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배 번호판’ 뚜껑 열어 보니 엉뚱한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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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배 번호판’ 뚜껑 열어 보니 엉뚱한 곳에?
  • 이재인 기자 koderi@naver.com
  • 승인 201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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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 수입 ‘쏠쏠’...시장 양극화 심화

택배업체 임의대로 업무 대행...피해는 택배차주 몫

‘개인 배불리기’ 용도로 변질...정부, “점검관리 강화”

택배전용차량에 허가ㆍ발급되는 일명 ‘배 번호판’을 놓고 택배기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엇갈리고 있다.

1차 허가대상자(1만 3457명) 중 일부는 자격미달임에도 불구하고 ‘배 번호판’을 받는가 하면, 정작 허가받아야 될 자가 허가대상에서 제외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한데 따른 것이다.

이달부터 1만 823대의 택배차량이 ‘배 번호판’으로 활동을 본격화한 반면, 이외 2634명의 사전심사 합격자는 증차대상에서 제외된 결과가 나왔다.

이 같은 문제는 증차대수와 사전심사ㆍ허가신청 등의 처리과정이 확정됐을 당시부터 논란이 돼 온 바 있다.

예견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검증절차를 보완하지 않은 채 신규증차가 진행되면서 최종결과에 대한 재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허가대상자 이력정보 ‘따로 국밥’
‘배 번호판’을 받지 못한 자가용 택배차주는 물론, 허가받은 이들 중에도 택배경력 등의 이력을 보면 제각각이다.

지난달 최종허가에서 탈락한 이들 중에는, 올 초 진행된 사전심사에 제출한 서류와 1차 허가신청(5.1~31)에서 접수된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이유로 불허 판정을 받았다.

반면 모든 기준에 충족하다는 판단 하에 허가대상자로 선별된 이들 중 일부는 실제 택배기사로 활동한 이력이 전무하지만, 심사에 통과하면서 ‘배 번호판’을 발급받은 사례도 나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걸까?

이는 택배업체들이 보다 많은 ‘배 번호판’을 발급받기 위해 임의적으로 서류를 처리한 것이 시발점이다.

최근 확인된 바로는 일부 택배영업소와 대리점에서는 택배증차와 관련 자격미달임에도 불구하고 자가용 택배차주들의 모든 서류를 취합해 교통안전공단에 일괄 접수시켰고 국토교통부는 이에 대한 사전심사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 측이 본인(자가용 택배차주) 검증 절차 없이 임의대로 서류작성과 접수를 진행하면서, 1차 허가대상자로 선별된 국토부의 데이터와 실제 허가된 ‘배 번호판’ 대수에 공백이 만들어졌다.

그로 인해 1만 3456명(대) 중 2634명(대)가 최종허가에서 제외되는 결과가 나왔으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대상자에게도 의혹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일부 택배사의 업무대행으로 인해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서울에서 활동 중인 택배기사 김씨는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김씨는 지난 4월에 국토부로부터 1차 허가대상자로 합격됐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내용을 보면 지난 2010년 1월 1일부터 A택배사와 계약해 배송기사로 활동했으며, 지난해 공급기준 고시일을 기준으로 2년 이내(2010년 이후) 화물운송사업 허가(사업용 넘버)를 양도ㆍ양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택배증차 대상자에 속한다는 판정 결과가 담겨있다.

하지만 그는 ‘배 번호판’을 득하지 못했다.

국토부의 사전심사 당시 접수된 김씨의 서류와, 1차 허가신청이 진행된 지난달에 김씨가 관할관청으로 제출한 서류 내용이 일치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해당구청에 따르면 김씨가 제출한 서류에는 2009년부터 A업체와 계약한 것으로 돼 있으나, 국토부 사전심사에 접수ㆍ처리된 내용에는 2010년부터 김씨가 A업체 소속기사로 활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가 하달한 업무처리 지침에 따라 사실증명 불일치로 김씨 경우 허가가 불허하다는 것이 구청 담당자의 설명이다.

이 경우는 김씨가 ‘배 번호판’ 허가를 획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업무 대행한 택배 영업소 측의 과실로 피해를 본 케이스다.

이런 이유로 택배신규증차 사업 목적이 퇴색돼 가고 있다.

택배업계가 주장한 차량부족난을 해소한다는 목적으로 정부가 신규증차를 추진한데 이어, 본래 취지에 맞게 해당 차량은 택배화물의 집하ㆍ배송용도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공급이 진행됐다.

하지만 택배전용차량을 임대하는 방식으로 부가 수입을 올리는가 하면, 허가받은 이들 중 일부는 택배가 아닌 다른 용도로 차량을 이용하고 있어 사업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상황이다.

▲‘부익부 빈익빈’ 격차 벌리는 ‘배 번호판’
‘배 번호판’이 택배시장의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

택배관련 신규증차가 본격적으로 검토ㆍ논의됐던 지난 2011년에는 ‘자가용 영업해도 처벌받지 아니하고 붉은색 바탕에 ‘배’라고 적힌 별도의 사업용 번호판이 프리미엄이 없는 상태로 공급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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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택배영업소와 취급소에서는 사업용을 자가용으로 전환할 것을 추천하면서 배송 기사가 소유한 기존 사업넘버(아ㆍ사ㆍ자ㆍ바)를 매입하는 작업이 이뤄졌다<사진1>.

이 당시 꾀임에 넘어가 자가용으로 전환한 택배기사들은 최근 2년간 사업허가를 매매했다는 이유로 허가대상에서 제외됐다.

헐값에 넘버를 영업소로 양도하면서 합법적인 화물운송사업자에서 불법으로 영업하는 범법자로 낙인찍히게 됐다는 얘기다.

이들로부터 허가를 매입한 B택배사 영업소 관리자는 해당 넘버를 가족명의로 등록하면서 사업용 택배차량의 대수를 늘리고 있으며, 양도받은 3대의 허가를 대여하고 관리비를 받는 방식으로 배를 불리고 있다.

심지어 2년 전 매월 7만 5000원~8만원을 받아오던 것을 신고포상금제가 언급된 지난해부터는 10만원으로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지난달에는 ‘배 번호판’ 3대를 추가ㆍ확보했다<사진2>.

지난 2008년도에 본인과 가족(2명) 명의로 등록한 자가용 택배차가 1차 허가대상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차량 소유주가 실제 배송활동을 하지 않고 서류상에만 택배기사로 등록돼 있다는 점이다.

또 해당 택배차가 운행된 시점부터 현재까지 차량 미소지자들에게 임대해 배송기사로 활동하게 했다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본래 취지를 놓고 본다면, 지난 4년 동안 실제 배송기사로 활동한 임차인에게 ‘배 번호판’이 주어져야 하지만, 서류상 영업소 관리자와 그의 가족 명의로 등록돼 있고 이들이 배송업무에 종사한 것으로 명시돼 있어 배송기사로 활동한 적도 없는 이들에게 신규허가가 넘어간 것이다.

이 영업소 관리자는 지난달 허가받은 사업용 택배차 3대를 포함해 총 6대의 넘버를 소유하고 있는 반면에, 택배 집하ㆍ배송에는 여전히 모르쇠하고 있다.

택배 배송업무에 용이성을 더하기 위해 공급된 ‘배 번호판’이 개인 배불리기 용도로 이용되고 있는 상황.

국토부는 업무지침을 통해 택배배송 외에 다른 용도로 택배전용차량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적발시에는 허가를 취소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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