문화유적은 6위로 21.8%에 불과했다.
관련된 통계에서도 이것이 재확인되는데 방한기간 중 주요활동에서 1위도 쇼핑인데 방문고려 요인 59.8%를 조금 넘는 60.9%이다. 여기에서 국적별 응답도 흥미로운데, 일본인의 경우 69.9%가 쇼핑을 가장 중요했던 항목으로 응답했으며, 중국인은 이보다 높은 72.8%, 홍콩인은 75.0%가 이를 지목하고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2009년 지방의 어떤 광역도시에 아시아 관광객을 유치했는데, 이들 중 일부가 도착과 동시에 서울로 상경하여 면세점 쇼핑 후 지방공항을 통해 출국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경험적으로 볼 때, 이렇게 된 이유는 그간 한국의 관광여건이 여러모로 많이 좋아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한국에서 사는 면세명품의 경쟁력이 높아진 것에 비결이 있는 듯하다.
사실 요 몇 년 환율상황이 한국 방문에 유리한 요인이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원인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보다 짝퉁이 없는 한국면세품의 질적 수준에 상당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실제 방한 외래객의 쇼핑장소는 명동이 35.1%로 가장 높지만 공항면세점이 31.0%, 시내면세점이 21.8%로 전체에서 면세점이 차지하는 비율이 52.8%로 압도적인 결과를 보이고 있다.
결국 한국관광의 경쟁력강화 차원에서 쇼핑경쟁력 강화가 중요하고, 그 중에서도 면세품 판매 정책이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이제까지 면세점 정책은 오랫동안 답보상태에 있다.
면세품 정책이 좋아지려면 적정한 경쟁환경이 필요한데, 오랫동안 이에 대한 노력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 면세점사업은 두 개 업체가 전체 면세 매출의 84.2%를 차지하는 등 전형적인 독과점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 이후 20여 년 동안 코엑스 외에 추가 개설이 전무하다는 사실이 비판의 근거가 된다. 이에 대해 2004년 이후로만 서울지역 23개를 포함한 53개의 면세점 개설 요구가 거부됐다고 한다.
또 다른 통계를 통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작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개략 880만명 정도로 이 중 서울 방문이 80.3%이고 경기도가 30.5%, 인천이 17.5% 정도로 수도권 강세가 뚜렷이 나타났다. 물론 국제적 목적지로 성장하고 있는 부산이 15.7%, 제주가 13.1%이며, 국내관광 최대 목적지인 강원이 11.3%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16개 시?도 중 나머지 10곳은 모두 10% 미만으로 가장 낮은 충북지역 방문율은 1.5%에 불과한 실정이다. 각 광역자치단체의 국제 관광객 유치하는 목표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면세품 쇼핑이 유력한 관광 매력물이라면, 지금 시점에서 지방에 최소한 권역별로 시내면세점의 추가개설이 필요해 보인다.
이에 대해 정부는 최근 제26차 국가 경쟁력강화 회의를 통해 외국인 전용 시내면세점 추가 계획을 발표했다. 정말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정책의 실효성 측면에서 보면 아쉽다는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첫째, 외국인 전용이라면 기존 시내면세점이 내외국인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다는 점에서 신규업자에게 크게 불리한 조건이다. 둘째, 2014년 아웃바운드 1500만명 이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제관광수지 적자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현재의 시내면세점 부재 지역민이 전체 출국자의 66.0% 정도로 이들의 후생이 상대적으로 훼손된다는 점 등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관세 당국과 일부 여론은 내국인 출입에 반대하고 있다. 그들은 내국인의 과소비와 국제관세기구(WCO)의 권고를 근거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세계적인 명품소비시대라는 트렌드를 애써 외면한 것이고, WCO의 권고가 50년 전에 이루어진 단순한 권고이며 10여년 전 각 국가가 알아서 할 일로 해석했다는 사실을 숨기는 일이다.
정책을 분석할 때 가장 효율적 방법이 이해집단의 편익과 손실을 평가하는 것이다. 내국인 출국예정자의 출입이 가능한 시내면세점 확대는 우리나라의 국제관광수지 개선, 신규 진출업자의 진입장벽 완화와 경영조건 개선, 지역의 국제관광 환경 개선, 지역민의 후생 증가, 전체 면세산업의 발전 등이 예상되는 반면, 관세 당국의 추가 부담과 기존 독과점업체의 경쟁압박이 손실이다. 어떤 선택이 온전한가?
<객원논설위원·김상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