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35℃ 웃도는 무더위 속 ‘택배 터미널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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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35℃ 웃도는 무더위 속 ‘택배 터미널에 가다’
  • 이재인 기자 koderi@naver.com
  • 승인 2012.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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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 6만5천원서 차량대절ㆍ소개비까지 떼어내

운임비 인상ㆍ단가조정으로 근조로건 개선 시급

11시간 근무 1시간 휴식 “인내의 끝을 보다”

제 아무리 힘 좋은 ‘항우장사’도 복(伏)날 찜통더위에는 지치기 마련이다.

35℃를 웃도는 폭염과 열대야가 연일 지속되면서 야외활동은 물론, 가만히 서 있기조차 버거운 요즘이다.

이 와중에 원자재 공급 및 완성품 수출ㆍ입부터, 택배 등 개인화물에 대한 운송서비스까지 전국을 무대로 활동 중인 화물운송사업자(화물차주ㆍ배송기사)를 비롯해 업무 종사자들의 근무환경은 생각보다 열악하다.

생활 밀착형 서비스로 화물운송시장에 자리매김한 택배 서비스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고개가 절로 끄덕일 것이다.

▲“산더미 물량 숨 막혀...화장실도 못 가”

중복(中伏)이었던 지난달 27일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경기도에 위치한 A사 물류 터미널은 그야말로 숨 막혔다.

센터 한쪽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간선차량에 실린 물건을 컨베이어 벨트로 옮기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굉음을 내며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벨트에 놓인 화물을 지역별로 분류하는 작업으로 분주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이 화물을 서울ㆍ경기ㆍ인천 등 행선지별로 대기 중인 차량에 옮겨 싣는 작업이 이뤄졌다.

이 모든 과정은 30℃를 웃도는 작업장에서 11시간 동안 반복됐다.

작업은 간단했다.

식사 겸 휴식시간 1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동안 의류ㆍ악세사리 등 소형화물부터 40~50kg 가량 나가는 쌀ㆍ김치ㆍ침구류 등을 컨베이어 벨트로 옮겨 나르면 됐다.

‘찰리채플린’이 등장했던 영화 ‘모던 타임즈’를 연상케 했다.

기자와 같이 작업한 22살 대학생 김씨는, “택배 상하차 작업이 이정도로 힘든 일인지 상상도 못했다”며 “산더미처럼 쌓인 짐에 입을 다물 수 없었고 계속 밀려들어오는 화물차를 볼 때마다 하늘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작업 소감에 대해 그는 “2~3시간째부터는 땀이 비오듯 쏟아져 짜증나기 시작했고 4~5시간째에는 ‘내 물건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집어 던지게 됐다”며 “잠시라도 쉬면 물건이 계속 쌓이고 작업 시간이 지연되기 때문에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며 흠뻑 젖은 티셔츠를 쥐어짰다.

작업종료 후 1일 일한 노동대가로 김씨 손에는 6만 5000원(차량대절비ㆍ소개비 불포함)이 쥐어졌다.

▲화물운송 종사자, “정부, 우선순위별로 개선하라”

택배뿐만 아니라 화물운송시장 전체의 근무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 또한 이를 알고 있으며, 문제점도 인정하고 있다.

이 문제가 지속되자 지난 2008년에는 대통령이 현장 방문해 개선 대책을 정부부처에 주문한 일도 있다.

하지만 이들 근로자들의 고민인 단가개선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해줄 만한 답은 여전히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한다는 취지로 지난 5월 1일부터 ‘산재보험’이 적용ㆍ시행되고 있다.

시장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최근 증차 및 신고포상금제도 등으로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택배는, 전자상거래 및 홈쇼핑 활성화로 지난 10년간 연평균 20.4% 물동량이 늘었고 매출액도 17.6% 증가했다.

하지만 실제로 택배화물을 실어 나르는 화물차주의 수입은 변동이 없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유가상승 등으로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단가개선이 최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하는 점을 강조, 택배 산재보험은 면피하기 위해 나온 정책에 불과하며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정부가 우회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예나 지금이나 박스당 운송비는 평균 800~900원 수준인 반면, 배송기사가 개인적으로 지불하고 있는 유류비는 ℓ당 2000원 선에 육박했으며 알림 서비스 등 배송관련 통신비에 대한 개인 부담도 커졌다.

이 가운데 최근 들어 ‘IT 유목민’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접근성이 강화돼 택배 이용자 연령층이 다양해졌고, 이로 인해 취급ㆍ감당해야 할 상품별 품목도 상상 이상으로 늘었다.

이를 감안, 유류비 등 현실을 반영한 수준으로 단가조정이 불가피하며 노동 강도에 합당한 선으로 보상돼야 한다는 것이 이들 요구다.

B사 본사와 계약을 맺은 개인 화물운송사업자 한씨는, “불볕더위 속에서도 이집저집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배달하고 있으나 유류비ㆍ통신비를 제하고 나면 월소득 150~160만원이 남는다”며 “남들 다 가는 휴가도 없이 일하고 있으나 이에 걸맞는 보상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또 다른 배송기사 박씨는 “대학 졸업 후 취직자리가 나지 않고 있어 어쩔 수 없이 택배를 하고 있으나, ‘이러면서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날씨가 덥고 하루 150개 정도 물건을 일일이 배송하는 것은 견딜 수 있으나, 운임비 문제는 제발 하루빨리 해결해 주길 바란다”며 정부에 호소했다.

그는 또 “근로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현장에서 알아보고 우선순위에 맞춰 대책을 마련하길 바란다”며 “최근 근무환경 개선책 일환으로 추진된 산재보험은, 운임비가 조정된 후에 논해야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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