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차이나타운, 130년만에 전성기 再現
상태바
인천 차이나타운, 130년만에 전성기 再現
  • 권오명 kwonomg@hanmail.net
  • 승인 2013.07.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붉고 화려한 풍경, 중국식 전통주택 등 볼거리 가득
'자장면' 맛보려 발길 잇따라…'근교 여행지'로 제격


【인천】130년만의 화려한 귀환. 인천 차이나타운<사진>이 한국의 대표적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호선 인천행 열차의 종착역. 인천역은 조금은 한적하고 소탈한, 평범한 기차역이다. 멀리서 바다향을 머금고 온 공기가 여느 역과는 다르지만, 더욱 특별한 것은 바로 붉고 화려하게 펼쳐진 '차이나타운'이다.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 선린동, 항동 일원 11만 4000㎡에 달하는 차이나타운에는 화교 605명(2011년 기준)이 중국문화를 유지하며 생활하고 있다.
대만의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가 펄럭이는 이곳은 중국음식점 29개 곳, 기념품점 33개 곳 등 국내에서 유일하게 조성된 차이나타운이자 가장 많은 화교가 정착해 살고 있는 곳이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에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100곳'으로 선정된 차이나타운은 한국인에게는 독특함을, 중국인에게는 향수를 자아내게 하는 대표 관광지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중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130년 전 이곳에 차이나타운이 형성된 것도 지리적 접근성이 주된 이유였다. 산둥과 인천은 비행기로 1시간, 배로 18시간 걸리고, 항에서 차로 30분,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도보로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1883년 1월, 인천이 개항되면서 이곳에 석 달 뒤 1만6500㎡(약 5000평) 규모의 청국조계지가 설치됐다. 중국인들로 북적거리던 이곳은 1900년대 청요리집, 잡화상, 이발소 등 중국 상권이 활성화됐다.
그러나 50년 전만 해도 이곳은 차이나타운이란 명칭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던 변방촌이자, 변방으로 몰린 화교들의 쓸쓸한 주거지였다. 1950∼60년대 정부의 화교 차별 정책에 따라 많은 수의 화교가 미국과 대만 등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대국의 면모가 되살아난 것은 차이나타운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2001년부터다.
이후 2007년 4월 '지역발전특구'가 되면서 차이나타운은 연 관광객 224만 명을 흡수하는 효자 관광 상품이 됐다. 2000년 당시 2∼3군데였던 중국음식점만 해도 13년 사이 32개 곳으로 10배 이상 늘었고, 기념품점만 33개 곳이 됐다. 떠나지 않고 끝까지 남아 명맥을 이어온 화교들의 문화에 지방정부의 관광정책이 힘을 더해 오늘의 차이나타운이 된 것이다.

2012년 4월 '자장면 박물관'으로 개관한 인천 차이나타운의 명물 옛 공화춘 건물(중구 선린동 소재·등록문화재 제246호). 공화춘은 1912년 자장면을 최초로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한 화교 음식점이다. 지금 이곳은 한국 자장면의 역사를 유물과 모형으로 알리고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 남아있는 중국식 전통 주택. 길가에 위치한 건물은 개방적 형태로 회랑이 딸려 독특하다. 길을 걷다가 적지 않은 옛 건물을 만날 수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은 세월의 흔적을 버무린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많은 이가 사랑하는 관광지가 됐다.

인천 차이나타운이 주목받게 된 데는 '자장면' 덕이 크다. 지난 5월 차이나타운 일대에서 열린 '인천 중국 문화관광 페스티벌'에는 중국인 관광객 9100명을 포함해 총 20만 명 이상 관광객이 몰렸다. 자장면을 먹기 위해 관광객들이 100m씩 줄을 섰고, 재료가 일찍 동이 나서 음식을 못 만드는가 하면, 자장면으로 유명한 중국 음식점에서는 하루 4000그릇을 파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산둥지방의 토속면장에 고기를 볶아 수타면에 얹어 만들기 시작한 자장면은 1950년대 화교들이 캐러멜을 첨가한 한국식 춘장을 개발하면서 현재의 자장면이 됐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자장면은 어디서든 뛰어난 적응력으로 정착한 중국인의 작품이었다. 자장면에 대한 역사는 자장면 박물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자장면으로 배를 채워도 볼거리는 중요한 법. 160개 그림으로 구성된 삼국지 벽화거리는 한국인이나 중국인 모두에게 친근하다. '삼국지' 등장인물 유비, 관우, 장비, 조조가 금방이라도 호통을 치는 듯하다.

과거로 돌아간 듯 착각에 빠지게 하는 근대 건축물은 또 하나의 볼거리다. 중국에서도 보기 어려워진 중국식 전통주택도 이곳에선 130여 년 세월을 거쳐 꿋꿋하게 남아있다. 처마가 있는 긴 회랑과 아치형 대문, 붉은 벽돌이 독특한 이곳은 화교 2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차이나타운의 진정한 위용을 보여주는 중국인들의 교화기관 '의선당(義善堂)'도 볼 수 있다. '의(義)를 지키고 착하게 살자'는 뜻의 의선당은 과거 중국 무술을 연마했던 심신단련의 공간이자 화교들의 정신적 중심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