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버스’ 시한부 인생을 살다(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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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버스’ 시한부 인생을 살다(上)
  • 정규호 기자 bedro10242@naver.com
  • 승인 2013.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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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9년까지 쓸 수 있는데…학교는 “3년식 이내만 입찰해!”

하루 차이로 ‘구식버스’되는 입찰 방식 문제
전세버스 여객법상 ‘9+2’년까지 운행 가능
“학생 안전 위해 학교와 업계 상생 할 때”

전세버스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전국의 초․중․고교에서 3년 이내 내지 5년 이내의 신차만을 입찰 기준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질 좋은 전세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서비스 혁신이지만 현 전세버스업계 상황을 볼 땐 회사의 존립 기반을 흔드는 암세포처럼 왜곡된 구조다.

전세버스는 여객운수사업법상 9년 동안 사업용 자동차로 영업을 할 수 있다. 이후 차량 안전 점검을 추가 통과하면 2년을 더 영업할 수도 있다. 최대 수명이 11년이라는 얘기지만 5년만 지나면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폐차 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때문에 업계는 차량 연식을 속이는 불법까지 자행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며 기준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입찰 방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회사의 존폐까지 걸어야 한다고 하소연 한다.

이에 본지에서는 입찰 조건의 문제점과 해결책은 무엇인지 2회에 걸쳐 보도한다.

10월은 전국의 초․중․고교들이 소풍과 수학여행 등 단체 여행을 가장 많이 달이다. 전세버스업계로서는 성수기다. 학교에서는 단체여행 입찰 공고를 올리고, 전세버스 회사는 입찰제안서를 제출해 계약이 성립된다.

그런데 학교에서 올리는 입찰 공고문은 마치 한 곳에서 올린 것처럼 공통된 기준들이 있다. ‘버스 연식 제한’과 ‘버스 동일 색상’, ‘단일 회사’ 등이 바로 그 공통 기준이다.

학교는 공공기관이므로 단체여행 입찰공고문을 조달청 산하의 나라장터에 올리는데, 실제로 여기서 올라오는 공고문들에는 연식 제한, 버스 동일 색상 등의 기준을 적시한 공고문이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이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입찰제안서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중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의 수학여행 전세버스 입찰제안서를 살펴봤다.

먼저 차량 연식 제한(2009년 이전 차량은 입찰 금지), 20대 이상 보유, 동일 색상 등을 기본적인 조건으로 정하고 있다. 단가는 2815만5000원을 기초금액으로 정하고, 이중 87.745% 이상의 최처가 입찰참가자가 낙찰자로 결정된다. 사실상 2470만원 이상 입찰해야 낙찰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당일 배치확인서, 사전적격심사 확인서, 안전점검표, 자동차등록증 등 약 25가지의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할 정도로 심사가 까다롭다.

담당 학교 관계자는 이 모든 것이 ‘교통안전’을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요즘 행락철을 맞이해 전세버스 교통사고 발생률이 높아 학부모님들의 걱정이 크다. 만일 오르내리막길을 가는데, 버스가 미끌어진다면 구식차보다는 신차의 브레이크가 잘 될 것이다. 자기 아이가 소풍간다는데, 오래된 구식버스를 태워서 보내고 싶냐”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 싸고, 더 질 좋은 제품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전세버스업계는 이 공통된 기준 때문에 자신들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해당 학교에 입찰에 참여한 A전세버스업체 대표는 “더 이상 회사를 끌고 갈 여력이 없다. 현재 우리 회사는 23대의 전세버스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15대가 5년식 이하, 남은 8대는 6년식 이상이다. 내년이면 우리 회사 버스의 70%가 5년식 이상이 되는데, 3~5년식 신차로만 입찰을 받는 학교에서는 영업을 할 수 없게 된다. 앞으로 연식을 속여 입찰을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사업을 접거나 모두 지입으로 풀어야 할 지 기로에 서 있다”고 하소연했다.

현재 서울의 경우 차령별 전세버스 대수(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총 2238대(45인승 기준) 중 3년식 미만이 682대, 5년식 미만은 406대에 불과하다. 사실상 6년 이상인 1832대는 학교 단체여행에서 운행 할 수 없는 시한부 차량들이다.



반면, 서울의 학교는 1500여 곳으로 4, 9, 10월에 단체여행이 집중되므로 수요는 일시적으로 폭증하게 되지만 이를 소화할 수 있는 공급물량(3년식 이내 전세버스)은 현격히 부족해지는 현상이 발생되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자동차등록증에는 ‘연식’란과 ‘차량등록일’란이 있는데, 교사에 따라 연식을 제한하는 기준이 입맛대로 달라진다.  B사의 경우 2011년식 버스를 선구입해 2010년 9월 14일 자동차등록증을 받은 사례가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2011년식 버스라 하더라도 2010년에 등록을 받았기 때문에 3년식이 아닌 4년식으로 간주하고 입찰에서 제한시켰다. 또 다른 교사는 차량 연식을 현재 날짜 기준으로 정하다 보니 12월 31일 등록한 것을 1월 1일부터 2년 식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밖에도 입찰제안서는 교직원이 작성하고, 평가는 교사가 하다 보니 이중 기준으로 심사를 하게 불이익을 받게 되는 사례도 많았다.

C사 대표는 “교사들이 이해할 수 없는 연식 기준 때문에 3년 이내의 신차가 1~2대 부족해 입찰에서 떨어지는 사례가 종종 있다”가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학교와 전세버스업계가 상생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학생들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전세버스회사의 매출을 셔틀버스 분야에서 60%, 관광분야에서 40% 발생된다고 가정해 보면 영업 단가가 높은 관광분야는 3년식 이하의 전세버스들로 경쟁이 일어난다.  관광분야의 특징은 가을소풍, 수학여행이 몰리는 4, 5월과 10, 11월까지 총 4개월이 성수기라는 점이다. 관광분야 매출도 바로 이때 대부분은 발생된다.

반대로 남은 8개월 동안에는 관광분야에서 일거리가 현격히 부족해진다. 결국, 성수기만 되면 전세버스 기사들이 밤을 새가며 바싹 돈을 벌어 놓아야 한다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이는 장시간 운행과 피로감 누적으로 인해 졸음운전, 운전 집중력 부족 등 대형사고로 이어진다는 것.

한 전세버스 기사는 “성수기(4, 5, 10, 11월)만 되면 주말, 심야 관계없이 일주일 내내, 한 달 내내 일한다. 신차(3년 이내)일 때 바짝 벌어서 버스 할부금․이자내고, 가족들 먹여 살려야 한다. 나도 가끔씩 졸음운전을 하기 때문에 위험할 때가 많아 학생들에게는 솔직히 미안하다. 그렇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달려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서울전세버스조합 관계자는 “6~9년식 버스가 3~5년식 버스보다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4년하고 365일된 버스하고, 5년하고 1일된 버스가 단 하루 차이 때문에 구식이 된다는 논리는 이해할 수 없다”며 “연식 제한을 이제 없애고, 기사들의 운전 실력, 안전 마인드 등을 살필 수 있는 기준이 마련돼야 서로 상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조합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 서울시의회, 서울교육청 등에 학교들이 ‘버스 연식’ 단어 기준을 완화해 줄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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