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급발진’-돌파구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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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급발진’-돌파구 없나?
  • 곽재옥 기자 jokwak@naver.com
  • 승인 201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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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분의 일 확률 잡으려면 민관산학 공조해야”

-급발진 실험 ‘완벽 재현 위한 장치 구현’ 관건
-‘페달’ 블랙박스, ‘차 결함’ 증명하는 유일한 길


급발진 원인 규명을 위한 국토교통부의 공개재현실험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급발진에 대한 관심과 논란이 더욱 뜨거워졌다. 국토부가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급발진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다소 모순된 의미의 결론을 공식 발표한 가운데, 여론은 “오히려 이번 실험이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소비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격”이라며 질타를 가하고 있다.

이처럼 급발진의 과학적 증명을 위한 정부의 시도가 소득 없이 끝난 상황에서 앞으로 급발진 원인 규명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또 운전자들은 어떤 방법으로 급발진에 대처해야 할지 알아봤다.

▲공개재현실험, 무엇이 문제였나=정부 차원의 급발진 실험은 지난 1999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사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급발진의 원인 규명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애초 성과를 기대하지 않았던 ‘보여주기 식’ 실험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언론의 뭇매가 거세다.

실제로 공개실험이 끝난 시점 한 국토부 관계자는 모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실험은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외부에서 말이 너무 많아서 진행한 것”이라며 “정부 입장에서 국민의 불안을 잠재울 만한 방안을 찾다 조사와 실험을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말하자면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사실상 급발진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험을 강행했다는 얘기다.

외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번 실험결과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일단 급발진을 일으킬 것으로 추정되는 원인을 전 국민 공모를 통해 실험대에 올렸다는 것 자체가 전문성과 신뢰성 측면에서 한계라는 주장이다.

국내 모 대학 자동차학과 교수는 “1만분의 1에서 10만분의 1에 해당하는 급발진의 확률을 단 이틀 동안 한두 번 유사한 실험을 통해 찾아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실험에는 가정이 너무 많은데 가정이 많은 실험일수록 신뢰도가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급발진 원인규명은 ‘시간·비용의 싸움’=급발진은 디젤차량이나 수동차량의 비율이 높고 ‘한 템포 느린 운전’이 습관화된 유럽에서는 거의 사례가 없는 상황이다. 반면 오토미션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을 전후로 미국, 일본,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사회문제로까지 이어졌다.

미국의 경우, 1987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급발진 사고조사를 실시했다. 첫 번째는 구동장치와 스로틀밸브 개방 정도, 제동거리의 상관관계 등 제동장치에, 두 번째는 전자파 영향 여부, 사고기록장치 등 전자장치에 초점을 맞춰 조사를 진행했으나 둘 다 현상 규명에 실패했다.

또 일본도, 1987년 6월부터 자동변속장치·제동장치 등 기계적 시험, 정속주행장치·엔진회전수 보정장치 등 전자기기, 운전자 요인 등을 중심으로 2년 8개월간에 걸친 실험을 실시했으나 역시 급발진의 원인을 찾지는 못했다.

선진국들이 줄줄이 급발진의 미스터리를 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기술 수준의 한계’를 거론한 국토부의 항변이 전혀 무책임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다만 남은 과제는 앞으로 급발진의 원인 규명을 위한 실험이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다.

지난 5월 자동차급발진연구회가 공식 발표한 급발진 원인 제시는 세계 최초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연구회에 따르면, 급발진은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작동할 때 진공배력장치와 연결된 흡기다기관 내의 급격한 압력 변화로 엔진의 회전수를 제어하는 스토틀밸브가 열려 급발진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주장은 발표와 동시에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 반론이 제기됐다. 이번 공개재현실험에서도 증명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 김필수(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회장은 “연구회가 제시한 ‘압력서지’ 현상을 재현하는 데는 장치 세팅에 드는 시간만도 수개월, 비용도 수억원이 소요된다”면서 “그와 같은 고가의 체계적 장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민·관·산·학이 공조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회는 앞으로 보고서를 외국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리고, 전 세계적 협력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사고 시 책임 면하려면?=뚜렷한 원인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이번 급발진 실험결과가 향후 급발진 추정사고 관련 재판 시 운전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추측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현재 급발진 관련 소송은 정확한 통계를 매기고 있지 않지만 그 수는 점점 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08년 벤츠 차량의 급발진 주장 사고에 대한 민사사건에서 1심은 자동차의 결함을 주장하는 운전자의 손을 들어줬다가(제조물 책임에서의 입증책임 완화법리 유추 적용), 2심에서 이를 뒤집은바 있다. 반면 같은 해 급발진 의심 사고로 인한 형사사건에서는 차량 급발진으로 인한 사고로 볼 만한 여러 사정이 있고, 운전자의 업무상 과실이 있다는 점에 대해 증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유지한바 있다.

두 사건을 놓고 보면 급발진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은 엇갈리는 것처럼 보인다. 자동차의 결함을 입증하지 못해 민사사건의 운전자가 아무런 배상 혜택을 받지 못한 것과 달리 형사사건 운전자의 급발진 정황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민사사건에 대한 입증책임은 운전자에게, 형사사건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기 때문이다. 김상군 도로교통공단 법무팀장은 “자동차 결함이냐, 운전미숙이냐의 문제에서 민사상 권리구제를 받기 위해서는 운전자가 스스로 차량결함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원칙”고 말했다.

그러나 자동차의 결함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그 책임이 고스란히 운전자에게 돌아가는 우리나라와 달리, 선진국에서는 동일하게 급발진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제조사로 하여금 급발진의 원인을 입증하도록 재판부가 명령할 수 있다. 이는 우리와는 다른 ‘제조물책임법’의 규정에 따른 것.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급발진의 원인 규명이 더욱 절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급발진의 과학적 입증이 부재한 현 상황에서 운전자가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운행기록상황을 기록하는 EDR(Event data recorder)과 차내 페달 부위를 찍는 블랙박스의 장착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김 교수는 “현재 EDR이 제공하고 있는 10여 가지의 주요 정보 중 브레이크 페달 작동 여부는 ‘온·오프’만 나와 있어 발만 살짝 대도 ‘온’으로 기록되는 맹점이 있다”면서 “브레이크페달 하단과 가속페달 하단 등에 감도 높은 센서를 개발해 두 페달의 밟는 정도를 실시간으로 메모리할 수 있다면 자동차의 결함을 증명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김 팀장은 “‘급발진’은 가속페달을 세게 밟아도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단어 자체에 대한 법리적 해석이 현재로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자동차의 결함인지 운전자의 미숙인지를 가리는 민사상 권리구제에 있어서 블랙박스 등 첨단장비를 활용한 입증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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