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누비던 다마스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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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누비던 다마스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데
  • 이승한 기자 nyus449@gyotongn.com
  • 승인 201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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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끝으로 내년부터 다마스․라보 단종 예정
강화된 환경․안전기준 부합 시켜야 생산 가능
한국GM “개발비 2천억원 필요, 현실 불가능”
소비자 단종 철회 청원 계속 … 정부․기업 협의

#1. 이종훈(47)씨는 서울에서 지역 정보지 보급소를 운영한다. 이씨가 일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게 다마스다. 저렴한 유지비가 다른 운송 수단과는 비교할 수 없어서다. 업무 특성상 주택가 골목을 누비거나, 대로변에 잠시 차를 세워둬야 할 때가 많다. 그때도 유용하다. 이씨는 “3년 동안 정말 험하게 차를 사용했는데도 불만 한 번 없었을 만큼 효자 노릇 톡톡히 해줬다”며 “여태까지 써본 차 가운데 이 만큼 실용적인 차는 아직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2. 박경현(39)씨는 인천 부평에서 실내 벽지 도배일을 한다.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한 아파트 단지가 주요 일터다. 지난 2010년 일을 시작하면서 다마스와 라보 각각 1대씩을 구입했다. 이만큼 경제적인 차가 없다는 판단에 따랐다. 지난해 사고로 라보를 폐차하고 또 다시 선택한 것도 다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다. 박씨는 아예 차에서 전화 받고 영업 할 때가 많다고 했다. 사실상 사무실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박씨는 “짐을 조수석까지 가득 싣고 나면 다른 사람이 앉을 틈이 없을 정도로 공간이 비좁지만, 어렵게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로 고마운 차”라며 “사업 실패한 후 지금까지 용기와 희망을 가져다 줬기에 다마스․라보는 자동차 이상 소중한 존재”라고 말했다.

지난 1991년 첫 출시된 이래 영세 자영업자 ‘발’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다마스․라보. 22년 영광을 뒤로 하고 단종 위기에 놓이게 됐다. 당장 이번 달을 끝으로 내년부터 한국GM이 생산을 중단하기로 예고한 상태다. 판매는 3월까지는 계속될 예정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두 차에 적용되는 환경․안전기준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환경․안전기준’ 규제를 강화하려하고 있고, 기업은 충족하는 장치 개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안전부문에서는 타이어 공기압 감시시스템(TPMS)과 차량 전자안정성 제어장치(ESC)를 달아야 하고, 머리지지대는 개선해야 한다. 이 모두 국토교통부 소관이다. 환경관련은 배출가스 자가 진단장치(OBD)를 달아야 한다. 환경부 관련 장치다.

“비용 부담 크다”에 “더 이상 유예 없어”
한국GM 측은 이들 장치를 개발하는 데만 2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차량 기본 설계 자체부터 다시 잡아야 해 신차개발에 준한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차가 회전할 때 흔들리거나 전복되지 않게 자세를 잡아주는 ESC 개발에 드는 비용이 가장 많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기준 1만7173대를 팔아 1400억원 남짓 매출액을 올린 회사 입장에선 개발비 부담이 너무 과도할 수 있다. 생산 중단 결정은 이런 이유로 나왔다.

정부는 더 이상 다마스․라보에 대한 특혜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서민차’란 특수성을 감안해 이미 한 차례 규제를 유예해줬다. 당장 또 다시 유예조치가 이뤄질 경우 자칫 다른 차나 도로교통 안전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게 정부 시각이다. 다른 차종과의 형평성 문제도 걸림돌이다. 정부는 “아무 조건 없이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라 보고 있다.

한국GM은 현실적인 대안 없이 기업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개발에 시간․비용이 많이 드는 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나설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올 초 공식화됐다. 다마스․라보 생산 라인은 경차 스파크 생산에 활용한다는 내부 방침까지 정해져 있다.

다마스와 라보는 현재 한국GM 창원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스파크와 같은 경차에 특화된 공장이다. 생산라인 공유가 가능해 비용이 크게 들지 않았고, 수요도 꾸준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기아차에 흡수된 아시아자동차가 ‘타우너’를 생산했다 지난 2002년 단종 시킨 것과는 대조적 행보를 걸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특수성 때문이었다.

‘친한 친구’라는 뜻을 가진 다마스는 지난 1991년 11월 탄생했다. LPG를 연료로 사용하는 2~5인승 경상용 버스다. 가격은 890~930만원 가량. 차량 폭이 1.4m로 1톤 트럭보다 크게 작아 골목길을 누비기가 한결 수월하다. 연비는 리터당 9.9km.

‘일하다’는 뜻의 라보 역시 1991년 11월 첫 출시됐다. 다마스처럼 LPG를 연료로 쓰며, 리터당 연비는 9.8km 수준이다. 가격은 740~820만원 정도다. 550kg을 적재할 수 있어 1톤 트럭(최대 400kg)보다도 효율적이란 평가다.

지난해까지 다마스는 24만6137대, 라보는 11만2995대가 팔렸다. 매년 1만5000대 전후로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올해 들어선 단종 소식에 벌써 11월까지 1만7000대를 넘어선 상태다. 10월까지 3개월 연속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판매가 증가했다. 라보는 10월 한 달 동안 1493대가 판매돼 회사 출범 이래 최다 월간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에는 다마스(1만7672대)와 라보(6851대)를 합해 2만4000대 이상이 팔리며 대표적인 ’생계형 차’ 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경제성․실용성 뛰어 서민 사랑 ‘듬뿍’
다마스․라보가 서민에게 탄탄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차체가 작아 기동력이 좋고, 유지비도 적게 들기 때문이다.

우선 등록세와 취득세는 물론 특별소비세까지 면제된다. 고속도로 통행료와 공용주차장 주차비는 50%나 할인해 준다. 일반․법인사업자 부가세는 전액 환급되고, 서울시의 경우 혼합 통행료를 면제해 준다.

가격 또한 출시되던 1991년(400만원대) 이래로 큰 인상 없이 저렴하게 유지돼 왔다. 연료도 LPG를 써 부담이 덜하다.

무엇보다 활용성이 뛰어난 건 최고의 장점으로 꼽힌다. 운전석은 최소화 시키고 적재공간을 넓혔다. 그런데도 차량 자체가 작아 골목길 같은 곳을 종횡무진 누빌 수 있다. 차 내부 공간을 개조해 운송은 물론 길거리 판매부스 등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그간 용달, 택배, 세탁, 유통, 인쇄 등 영세 자영업자들로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다마스․라보 차주들은 “대체할 차량도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단종 시키는 것은 행정편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1톤 트럭은 경제적인 효과가 없어 결국 기존 차를 더 타려 할 텐데, 그로 인해 안전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길자(57)씨는 5년 된 다마스를 개조해 서울 혜화동에서 길거리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다. 종종 차가 잔 고장을 일으키지만, 새 차 구입하려면 목돈이 필요해 일단 고쳐가며 버텨왔다고 한다. 단종 소식에 최씨는 이만저만 불안한 게 아니다. “다른 차를 구입할 여력도 없지만, 유지비 생각하면 엄두가 안 난다”며 “내년에 중고차로라도 구입할 수 있을 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청파동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마상진(62)씨는 “가격을 올려서라도 생산을 유지시켜주지 않을 경우 영세업자 모두 추후에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며 “골목상권을 보호해 주겠다는 정부가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고려해주는 모습을 보여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설마 했던 단종이 눈앞에 다가오자 자동차 시장에서도 서서히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신차 판매 실적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중고차 시장에서도 다마스와 라보 인기가 상종가를 치고 있다.

수요가 많은 데다 가격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커 중고차 시장에서 당분간 인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일각에서는 중고차 매매업체나 택배업체 등이 물량 확보에 나서면 중고차 가격이 더욱 뛰어 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차 진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실제 중국 완성차업체가 0.75톤급 트럭을 국내 출시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업계 내부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이럴 경우 경상용차 시장이 사실상 수입차에게 잠식당하게 된다.

생산 단종 현실 속 ‘철회’ 요구 봇물
현 시점에서 다마스․라보 생산 지속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단종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추세지만, 그렇다고 생산 연장 합의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일부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우선 한국GM이 환경․안전기준을 충족시키는 장치 개발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신차개발 수준까지 가지 않아도 돼 회사가 말하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들고, 기간도 최소 6개월에서 최장 1년이면 충분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들은 회사가 의지를 보인다면 정부도 개발․장착 기간만큼 유예시켜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생산 라인 매각 주장도 나왔다. 수요가 좋은 만큼 구매의사를 밝힐 중견기업은 얼마든지 있다는 게 근거다.

지난 7월에는 소상공인이 중심이 된 ‘단종 철회 청원자 협의회’가 생겼다. 이들은 청와대․국민권익위원회․동반성장위원회 등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최근에는 소상공인연합회가 이에 가세했다. 결국 정부가 지난 10월 “환경․안전기준 규제 조건 수용여부에 따라 조건부로 유예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GM 측과 협의에 나서기 시작했다.

한 달 이상 협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타결 실마리는 풀리지 않고 있다. ESC 개발에 따른 비용 증가 등 현안이 해결되지 않고 있어서다. 한국GM은 “최악의 경우 단종을 염두하고 있지만, 아직 정부 최종 답변을 듣지 못한 상황이라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반면 정부는 “제시 조건 충족 여부를 판단하고 유예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해결 열쇠는 한국GM이 쥐고 있는 모양새다. 회사 입장이나 처지가 어찌됐든, 정부가 제시하는 조건을 얼마나 따르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한국GM이 빠른 시간 내에 환경․안전기준에 부합하는 장치를 개발하고, 정부는 기술 개발과 보급에 필요한 만큼 시간을 유예해 주도록 결단을 내려주길 촉구했다. 이때 개발에 필요한 자금은 회사가 부담하거나 정부가 지원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소비자도 일정 부분 차 값 인상이 불가피한 점을 인정하고, 가격 인상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많은 이들이 생계와 밀접하게 연계된 차종만큼은 소비자 중심 정책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도 서민을 위해 수익성에만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다마스․라보는 유일한 생계형 경상용차로 단순히 자가용처럼 편하게 운영하는 차량이 아니라 더욱 유지 생산이 필요하다”며 “한국GM이 결단을 보여 소비자를 배려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고, 정부도 이에 걸맞게 지원해 주는 방향으로 해결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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