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앞세운 개혁 주장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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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 앞세운 개혁 주장 공허하다
  • 이재인 기자 koderi@naver.com
  • 승인 201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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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시장지배력 강화용 아니냐” 지적 지배적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되는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서비스업종군에 종사하는 중소 상공인을 타깃으로 경제활동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정부의 방침 아래 규제개혁이 속전속결로 이뤄지고 있지만, 이를 빙자한 대기업의 셈법이 하도급 업체 종사자의 숨통을 옥죄이고 있다.

대표적인 대국민 생활 서비스인 택배에서 이 같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택배업계는 화물운송사업 허가공급이 제한돼 있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이하 화물법)상 제도적 규제가 가해지고 있어 사업용 택배차량 부족과 협력업체 소속 택배기사의 수급난이 심화된 상태며 택배라는 서비스 상품을 총괄 관리하는데 있어 현행 제도로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가용 택배차량에 택배전용넘버를 부여해 사업용으로 전환하는 증차사업이 추가돼야 하며, 궁극적으로 화물법으로부터 택배를 분리․독립시켜 해당 서비스만을 위한 제도를 신설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겉으로 보면 택배회사가 아래 단계에 있는 하청업체의 택배기사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막에는 또 다른 셈이 깔려있다.

단편적인 예로 지난 14일 진행된 화물운송사업 허가의 공급심의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날 나온 결론을 보면 기존 화물운송 허가(아사자바 번호판)는 예년과 같이 동결하고 택배전용넘버(배)는 향후 별도의 심의 절차를 밟기로 일단락됐다.

게다가 증차사업이 추가될 시에는 자가용 택배기사 개인이 아닌 그들과 계약한 택배회사에 공급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전언이다.

문제는 지난해 자가용 택배차량을 사업용으로 전환한 증차사업에 따른 피드백과 효과분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재심이 결정된데다, 공급대상이 자가용 차주 개인에서 택배회사로 전향됐다는 거다.

올 들어 현장에서는 택배기사를 대상으로 한 물갈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택배기사를 포함한 협력업체의 위에 단계에 있는 택배 영업소에서는 기존 넘버를 보유한 화물운송업자(일반․개별․용달)보다 택배전용넘버를 부착한 차주를 선호하면서 구획조정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일부 지점에서는 이전 계약 당시 개별적으로 직접 계약한 화물운송차주에게 법인 운송사와의 1차적 계약을 통해야만 배송노선을 할애할 수 있다면서 위수탁 관리․이전비의 상납을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A사와 계약한 영업소 한 관계자는 “현장에 투입되는 집배송 차량을 택배전용넘버로 전량 전환하라는 주문이 본사로부터 전달됐으며, 협조한 영업소를 중심으로 추가된 넘버를 할당 배분하는 방식이 본사 내부적으로 검토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영업소 입장에서는 넘버가 많아지면 택배기사 충원이 가능하고 그에 따른 부가수입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손해 없는 장사”라며 “물량이 택배로 몰려 있고 실업난 등으로 일하려는 수요가 있어 영업소 자체적으로 택배기사를 영입․관리하는데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개인이 아닌 회사로 넘버가 추가 공급된다면 택배업체가 시비하고 있는 화물운송업의 지입제와 그에 따른 블랙마켓을 또 다른 방식으로 변형․수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기업물량부터 개인물량까지 택배로 흡수되면서 서비스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점을 종합해보면, 지금보다 하청업체와의 수직적 종속관계는 한층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택배업계 한 전문가는 “택배넘버를 추가로 받기 위해서는 확보한 물량과 처리실적이 보유차량의 능력치를 초과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국내 택배시장에서의 활동만으로 채워 넣기는 어렵다”며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 경우에는 해외에서 주문된 직구 물량을 포함시켜 산출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업체들은 단가를 낮춰 타 업체의 물량을 유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상 택배기사의 처우개선과 서비스 질적 개선 등의 선진화와는 거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기존 화물운송과 택배와의 선긋기를 통해 화물법과는 별개라는 분위기를 띄워 반대세력인 화물운송업계의 간섭을 저지하면서 택배법 제정을 위해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며 “법이 신설되면 영업용 택배전용넘버의 공급여부를 비롯해 택배요금, 시설투자 및 운영에 따른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에 택배회사의 영향력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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