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더위보다 무서운 건 열악한 근무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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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더위보다 무서운 건 열악한 근무환경
  • 이재인 기자 koderi@naver.com
  • 승인 2013.0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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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만족만 중시하는 택배사...협력업체 택배기사는 나몰라

도로명 주소․진입제한 아파트 단지 등 ‘사면초가’

악조건․이중고 겹쳐 ‘사비’ 들이지만 본사는 대답 없어

기록적인 불볕더위가 계속되면서 택배를 포함한 화물운송 종사자의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

최고 37도를 웃도는 환경에서 상품 집하부터 분류․배송까지 처리하는데 여간 힘든 상황이지만, 미소와 친절로 고객응대에 나서라는 본사 입장이 한층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물차의 진입이 제한되는 아파트 단지가 늘고 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번방식으로 기입돼 온 배송정보가 새 주소인 도로명주소로 전환․병행 기입되면서 업무적으로도 진통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에는 해당 서비스에 종사하는 것을 회피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기피대상 업종으로 랭크되는 불명예도 더해졌다.

이른바 서비스업종 중에서도 ‘최악’으로 꼽히고 있는 택배 현장의 실사 점검해봤다.

▲“우리도 살아야 서비스도 좋아지죠!”
‘고객은 왕이다. 친절과 웃음으로 고객을 마주해야 한다. 서비스 교육내용을 숙지하고 업무에 충실히 임하라.’ A업체 한 영업소에서 최근 교육되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협력업체 배송기사들은 탐탁치 않다.

날도 날이지만 고객이 요구하는 수준이 정도를 넘어선 것은 물론이며, 정작 이들을 관리․보호해줘야 할 본사에서는 고객중심의 서비스 만족을 앞세워 압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배송 현장은 곡소리로 가득하다.

낮 최고 기온 33~34도(서울)를 오르내린 지난 14일 현장은 한 마디로 아비규환이었다.

이날 서울에서 활동 중인 배송기사 A씨를 동행해봤다.

일명 냉장고 바지와 팔토시 등 ‘더위탈출’ 상품으로 중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이 역력했다.

골목길의 폭이 좁아 차량진입이 불가한 단독주택 밀집 지역에는 비상등을 켠 채로 수레에 짐을 싣어 비탈길을 올라가는 것은 다반사였고, 빌라 같은 저층 건물에는 승강기가 설치돼 있지 않아 어깨에 짊어지고 날랐다.

땀범벅을 한 채 초인종을 누르면 ‘냉동식품인데 지금 배송오면 어떻하냐. 상하면 배상할 거냐’며 되려 화를 내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으며, 부재 중 으로 연락을 취하면 ‘근처 편의점에 맡겨 놓던지 아니면 다음에 다시 가져다 달라’는 말만 하고 바로 끊어 버리는 것도 태반이었다.

이보다는 좀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 아파트 주거 단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수취인이 밀집해있고 구획조정이 비교적 돼 있어 배송이 용이할 것으로 생각하던 찰라 도착한 곳은 일명 ‘차 없는 아파트’로 택배차량 진입이 제한됐다.

역시 수레에 짐을 싣어 날라야만 했다.

이 와중에도 A씨의 휴대전화는 연신 울렸다.

‘아파트 진입로에 차를 대면 어떻하냐. 어서 이동하라’는 주문이 경비실로부터 왔다.

A에 따르면 지상에 차량운행을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조성된 아파트가 늘면서 사비로 일용직 단기 알바를 채용하거나 부부가 함께 배송하는 ‘1인 2조’ 체제로 운행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둘 중 한 명은 택배를 전달하고 차량에 대기 중인 다른 이는 비상등을 켜고 대기하다가 주정차 단속 직원을 포함해 주민․경비원이 제재하면 근방을 순회하면서 배달원을 기다리는 식이다.

A씨는 “환경이 이런데도 영업소와 본사에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어, 사비로 알바생을 채용해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며 “친절로만 대하라고 회사가 명령하고 있으나, 근무여건을 개선하면서 요구할 것을 요구해야 하지 않겠냐”며 되물었다.

이어 그는 “장마와 폭염이 계속되는 7~8월에는 택배 알바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지금 알바생도 휴가비가 마련되는 즉시 관두는 조건으로 함께 하고 있어 막막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한 아르바이트 전문 포탈이 조사한 ‘최악의 아르바이트’에 대한 설문결과에서, 택배가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업종 중 하나로 선정된 바 있다.

▲도로명 주소 찾다 23~30분 헤매기도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상자에 기입돼 있는 목적지 정보가 잘못 표시된 상품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이전부터 정부가 추진한 도로명주소 새 주소와 지번 체계인 옛주소가 함께 사용되고 있으나, 내년 1월 1일 전면 시행을 앞두면서 인터넷 쇼핑몰과 홈쇼핑 등에서는 도로명주소로 주문을 받는 업체들이 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A 씨는 도로명주소가 적힌 배달지를 찾아가면 기본 20분 정도 헤매기 일쑤라고 설명했다. 차량에 부착된 내비게이션이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배송지 정보가 목적지와 불일치할 경우도 나오고 있다는 것.

영업소로 연락해 시스템에 설치된 새 주소 체계로 변환을 요청해 봐도 회사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지 않아 오류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며, 어쩔 수 없이 수취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위치확인 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메이저 업체와 계약한 동료들은 새 주소 체계에 맞춘 시스템을 본사로부터 보급받아 이용하고 있으나, 여전히 옛주소인 지번 주소를 이용하는 택배회사들도 상당하다”며 “협력업체 기사를 통해 대부분 배송이 이뤄지고 있으나, 본사에서는 사업자와 사업자가 계약한 특수형태인 점을 내세워 본사 소속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어떠한 지원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지적했다.

이어 “고객에게 질타 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화해 처리 중이나 이에 드는 비용 전부가 협력업체라는 이유로 배송기사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며 “사방이 고난으로 둘러싸여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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